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39)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39)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10.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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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42:7을 살펴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제6강 의의 구현

드디어 욥기 대단원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히브리어 원문은 욥기 42:6까지 시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욥기 42:7부터 끝까지는 일반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본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만 42:7부터는 욥기 저자가 결론으로 분명하게 구분 지었다. 과연 욥기의 결론은 어떻게 내려질까?

 

1. 하나님의 의로 인한 재창조

(1) 드디어 설립된 하나님의 종

욥과 대화를 마친 하나님께서는 먼저 세 친구들인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을 지목하여 화를 내신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에게 화를 내신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이 하나님의 종 욥처럼 옳은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욥이 한 주장에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지 않은가? 이 구절은 욥이 문제가 없는 의인이었다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욥이 고난 받기 이전에는 아직 의인이 아니었다는 입장은 철회되어야한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이 부분을 의역했는데 그로인해 오해를 낳고 있다. 위 구절에서 밑줄 친 부분의 히브리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를 정리해야 한다. 그 단어는 ‘נכונה(느쿠나)’인데 원형인 ‘כון(쿤)’의 분사수동형이다. <개역개정>에는 “옳지 못함이니라”라고 가치판단을 내리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때문에 세 친구들이 욥에 비해 옳지 못한 주장을 했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כון(쿤)’은 다른 본문에서 ‘세우다’, ‘건설하다’, ‘준비하다’, ‘예비하다’ 등으로 번역되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כון)”(시 7:9a).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כון)”(시 24:2).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준비할지라도(כון)”(욥 27:1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כון)”(대하 29:36a).

이러한 용례를 통해 ‘כון(쿤)’이 무언가를 짓거나 준비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지어지거나 준비되는 대상은 건축물이거나 물건일 수도 있지만 시편 7:9의 “의인을 세우소서(כון)”의 용례와 같이 인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포괄적인 의미로 가장 기본적인 뜻인 ‘설립하다’ 또는 ‘준비하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נכונה(느쿠나)’가 수동형이기 때문에 ‘설립된’이나 ‘준비된’으로 번역하려한다. ‘כון(쿤)’을 ‘옳다’는 의미로 번역한 것은 상당한 의역의 결과이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직역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너희가 나에 대하여 내 종 욥처럼 설립(준비)되어 말하지 않았다’(욥 42:7b, 사역).

‘왜냐하면 너희가 나에 대하여 말한 것이 내 종 욥처럼 설립(준비)되지 않았다’(욥 42:7b, 사역).

두 번역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설립되거나 준비되어야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 친구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그들의 주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족한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옳지 못하다’는 <개역개정>의 번역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כון(쿤)’이라는 표현을 통해 욥과 세 친구들의 주장을 하나님께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에서 아직 미흡한 상태로 평가하셨음을 알 수 있다. ‘כון(쿤)’을 수동형으로 사용하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세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려면 ‘너희가 옳지 않다’라고 책임이 그들에게 있도록 능동형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설립되지(준비되지) 못했다’라고 수동형으로 말씀하셨다. ‘כון(쿤)’이 가진 단어의 뜻과 형태가 모두 세 친구들이 부족한 상태임을 가리키고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들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이다.

이 점은 욥기에 대한 의문점 중 하나를 해결해준다.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신앙하며 지지하는 발언들을 했다. 그 내용에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담겨 있다. 또한 지혜의 한 측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 옳지 않다고 모조리 부정해 버리신다면 너무 과격한 처사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נכונה(느쿠나)’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주장을 모조리 부정해 버리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어서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점을 하나 더 확인하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b)라는 구절이 세 친구들은 옳지 않고 욥이 옳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이 욥처럼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슨 말인지 다시 한 번 설명해보면 대게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설립되지) / 못함이니라”처럼 구문을 끊어서 해석한다. 그래서 욥의 말이 옳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 내 종 욥의 말 같이 / 옳지(설립되지) 못함이니라”처럼 끊어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욥과 세 친구들이 모두 옳지(설립되지) 못하다는 의미가 된다. 본문은 세 친구들이 욥처럼 설립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에게 화를 내신 이유는 욥과 같은 내용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세 친구들도 욥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설립되지 않은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욥은 이미 꾸중을 들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제 세 친구들 차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도 욥처럼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는 ‘내 종 욥’이라고 그들과 구별하여 부르셨다. 이는 세 친구들에 비해 욥을 다르게 대하신 것이다. 즉 ‘내 종’이라는 호칭은 세 친구들이 옳지 못하고 욥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후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에게 제물을 욥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욥 42:8a).

욥과 세 친구들이 동일한 처지라면 세 친구들이 제물을 가지고 욥에게 가야할 당위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욥이 옳고 세 친구들은 옳지 않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 ‘내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없다. 다른 이에게 욥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 사용하신 표현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욥 1:8a).

따라서 ‘내 종’이라는 표현은 소속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호칭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 종’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셨다고해서 욥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무리이다.

또한 8절에서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에게 제물을 욥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고난을 겪기 전의 욥과 하나님을 만난 후의 욥은 다르다. 고난을 겪기 전의 욥은 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설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7절에서 ‘설립되지 않은 욥의 말처럼’이라고 세 친구들의 주장을 동일하다고 평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뵙고 진리를 깨달은 욥은 새롭게 되었다. 외적인 모습은 동일한 욥이지만 내적으로는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를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이라고 언급하셨다. 욥이 <구원의 근간으로써의 의>로 인해 재창조되는 변화는 요한복음 3장에 기록된 거듭남을 가리킨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인간구원 프로젝트의 신비이다.

이를 하나님께서 ‘건설하다’, ‘세우다’, ‘준비하다’, ‘예비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 ‘כון(쿤)’의 수동형 ‘נכונה(느쿠나)’로 설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설립된 욥에게 세 친구들이 재물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세 친구들보다 욥이 옳기 때문에 제물을 가지고 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오늘은 욥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한 중요 구절 중 하나인 욥기 42:7을 살펴보았다. 다음은 본문해석 마지막 시간이다.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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