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 『치열한 도전』 책 리뷰
김병삼 목사, 『치열한 도전』 책 리뷰
  • 박진기 기자
  • 승인 2018.07.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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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불편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치열한 도전: 교회여 담장 밖으로 흩어져라』 (김병삼 지음, 두란노, 2018)
『치열한 도전: 교회여 담장 밖으로 흩어져라』 (김병삼 지음, 두란노, 2018)

 

서론: 교회, 다니십니까 아니면 예수 믿으십니까?

어느 시기가 됐든지 간에 그 시기에 이목(耳目)을 끄는 책들이 출판 된다. 최근 2018년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왜냐하면 예년부터 이어져 온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바턴이 이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강한 인식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세상의 중심에서 뭇매 돌을 맞는 것은 그 동안 쌓여져 있던 교회 안의 적폐가 드러나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일 것이리라!

이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교회를 향해서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뭇매 돌에 교회는 반응하여야 한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이 말에 격하게 분을 낼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교회 밖의 사람들의 논리에 맞설 때 우리는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견지(見地)하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들이 던지는 뭇매 돌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맞는 돌에 도리어 다시 그 돌을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잘못됐다 말하는 것에 적극 수용하며 반성하는 모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우리는 돌을 맞지 않았다. 교회 스스로 쌓은 담장이 방패가 되어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그대로 되갚아 주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김병삼 목사(이하 저자라 표기함)는 『치열한 도전』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교회 다니십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으십니까?” 이와 같은 그의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대상이 아닌 사물 자체의 본질로서 교회에 관심을 갖도록 인도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실 때의 그 말씀을 생각한다. “네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교회는 우리가 세운 교회인가 아니면 예수께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기에 우리가 주인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해 불가능한 영역으로 신이 직접 찾아온 인류애를 반영한 사랑의 표현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하나님의 선교의 시작이었음을 말하였다. 예수의 사역은 이제 교회로 전이(轉移)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적 교회’로서 ‘하나님의 선교’를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위 책에 관해 저자가 서술한 방법에 따라 세 가지 범주 아래 선교적 교회에 관해 고민해 나가려 한다.

 

하나님의 선교, 예배의 회복이 먼저다.

“저는 눈물이 많습니다. 설교하면서도 주책 없이 눈물을 흘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본질에 벗어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의 면면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웁니다.”는 저자의 말이다. 2018년을 맞아 그가 목회하는 만나교회가 내걸은 슬로건은 ‘다시(Re)’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선교적 교회를 위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지 그 답으로서 예배의 회복을 말한다.

왜, 예배의 회복이 선교적 교회의 사명으로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일까?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 것 같으면서도 쉽게 답할 수 없는 현실에 우리 모두는 살고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너무 많은 예배로 인해 어느새 우리의 예배는 의무로 생각하게 됨으로써 형식적인 것이 갖추어진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예배가 지루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권면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공동체의 이 모임의 주인이 누구인지 인식하는 것에 있다.

자아가 주인이 되어 예배의 순서를 맡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예배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즉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면은 교회의 본질은 기능에 있기보다 존재 목적을 생각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곧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가’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왜 존재하는지 생각하도록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회는 예배를 하기 위해 모였는가? 만약에 모였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선교, 교회는 세상을 섬겨야한다.

예배라는 말의 어원은 섬기다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무엇을 섬기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유래를 보며 다음과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니까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가는 거지. 그 다음이 없는 것이다. 한 주 한 주 섬기는 교회에 목회자가 수고하여 선포하는 그 말씀을 들으며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 아니, 누리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고 오히려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갖게 되는 현상이다. 교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많은 성도들이 봉사를 두려워하며 멀리하게 된 원인은 너무나 자주 상식적이지 못하게 사람을 대하던 우리들 모두의 모습 속에 있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한 곳에서는 교회의 목회자 혹은 성도들에 관해 불편을 토로하며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겪는 탈진의 이유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준비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이는 것 외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들고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에 있다. 교회의 초기 형성사를 생각할 때 대표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생각 할 때, 그들은 함께 모여 식사하며 그들의 물건을 서로 통용하여 나누었다. 우리는 이들의 모임을 공동체라 한다.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공동체는 교회를 비롯한 세상이다. 세상이 악하다고 하여 외면하며 혐오할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선교’를 품은 교회는 성도 스스로가 ‘선교적 교회’가 되어 세상을 섬길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심각한 착각에 빠져 살던 바리새인들.. 사실 세상으로부터 맞는 뭇매 돌은 우리 모두가 바리새인임을 일갈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은 잘못된 선민 의식 곧 ‘우리 교회’, ‘우리 교인’이라는 표현 안에 함축되어 있다. 저자는 본 책을 통해 한 가지 아픈 경험을 고백한다. 기도원에서 우연이 만나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을 향해 성도 한 분이 했던 말이다. “그 사람 이상하다.”, “우리 교회와 안맞는다.” 성도의 이 말로 인해 우연이 만났던 사람을 멀리한 저자는 그 교인을 잃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라는 범위의 재정의가 필요하며 ‘교회’에 대한 숙고(熟考)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느 한 범주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 세계를 아우른다. 교회라는 것 역시 만나교회나 어느 특정 지역교회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한 몸을 이룬다.

