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의 죽음] 여섯째 마당: 십자가에 못 박히다
[나사렛 예수의 죽음] 여섯째 마당: 십자가에 못 박히다
  • 김인철 목사(예슈아성서연구원 대표)
  • 승인 2019.10.1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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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
▲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

예루살렘 구 시가지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성묘 교회(Holy Sepulchre Church)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의 종착점-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1] 이곳에는 채찍 교회에서 시작된 14순례 처소의 마지막인 제10-14처소가 함께 자리 잡고있다. 제 10처소는 현재 성묘 교회의 붉은 창 틀 자리인데, 십자가에 못 박기 전 예수의 옷을 벗긴 장소이다. 제 11처소는 건물 위쪽에 있는데, 마리아 앞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이다.[2]

바로 옆의 제 12 처소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한 장소이며, 지진으로 갈라진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순례자들은 제단 아래로 손을 넣어 바위를 만져 볼 수도 있다. 건물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제13 처소와 만나게 되는데,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에게 성유를 부은 장소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기름을 부으며, 예수의 장례를 함께 치렀던 니고데모와 여인들의 심정에 공감한다. 마지막 제 14처소는 예수의 시신을 안치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 자리이다. 원래 골고다와 가까운 동산에 있었지만, 한 건물에 속하게 되었다.[3]

 

I. 십자가 형과 예수

십자가 형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4] 1세기 로마 제국에서 맹수에게 뜯기게 하거나 사지를 찢는 것과 같은 극형의 하나였다. 로마 제국은 이전의 페르시아와 헬라 제국으로부터 십자가 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헤롯 대왕이 금지시키기 전에는, 유대인들도 동족을 십자가 형에 처했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하스모니안 왕가의 알렉산드로스 얀네우스(기원전 104-78)는 저항하는 유대인 800명을 십자가 형에 처했다.[5] 십자가 형에 대해 마르틴 헹엘의 명저 <십자가 처형>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요약을 정리하면 이렇다.[6]

1. 형벌로서의 십자가 형은 고대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널리 퍼져 있었다.

2. 십자가 형은 정치적, 군사적 범죄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계속 실시되었다.

3.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 주된 이유는 범죄의 방지책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4. 십자가 형은 복수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충족시켰을 뿐 아니라, 통치자들과 대중들의 가학적 잔인성을 만족시켰다.

5. 처형한 자를 벌거벗겨 눈에 띄는 장소, 네거리, 극장 안, 높은 언덕, 그가 범행한 장소에 공개적으로 진열함으로써, 십자가 형은 내면적인 차원에서 처형 당한 자의 수치를 최대한 드러냈다.

6. 십자가 형은 처형한 자를 대부분 매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처참하게 평가되었다. 처형 당한 자의 시신을 맹수들과 새의 먹이로 주어진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고대 세계에서 매장당하지 못한 자는 불명예의 상징이었다.

7. 로마 시대에서 십자가 형은 무엇보다도 위험스러운 범죄꾼[7]들과 가장 낮은 계급(천민 계층)에게 실시되었다.

십자가의 형태는 X, T, ╋ 등 다양했으며, 처형 절차 또한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형수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안겨주려는 목적은 같았다. 처형이 시작되기 전 먼저 채찍질과 구타가 가해졌다. 여러 갈래의 채찍 중간 중간에 달려 있는 동물 뼈나 쇠 조각 때문에, 단 한 번의 채찍질로도 치명상을 안길 수 있었다. 근육이 찢어지고 핏줄이 터지는 것은 일반적이고, 심한 경우 뼈가 드러나고 창자의 일부가 튀어 나오기도 했다.[8]

따라서 채찍질은 사형수의 체력을 약화시켜 숨이 빨리 끊어지게 해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는 보통 3일째까지 죽지 않고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체력이 약한 죄수는 채찍질을 당하다가 숨이 끊어지기도 했다. 사형수의 엉덩이 부분에 받침대를 만들어 놓으면 죽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채찍질을 당한 사형수는 형틀을 매고 형장으로 이동했다. 형장에는 이미 세로 형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직접 매고 온 가로 기둥을 포개어 십자가를 만들었다. 사형수는 벌거벗겨져야 했기 때문에, 그의 옷은 집행인들의 몫이 되었다. 사형수는 양팔을 벌린 채 손목에 못 박혔으며,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양 발이 복사뼈에 못 박혔다.[9]

십자가 꼭대기에는 사형수의 죄목이 적힌 팻말을 붙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는 고정된 자세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된다. 숨을 쉬려고 몸을 일으킬 때마다 체중이 복사뼈에 실려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손목에 가해지는 고통을 면해보려고 힘쓰다가 어깨 뼈가 빠지기도 했다. 결국 사형수는 고열과 탈수와 저 혈당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게 된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사형수에게도 유언을 남길 권리는 인정되었다.

