당신의 인생버스가 어느 정류장을 지나고 있든
당신의 인생버스가 어느 정류장을 지나고 있든
  • 손하영 교수
  • 승인 2019.09.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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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신학회에서 논문을 발제하고 있는 신하영 교수
▲복음주의신학회에서 논문을 발제하고 있는 손하영 교수(오른쪽)

2012년 9월 21일, 7년 전 오늘 쓴 글을 SNS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미국에서 박사과정 시절, 생일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와 통화하고 난 뒤 아마도 옛날 생각이 나서 썼던 글인 것 같다.

글은 9살 시절의 어느 날, 내 인생에서 꽤나 인상적이었던  그날을 회상한다. 돌아보니 신기하게도, 우리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었다기보다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고 감사했다. 

9살 즈음. 부모님이 아침에 나가시면서 라면 한 봉지를 주셨다. 저녁에 혹은 밤에 돌아오실 때까지, 그걸로 동생과 나눠 먹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철없는 동생은 나중을 위해 조금 남겨두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조금만 주고 안 준다고 울었다.

징징거리며 원망하는 동생이 나중에 그것마저 없으면 더 울 걸 알았기 때문에, 그 녀석을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고 야단도 쳐가면서 하루를 실랑이를 하며 보냈다.

그때가 초등학생 2학년 때였으니까 아마 학교에 안 간 날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라면을 보면 종종 그때 생각이 난다. 아마 부모님은 우리보다 더 굶으셨을 거고.

나랑 동갑내기였던 주인집에 아들은 과일을 쌓아놓고 먹었었다. 그 때 나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처음 봤었다. 우리가 굶고 있는 걸 알면서도 주인아주머니는, 나눠먹으려는 아들을 야단치면서까지 못 나눠먹게 했다.

그때가 우리 가족이 춘천에서 포항으로 가기 전에, 울산에 잠시 머물렀을 때였다. 부모님은 그곳에 정착하려고 애쓰셨던 것 같은데 일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리가 다 방에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엄마 아빠 얼굴이 너무 어두워서 뭔가 나쁜 일이 있으셨나 싶었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나가시더니 아궁이에서 이제 막 붙은 연탄을 들고 들어오셨다.

그것을 작은 밥상(접었다 펴는 거) 위에 턱 올리시고는 "오늘, 우리 다 같이 죽자!"라고 하셨다. 헉... 워낙 장난을 잘 치셨던 아빠였지만, 그 얼굴의 비장함이,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가 더 이상 (가장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가족을 남기고 죽자니 걱정되니까 다 같이 죽자는 것이었다. 밥상의 윗부분(플라스틱?)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메케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이 방을 못 나간다고 입구를 막아 앉으셨고, 정적의 상태로 조금 시간이 지났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동생은 무서웠는지 옆에 꼭 붙어 있고, 엄마는 울기만 하셨다. 이대로면 정말 우리 모두 죽을 것 같았다.

"난 살래, 아빠." 내가 말했다. 난 아직 어리고, 삶이 어떤 건지 모르니까 살아볼래. 나중에 힘들어 죽든, 병들어 죽든, 어떻든 죽게 될거니까 미리 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엄마 아빠 없으면 나 사는 게 걱정되어서 같이 죽자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좀 더 살아보고 죽으면 안 될까?" 

부모님께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 거짓말 같나? 아니. 나 6-7살 때 (만으로는 5살 즈음) 교통사고로 죽네 사네 고비를 넘기면서, 수술실 들어가면서도 의사 선생님들 붙들고 설득(?!)을 하더란다. 자기는 살아야 한다면서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대더란다.

침대를 밀고 가던 엄마도 기가 막힐 정도로. 이후로도 엄마 아빠는 저게 (저렇게 어린 것이) 사는 게 뭔지 죽는 게 뭔지 알고나 있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단다.

9살의 나도 여전히 (아니, 어쩌면 그렇게 죽음의 순간을 넘기고 살아났으니 더) 삶에 대한 경외감 혹은 집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날 살리기 위해 울아부지 엄청 고생하셨다. 아빠한테, 그렇게 살려놓고 왜 이제와서 죽이려 하느냐는 말도 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의 말을 듣던 엄마가 갑자기 힘이 나셨는지, "맞는다"며, "애들이 무슨 죈데 같이 죽느냐?"며, 아버지의 행동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셨다.

처음엔 애들만 살게 해주자고 하시더니, 나중엔 우리만 사는 게 또 걱정되시니까 엄마도 살아야겠다고 하셨다. 연기가 자욱해질수록, 우리의 목소리도 더 올라갔다. 그 때 참 많이도 울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나와 동생이 먼저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엄마가 나오고, 아빠도 울면서 나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살기로 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가족동반 자살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사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것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것도 배웠고, 한편으로는 가난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생의 존엄성을 훼손해서도 안된다는 것 또한 뼈저리게 배웠다.

그 이후에도 우리 가족은 가난도 해보고, 또 조금 잘 살아도 보는 시간들을 겪었지만, 워낙 바닥을 쳐봤던지라 잘 곳이 있고, 밥 세 끼 먹으면 감사하다는 것이 늘 밑바닥에 있다.

지금 부모님은 또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계시고, 나 역시 미국에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엄마와 통화를 하면 "그래도 지금은 안 굶잖아" 말씀하신다.

"맞다~ 잘 곳 있고 밥 세끼 먹으면 감사하지~" 그렇게 맞장구치며 감사함으로 전화를 끊는 우리가... 나는 참 좋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글쎄...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꽤 끈질긴 생명력과 또 삶에 대한 감사를 준 것 같다.


이 땅을 살아가는 시간은 유한하다. 죽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진리는 누구나 죽는다는 거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기본의무이자 축복인 것 같다.

당신의 인생버스가 지금 고난의 정류장을 지나고 있든, 즐거움의 정류장을 지나고 있든, 그곳이 종점이 아님을 기억하라. 아프면 아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삶이 주는 교훈을 배우라.

그 모든 정류장들을 지나면서 배운 것들로 당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그대가 되기 바란다. 종점에 도착했을 때, 그 때 당신의 삶을 향해 웃어줄 수 있는 그대가 되기 바란다. 이 시간은 "유한"하다.

 

2019. 9. 21. 오늘, 부모님과 함께 외식했다. 마음껏 웃고, 양껏 먹고, 장난 치는 그 순간이 평범하면서도, 꿈 같다. 평범한 가족 사진 속, 구석구석에 주님의 손길이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적을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놓치지 말고 감사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 바란다.

이 땅의 유한한 삶에 이어, 영원한 생명을 살아야 하는 그 비밀을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기 바라고, 그 길에 나도 쓰임 받기 원한다.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때 웃을 수 있기를... 그런 오늘을 그대도 나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축복한다. 

(사진: 정종민)
(사진: 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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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하영 교수는 경상북도 포항 출신으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MDiv,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New Testament로 Th.M을,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New Testament and Greek으로 Ph.D를 받았다. 이후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Adjunct Professor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Adjunct Professor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광진교회-시흥 중등부 교육목사 (Youth Pastor)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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