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 18] “십사 만 사천 명?”(계 7:1-8)
[요한계시록강해 18] “십사 만 사천 명?”(계 7:1-8)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9.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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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1. 들어가는 말

지난 4월, 필리핀 선교현장에 있었던 한 목사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어젯밤 진도 6.3의 지진으로 건물이 몇 초 간 흔들리더니 전기가 끊어지고, 수도가 차단되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암흑천지, 연락불통, 물건파손 등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몇 시간 후에 전기가 들어와 복구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런 재해가 일어날 때 사역자들의 손길은 더욱 바쁘게 돌아갑니다. 우리나라의 서산 유조선 파선으로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교회가 앞장서서 모든 기름을 제거했습니다. 시에라리온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 교회가 날아가서 구호활동을 펼쳤습니다. 교회의 선행을 자랑하기 위한 걸까요? 그 어려운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소원을 주시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소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2. 144,000

그렇다면 그 구원의 완성은 언제까지일까요? 144,000명이 찰 때까지입니다. 뭐라고요?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고요? 그건 이단 신천지가 주장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이단 신천지가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자기 집단에 적용했습니다. 신천지에 속한 사람, 144,000명만이 구원받는다는 것이지요.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이만희씨와 그 집단에만 구원을 준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실까요?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썼던 저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당장 쫓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미혹되어 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넘어갈 수 있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넘어 갑니다. 하와가 선악과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과 일반이지요. 본문에 나타나는 144,000명이 그들에게는 핵심적인 교리인데 이것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넘어가는 것이지요. 호세아 선지자가 외쳤지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4:6). 따라서 우리는 144,000이란 수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144,000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곱한 수에 군대의 기본단위인 1,000을 곱한 수입니다(31:4).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데 단지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유대인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11:25), 또는 셀 수 없는 큰 무리”(7:9)로도 표현됩니다. 또한 지상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영적 전투를 쉬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이기에 군대 단위로써 설명하고 있는 게지요.

더구나 각 지파마다 12,000명씩 12지파를 말씀하심은 잘 훈련된 정예군사의 군대조직을 보이신 겁니다. 우리나라 군대의 일개 사단이 12,000명 정도 되니까 열두 개 사단이 전투에 나가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열병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군대조직을 보이신 걸까요? 모든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게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은 이제 주의 제자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주의 군사가 되어 원수 마귀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고전 15:5).

 

3. 유다 지파

그런데 저는 본문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 , , , , () / (에브라임, 므낫세), () / , 아셀()/ , ()”로 외우곤 했지요. 장남인 르우벤이 언제나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5절에는 유다지파가 먼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야곱이 유다를 축복한 것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49:8-12입니다.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말씀은 미가서 51절에서 쫌 더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와 같은 예언대로 예수님은 유다지파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21:9).

또한 유다지파를 가장 앞에 둔 것은 예수님이 전투하는 지상교회의 군대의 대장으로서 앞장서서 지휘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게지요. 12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제자 삼으셨던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 제자들이 군사가 되어 죽기까지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장서서 가셨기 때문이지요.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세에 악한 사탄의 공격 가운데에서도 주의 군사들을 통하여 144,000, 하나님의 충만한 수는 마침내 채워지고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4. 땅의 사방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

그런데 우리는 또 한 가지 눈 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71절에서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이 장면에서 홍해를 가르신 사건(15:8)과 요단강을 멈추어 서게 하신 사건(3:13)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동원되어 물을 붙잡고 있었던 게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길을 다 통과하고 나니 그 물은 원래대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말세의 끝에 일어날 우주적 환난을 붙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2절을 보면 이 네 천사를 가리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라고 천사의 정체를 밝힙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사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이미 땅과 바다를 해칠 준비가 다 끝났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별도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계속해서 붙잡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별도의 명령이 무엇일까요?

2-3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다 찍기까지 그 바람을 꼭 붙잡고 있으라는 거지요. 네 천사는 144,000명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계속 진행됨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마에 도장을 찍는 일은 언제 일어나는 겁니까? 그 답이 71절의 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이 일 후에라는 부사구에 들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라는 부사구는 617절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시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 전환용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다른 말로 바꾼다면 한편이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땅을 헤치는 자들, 61절 이하에 흰 말 탄 자, 붉은 말 탄 자, 검은 말을 탄 자, 청황색 말을 탄 자들이 땅을 헤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땅의 재앙의 바람을 붙잡으시고 144,000명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치심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이지요.

61절부터 일어나는 환난을 보십시오. 흰 말 탄 자의 미혹, 붉은 말 탄 자의 전쟁, 검은 말 탄 자로 말미암은 기근, 청황색 말을 탄 자로 인한 총체적인 환난, 그리고 제단 아래에서 기도하는 믿음의 선진들, 그리고 진노의 큰 날이 나타나고 있지요?

만약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네 천사들이 잡고 있던 바람을 놓도록 허락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를 가진 악한 것들이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종으로 인침을 받은 주의 백성들, 교회는 천국을 누리게 되겠지요.

 

5. 인을 친다는 것

그렇다면 인을 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의미합니다. 이마에 도장을 찍는 장면은 에스겔 94절에 이미 나타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말씀하셨던 게지요.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형벌을 받을 때에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좀 더 멀리 출애굽기 127절에서도 발견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칠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그 피가 표적이 되어 진노의 사자가 그 집을 유월함으로 구원받는 기사입니다.

결국 이 모든 구원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 사역의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표를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의 표가 하나님의 도장이지요. 도장을 찍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3절에서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를 쓴 것을 감안하면 마치 창 126절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우리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성삼위 하나님과 천상의 교회와, 하늘의 천군천사, 그리고 지상교회의 사역을 통한 모든 만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우리들까지도 인을 쳐서 살리시고 하나님의 종들로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우리안에 포함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충만한 수, 144,000이 차기까지 부지런히 하나님의 인을 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6. 나가는 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강림하신 이후, 그리고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12사도를 파송하시며 교회를 세우신 이후, 환난은 정말 극심했습니다. 정말 진노의 큰 날이 임한 것 같은 환난이 물밀 듯이 밀려온 것이지요. 하지만 성도들은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승리했습니다. 이때에도 주님은 진노의 바람을 붙잡고 계셨고 저들의 이마에 인을 치신 게지요.

바람을 잡고 있는 네 천사는 아직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바람을 놓은 것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에게도 현재 진행형인 사건들이 있지요? 사방으로 우겨 싸는 것과 같은 난제들이 있지요. 답은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람을 붙잡고 계시고 동시에 우리에게 인을 치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라면 견뎌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는 마귀의 계략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승리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있는 줄 믿습니다. 반면 우리가 면할 수 있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심판에서 구원받는 겁니다. 세상의 핍박에서 주의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승리한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환난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심판에서 벗어날 길이 없지요.

필리핀의 지진 현장에서, 네팔의 지진 현장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지금도 구원의 표가 새겨지고 있습니다. 지진 현장은 그 사역자들에게는 천국이요, 죄악 가운데 있는 자들은 지옥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임해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구원하시는 역사가 있음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우리의 삶에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마에 인을 치는 주의 천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144,000명의 구원의 수를 향하여 부단히 달음질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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