십자가 형이 집행되는 절차를 보면, 골고다로 보내진 나사렛 예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 예수는 빌라도의 병사들에게 무자비한 채찍질과 구타를 당했다. 예수는 가야바에게 밤샘 심문을 당하고 새벽에 빌라도에게 끌려왔었다. 거기에 채찍질과 구타까지 가해져 십자가를 질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2 빌라도의 병사들은 구레네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마 27:32; 막 15:21; 눅 23:26).[10] 더 이상 예수가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마도 예수는 십자가를 진 채 쓰러졌고, 그 과정에서 갈비뼈 골절로 인한 내상을 입었을 수 있다. 빌라도가 이상하게 여겼을 정도로 빨리 숨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11]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따로 나왔기 때문이다.[12]

3 형장에 도착한 예수의 옷은 사형 집행인들의 몫이 되었다. 겉옷은 네 명이 찢어 나누었으며, 속옷은 추첨으로 한 명이 가져갔다.[13]

4 십자가 위에는 빌라도가 적시한 죄 패가 붙여졌다. 거기에는 히브리어(아람어)와 로마어(라틴어)와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되었다.[14]

5 십자가 형이 집행되는 현장에는 군중들이 있었다. 일부 군중들은 애도하기 위해 비아 돌로로사 길을 함께 걸어갔다.[15] 일부 유대 관리들과 군인들은 예수를 모독하기 위해 조롱을 퍼부었다.[16] 예수의 가족과 일부 제자도 형장에 있었다.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요한)가 마리아를 돌보도록 유언했다. 유언은 당사자들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각각 전달되었다.[17] 이 모든 일들은 십자가 처형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잘 알려진 장소였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모독하기 위해 비너스 신전과 쥬피터 신전을 세울 수 있었다. 헬레나 황후가 성묘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6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에게 나타나는 목마름을 경험했다.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그의 입에 갖다 댔다.[18]

7 예수의 시신은 확인절차를 거쳤다. 병사 한 명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사망을 확인했고, 빌라도가 담당 백부장을 통해 최종 확인했다. 예수의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종종 기절설 혹은 대리 처형설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죽지 않은 채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형장으로 끌려갈 때부터 예수의 신원은 바뀌지 않았으며, 빌라도에게 잘못된 보고가 전달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옆구리에 창상을 입고 물과 피를 쏟은 사람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제로이다.

예수의 죽음이 일반적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된 자들과 달랐던 한 가지는 장례가 치러졌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자는 죽은 이후에도 모독 되어야 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숨은 제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원한 결과 예수의 시신은 매장될 수 있었다.

 

II. 메시아 예언과 십자가의 예수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단순한 극형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신명기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였다.[19] 유대인들이 오늘날까지도 예수를 메시아[20]로 받아들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를 어떻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혹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어떻게 하나님 스스로 저주하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 초창기부터 전도자들은 예수를 ‘저주 받은 자’라는 의미에서 ‘나무에 달린 자’라는 신명기 용어로 소개했다.[21] 역설적으로 예수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메시아였다는 것이다. 소위 예수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대신론(substitutionary perspective)이다.[22]

이처럼 정통 유대교와 나사렛파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원전은 이사야 53장이다. 이사야 52장에서 시작되어 53장까지 이어지는 본문의 별명은 <고난 받는 종>이다.[23]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고난 받는 종을 유대 민족으로 유추하거나, 아예 해석하려 들지를 않았다.[24]4]