하나의 지체를 이룬 교회는 세상을 섬겨야 한다. 각 교회들은 교회 안의 사역이 외부인에게도 개방되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전도의 방법을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저자가 목회하는 교회는 그 교회의 사역에 외부에 있는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게도 개방한다고 한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공동체라는 범위의 확장을 함의하며 그에 이러한 노력으로 교회의 성도는 자연스럽게 세상을 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세상을 섬기기 위해 시작한 월드휴먼브리지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태동(胎動)된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우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교회로 부르지 않으셨다. 당신을 선교지로 부르셨다.“는 저자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속한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결국 세상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는 교회가 흩어지는 교회가 되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교, ‘진정성’이라는 담을 뛰어 넘어라!

세상으로부터 맞는 뭇매 돌의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진정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불거진 교회에 대한 비판을 생각해보시라! 어쩌면 저자가 교회가 뛰어넘어야 할 담을 진정성이라 한 것은 ‘신뢰’가 무너지면 ‘신임’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 생각 된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역시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한 번 깨진 거울은 다시는 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진정성’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성서 속의 인물은 세례자 요한이다. 예수의 사역을 예비하며 마침내 예수가 성육신하여 그 앞에 나타났을 때,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의 반응은 예수와 경쟁하려는 이기심이었다. 이에 세례자 요한은 주옥같은 명언을 남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책 속에서 저자는 이상화 선수의 인터뷰를 예화로 들어 설명한다. “이상화 선수, 국가대표는 뭡니까?”, “국가대표요?... 뭐... 그냥 죽는 거예요.” 짧고 굵은 이 말 한마디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다. “죽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가 그리스도를 통해 위임된 대표성을 띠는 곳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야 한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교회는 ‘진정성’이라는 담을 뛰어 넘는 곳으로 도약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교회여 담장 밖으로 흩어져라.

‘선교적 교회’에 관해 고민하며 『치열한 도전』을 읽을 때, 독자는 성도로서 참 자유를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줄 곧 들어온 교회의 존재 목적이 보다 뚜렷하게 서술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 글을 읽어 나가며 책의 말미를 볼 때 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 성도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곳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과 선교적 교회가 된 성도 모두가 세상을 섬겨야 하는 것 그리고 ‘진정성’이라는 담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4년 이상의 목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저자의 슬로건을 생각하다.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우리는 이와 같은 교회가 될 수 없겠으나 모방은 가능하다. 그 중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방은 흩어지는 것으로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천년 역사에 가장 경이로운 사건 곧 예수의 성육신을 바라본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창조 된 목적을 상실한 곳으로서 임한 하나님의 낮아지심이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지 않은가? 이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하여야 한다. “나는 죽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바라기는 교회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 보다 예수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며 세상 사람들을 향해 ‘진정성’을 상실한 채 ‘우리’라는 프레임에 갇힌 담을 쌓는 교회가 점차적으로 줄어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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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의 멤버인 박진기 전도사는 왕십리성은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총신대에서 M.Div를 하고 있다. 학생 때부터 각종 알바를 섭렵하며 강한 생활력을 보이면서,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특히 다년간 대학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읽어온 독서량도 상당하며, 한 번 말을 꺼내면 좀처럼 쉬지 않는 달변이기도 하다. <울림>의 기자로 어떤 글들을 쏟아 낼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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