하지만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messianic Jews) 이사야 53장을, 예수가 고난 받는 종-메시아임을 말해주는 예언으로 받아들였다. 이사야 53장에서 여호와는 고난 받는 종이 구타 당하기를 원하셨고, 그는 영혼을 속건 제물로 바치고 죽는다. 여호와는 그를 ‘나의 의로운 종’이라고 부르며, 그는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한다.[25]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심문 당하고, 도살장으로 가는 양처럼 끌려가고, 채찍에 맞고, 찔린다. 다시 말해 형벌 받을 백성의 허물 때문에 죽는다.[26] 고난 받는 종은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그는 죄가 없었지만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고,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려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했고, 범죄자를 위해 기도했다.[27] 그리고 그 종은 부자의 무덤에 묻히게 된다.[28]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나사렛 파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을 예수로 해석하며 읽었다. 예수는 죄가 없었지만, 범죄자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29] 그는 가야바와 헤롯과 빌라도에게 심문 당했고, 채찍에 맞았고, 도살장으로 가는 양처럼 끌려갔고, 찔려(못 박혀) 죽었다. 그는 멸시와 버림을 당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다.[30] 그는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었고, 지극히 존귀하게 되었다.[31]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저주 받은 자가 된 것은 백성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죽으므로 백성의 죄는 용서 되었고, 질병은 치유되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었다.[32]

이사야 53장과 함께 나사렛 파 유대인들이 즐겨 읽었던 본문은 시 22편이다. 여기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구절들이 들어 있다. 아마도 예수는 고통 속에서 시편을 암송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극형에 처해진 유대인 중에 시편을 암송하며 기도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예수가22편과 함께 다른 시편들도 암송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 예수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외쳤다.[33] 그것은 시 31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34] 이 광경을 지켜본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35] 백부장은 예전에도 죄 없이 극형에 처해지는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예수가 시 22편을 암송했다는 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외침을 통해 확인된다.[36]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고 조롱했을 때도 시 22편을 암송했을 것이다.[37] “내가 목마르다”라고 호소한 것도 마찬가지이다.[38] 시 22 편에 나오는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는 구절은, 못 박힌 양 발에 체중이 실렸을 때 떠올렸을 만하다.[39] 발은 26개의 뼈로 연결되어 있는데, 예수의 복사뼈에 박힌 못 때문에 모든 뼈에 끔찍한 통증이 찾아왔을 것이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는 구절도,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었다.[40]

 

III. 상징으로서의 십자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41]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전도의 핵심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임을 바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부르심을 받은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부르심을 받은 헬라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소개했다.[42]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이유는 그리스도(메시아)가 저주 받았기 때문이고, 헬라인들에게 미련한 것은 신성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죽은 사형수이기 때문이다.[43] 결국 같은 이유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양쪽으로부터 거절된다. 그런데 어째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헬라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십자가 못 박힌 그리스도’의 상징성에 있다. 상징 혹은 징조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 뒤에 숨은 지혜이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 뒤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가 추구하던 것에 대한 해답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대한 유추는 ‘유월절 양’ 혹은 ‘흠 없는 어린 양’이다.[44] 유월절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의 첫 날을 가리킨다. 유월절 양은 니산 월 제10일에 흠 없는 일년 된 양이나 염소 중에서 선택해 두었다가, 닷새 째 되는 제 14일 해질 때에 도살한다.[45] 닷새의 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숨겨진 질병이나 상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월절 양을 흠 없는 어린 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월절 양은 불에 구워 그 날 모두 먹어야 하며,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은 먹을 수 없다.

거류민과 외국인 일용직 노동자도 먹을 수 없지만, 할례 받은 종은 먹을 수 있다.[46] 그런데 예수를 유월 절 양에 비유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예수는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 월 14일 저녁에 도살되었다. 십자가에서 도살되기 전 예수는 닷새 동안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시험을 받아 흠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도살 한 유월절 양의 가죽을 벗기고 나무에 매달아 피를 제거하는 것처럼, 예수도 벌거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물과 피를 쏟으셨다.

예수를 유월절 양으로 해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 흘림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했다는데 있다. 유월절은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와 문턱에 발랐다. 그렇게 해서 죽음의 천사가 피 묻힌 집을 건너 뛰어 사람과 가축의 맏배를 죽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이집트인의 집 맏배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것처럼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신(代身)의 원리가 있다.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은 것처럼, 예수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게 된다. 예수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었다. 거기에 초창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유월절 양으로 부르는 데 한가지 이유를 더 추가했다. 그의 뼈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는 정오 무렵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약 세 시간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가 운명했다.[47]

예수와 함께 매달린 다른 죄수들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친 축제일에 시체가 매달려 있는 것은 볼썽 사나운 일이었다. 유대인들을 빌라도에게 부탁해서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빌라도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다른 두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왔을 때 이미 숨이 끊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군인 중 한 명이 지체 없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예수의 다리 뼈를 꺾을 필요가 없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것을 메시아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며 이렇게 적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48] 예수를 유월절 양으로 해석한 바울의 관점을 빌리자면, 마땅히 예수의 뼈는 꺾이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유월절 양은 절대로 뼈를 꺾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49]

1교회당 건물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가톨릭 교회가 구역을 나누어 관리한다. 건물의 문은 기원후 1192년 살라하딘이 정한 대로 무슬림 두 가문에서 열고 닫는다. 이 건물이 성벽 안에 위치하게 된 것은 슐레이만 II(1520-66)의 명령으로 1536-41년에 성벽을 다시 쌓게 되면서부터였다. 성벽 공사 책임자는 원상대로 복원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못한 죄를 물어 처형되었다고 한다.

2 일찍이 의로운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라고 예언했는데(눅 2:35), 이곳에는 마리아의 가슴에 칼이 박힌 성화가 걸려 있다.

2017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기원후 345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회 반죽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은 최초 성묘교회가 기원후 336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승을 뒷받침해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기원후 135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리에 비너스(아프로디테) 신전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자리에는 쥬피터(제우스) 신전을 세웠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기원후 326년 그 신전들을 허물고 성묘 교회당 공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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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1] 2017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기원후 345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회 반죽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은 최초 성묘교회가 기원후 336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승을 뒷받침해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기원후 135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리에 비너스(아프로디테) 신전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자리에는 쥬피터(제우스) 신전을 세웠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기원후 326년 그 신전들을 허물고 성묘 교회당 공사를 시작했다.

[2] 일찍이 의로운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라고 예언했는데(눅 2:35), 이곳에는 마리아의 가슴에 칼이 박힌 성화가 걸려 있다.

 

[3] 2017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기원후 345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회 반죽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은 최초 성묘교회가 기원후 336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승을 뒷받침해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기원후 135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리에 비너스(아프로디테) 신전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자리에는 쥬피터(제우스) 신전을 세웠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기원후 326년 그 신전들을 허물고 성묘 교회당 공사를 시작했다.  

[4]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스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붙잡혀 십자가 형을 당했다는 기록을 볼 때,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마르틴 헹엘 저, 김명수 역, 십자가 처형, 대한기독교서회, 1982년, 39쪽).

[5] 요세푸스 저, 김 지찬 역, 유대 고대사, 생명의 말씀사, 제 13권 14장, 191쪽.

[6] 마르틴 헹엘, 앞의 책, 110-12쪽에서 인용.

[7] 로마의 법률가 율리우스 파울루스에 의하면 적에게 투항하는 자, 비밀 누설자, 반역을 선동하는 자, 통치자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하는 자, 야간에 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 마술을 행하는 자 등에게 십자가 형이 적용될 수 있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티투스는 하루 평균 500명 정도 예루살렘 성을 탈출하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십자가 형에 처했는데, 나무가 모자라 십자가를 세우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요세푸스 저, 김 지찬 역, 전쟁사, 생명의 말씀사, 제 5권 11장, 523쪽).

[8] 성경과 이스라엘, 제 4호 2019. 6. 51쪽.

[9] 이스라엘 박물관에 가면 못이 박힌 복사뼈 전시물을 볼 수 있다.

[10]마가복음에는 구레네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알렉산더와 루포는 마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혹자는 바울이 로마 교회의 신자들에게 문안할 것을 부탁한 ‘루포’가 동일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1]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막 15:44).

[12]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인체가 심각한 흉부 손상을 입으면 갈비뼈와 폐 사이에 약 2L 가량의 '출혈성 유체'가 나타난다는 점 때문에 피가 붉은 혈액과 혈청으로 분리되었다는 설도 있다"(이 노균, 이 종훈 공저, 성경 속 의학 이야기, 새물결플러스, 2015년, 34쪽). 최근 서구학자들은 예수가 입은 심각한 흉부 손상이 십자가를 지고 쓰러졌을 때의 것으로 추정한다. 십자가 가로 기둥을 두 어깨에 밧줄로 묶은 상태에서 쓰러지면, 갈비뼈가 무방비 상태로 충격을 입게 된다. 이때부터 예수의 가슴에 출혈성 유체가 고이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13] 요 19:23-24. 통으로 짠 속옷은 제사장의 속옷을 연상시키는데,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아마도 마리아가 지어 입혔을 것이다.

[14] 히브리어: ~ydIWhY>h; %l,m, yrIc.N"h; [:WvyE

헬라어: VIhsou/j o` Nazwrai/oj o` basileu.j tw/n VIoudai,wnÅ

라틴어: IESVS NAZARENVS REX IVDAEORVM(요 19:19-20)

[15]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 23:27).

[16]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눅 23:35-37).

[17]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18] 요 19:28-29.

[19]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20] 문자적으로 ‘기름 부어진 자’이다. ‘기름 부음’의 의미는 특별한 일을 위해 구별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마지막 때에 특별한 사명을 위해 구별된 존재로서의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2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 5:30).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행 10:39). “후에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두었으나”(행 13:2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22] “일반적으로 대속론(代贖論)으로 번역하지만, 대속론이라는 용어는 법정적 상업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포괄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죽음, 죄, 질병, 인간의 한계를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가진 포괄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이 책은 ‘대신론(代身論)’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결코 법정적 상업적 의미를 희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를 수용하기 위해서임을 밝혀둔다”(차재승, 7인의 십자가 사상, 새물결플러스, 2014, 15쪽).

[2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사 52:13-14).

[24] 학교에서 이사야서를 가르칠 때도 53장은 건너뛰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관례적으로 이사야 53장을 읽지 않아 왔다. 그런데 고난 받는 종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기 때문에, 민족 같은 그룹이 아니라 개인을 가리킨다.

[25] 사 52:14; 53:4,10-11.

[26] 사 53:4-6,8.

[27] 사 53:12.

[28] 사 53:9.

[29]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눅 23:33).

[30]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막 15: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31]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 27:59-60).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7-8).

[32]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33] 눅 23:46.

34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시 31:5). 유대인들은 잠자리에 들 때 이 구절을 암송했다. 다시 깨어날 때까지 영혼을 지켜달라는 의미의 간구였다. 예수는 ‘주의 손’을 보다 친밀하게 ‘아버지의 손’으로 바꾸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 인사하는 것과 같다. 예수가 숨 거두기 직전에 이 구절을 암송한 것은, 자신의 죽음을 잠깐 동안의 잠으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잠깐의 시간은 무덤에 있는 사흘을 의미했을 것이다.

[35] 눅 23:47.

[36] 마 27:46; 막 15:34; 시 22:1. 마르틴 루터는 이 구절을 묵상하다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게 되었다. 가톨릭의 가르침과 고행을 통해서도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왜 하나님께 버림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37] 마 27:43.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시 22:7-8).

[38]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시 22:15).

[39] 시 22:16-17.

[40]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 19:24).

[41] 고전 1:22-24.

[42] 이 단락은 평행법(parallelism)으로 읽을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이 단락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이방인)’이 세 번 반복된다. 22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일반적 성향을 이야기한다. 23절에서는 십자가를 대하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일반적 성향을 말한다. 24절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십자가가 상징하는 바를 말한다. 22절부터 24절까지 점층 대구(climatic parallelism)가 사용되며, 23절과 24절에서는 반의 대구(antithetic parallelism)이 사용된다. 그리고 23절을 사이에 두고, 22절의 표적과 지혜는 24절의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교차 대구(chiastic parallelism)가 된다. 그런데 22절에서 유대인들이 구하는 표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초자연적 상징이고, 헬라인들이 찾으려는 지혜는 인위적 노력의 산물이다. 따라서 23절이 말하는 십자가는 표적과 지혜가 아니라는 이유로 양쪽 모두에게서 거절된다. 24절에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능력(표적)이며, 헬라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는 능력이며, 헬라인들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결국 십자가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표적(상징)인 동시에 지혜인 것이다.

[43] 셀수스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가장 부끄러운 방법으로 처형된 자”라고 불렀다(마르틴 헹엘 저, 김 명수 역, 십자가 처형, 대한기독교서회, 1982년, 14쪽). 캐실리우스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병약한 망상들과 황당무계한 미신들을 발흥시켰다고 했다(마르틴 헹엘, 앞의 책, 17쪽).

[44]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

[45] 출 12:3-6.

[46] 출 12:43-45.

[47] 요 19:14.

[48] 요 19:31-36.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 34:20).

[49]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민 9:12). 지금도 그리심 산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월절 양의 뼈가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양을 잡아 피를 뽑고 장대에 꿴 다음, 굽는 과정에서 뼈가 몸통에서 빠져 나오지 않도록 철망을 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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