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
서평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
  • 이신성 목사(광주직동교회)
  • 승인 2019.10.2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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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성 목사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크레이그 바르톨로뮤, 마이클 고힌 지음, 신국원 옮김, IVP, 2019) 
▲ 이신성 목사 광주직동교회/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크레이그 바르톨로뮤, 마이클 고힌 지음, 신국원 옮김, IVP, 2019) 

 

1. 서론

한글 번역본의 책 제목과 달리 원서명은 기독교 철학(Christian Philosophy)이다. 원서의 부제가 알려주듯, 기독교 철학에 대한 체계적이이고 서사적인 입문서로서 이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이 언급하듯, 이미 출간된 『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와 짝을 이루는 것으로, 흔히 저자들의 3부작 중 마지막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만 읽고서는 저자들의 주장, 혹은 생각을 온전히 살피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권으로 출간되었고, 무엇보다 저자들이 그리도 체계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한 기독교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기독교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짧은 글이다. 2부는 한글 번역본이 제목으로 뽑은 것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서양 철학사를 아주 쉽게 잘 요약해 놓았다. 다만 저자들이 기독교 철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 고대 철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대 “이교”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용어는 일단은 “철학의 방향적인 것과 구조적인 면을 신중히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63쪽). 또한 중세를 종합이라는 말로 설명하는데(111쪽), 아무튼 ‘이교’와 ‘종합’이라는 용어는 3부 기독교 철학에서 언급되는 볼렌호븐의 시대 구분을 따른 것이다(418쪽).

이 책의 원서명에서 드러나듯 저자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또한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철학 분야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고 여겨지는 3부에서 다루는 “오늘의 기독교 철학”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생소한 기독교 철학을 위해서 서양 철학사의 맥락을 이해하도록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독자들에게 유익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어려운 개념이 가득한 철학 내용을 저자들의 기존의 책 『성경은 드라마다』에 등장했던 애비와 퍼시라는 친구를 다시 등장시켜서 요점을 짚어간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소설같은 철학책 『소피의 세계』를 상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생,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 글은 이 책을 읽고 느낀 개인적 소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두 단어에 집중하여 본문을 작성하려 한다. 하나는 “구분(분류)”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이다.

 

2. 본론

2.1. 구분이 필요한 철학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여러 개념을 구분함이 철학함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2부 첫 장을 시작하면서 철학의 방향과 구조를 구분하는 데에서도 바로 나타난다(62, 63쪽). 피타고라스 학파 중 처음으로 책을 썼던 필롤라오스(Philolaus)가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무제한적 재료와 그것을 제한하는 것을 구분”했다고 하면서, 칼 후프먼이 “질료-형상 구분을 향한 대담한 첫발걸음”이라고 언급한 것도 인용한다(68-69쪽).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기초적 요소들에 질서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작용하는 원초적 실체와 근본적 힘을 구분”하는 사조를 따른 철학자들로 언급된다(70쪽). “원자론자들은 원자로 가득찬 ‘충만’을 ‘진공’과 구분”하였다고 알려준다(71쪽).

플라톤은 “지각을 통해 경험 세계에 대해 얻는 지식과 이성의 산물인 분석적 지식 사이의 중요한 구분을 인식”하였다고 평가한다(8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 관찰 모음에서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논리와 반박할 수 없는 논거로 결론을 입증하는 연역적 논리를 구분"했으며, 또한 “본질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을 구분”했고(92쪽), “유, 종, 개체를 구분”했으며, 10개의 범주를 분류했다(93쪽). 또한 “가능태와 현실태의 구분을 통해 변화를 설명”하고 “원인도 네 종류로 나누었다”(95쪽).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사이의 창조주/피조물 구분을 확고히 주장했”으며(123쪽), 또한 “영혼의 이성적 기능을 두 종류(스키엔티아, 사피엔티아)로” 나눴다(124쪽). “알베르투스는 계시로부터 나오는 지식(신학)과 자연 세계로부터 유래하는 지식(과학)을 구분했다”(142쪽). “토마스는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한다”(150쪽). “아퀴나스의 사상에서 하나의 중요한 구분은” “바로 존재와 본질의 구분이다”(154쪽). “몸과 정신 사이의 구분이 데카르트 철학의 기초에 깔려 있”다(206쪽). “갈릴레오, 로크,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주관적 감각의 인상에 기초해 사물에 부여하는 특징인 이차 성질을, 물질계에 대한 객관적 지식으로 간주되며 기하학과 수학적 양으로 표시되는 일차 성질과 구분했다”(218쪽).

흄은 “정신의 내용을 인상과 관념이라는 두 종류의 지각으로 분류”하고, “원초적인 것과 이차적인 인상을 구분한다”(233쪽). “칸트는 현상적인 것과 본체를 구분” 짓고(243쪽), “이해의 기초 개념들”인 “범주를 선적 직관이라 부른 직관의 두 가지 형식(공간과 시간)과 구분했다”(244쪽). 또한 “실천적 사유와 관련해 가언명령과 정언명령을 구분한다”(247쪽). 그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숭고를 구분한다”(249쪽). “레싱은 역사적인 우연적 진리와 이성의 필연적 진리를 구분”하였다(256쪽). “다윈은 두 가지의 주요 선택 양식(인공 선택과 자연 선택)을 구분했다”(278쪽). 러셀은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지시하는 상징과 그가 ‘불완전한 상징’이라 묘사한 여타의 상징을 구분”하였다(288쪽). 후설은 “자연적 사유와 현상학적 사유를 구분했다”(295쪽).

이러한 점에서 철학함은 보통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보이는 것도 잘 “구분”하고 적절하게 “분류”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2. 목적이 이끄는 철학, 기독교 철학의 중요성

이 책의 저자들은 철학함이 목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스토아 철학의 목적은 지혜라는 의미로 정의된 인간 행복이었다”(99쪽).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생의 목적은 쾌락이다”(101쪽). 기독교 신학자와 기독교철학자들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가장 온전한 하나님의 계시와 온 세상을 위한 그분의 목적을 가진다고 믿는다”(110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게 그리스 철학은 신학과 복음 전도의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으며, 최초의 변증가이며 순교자 유스티노스에게 “그리스 철학의 목적은 신을 찾아 아는 것”이었다(114쪽).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목표는 지혜,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절정에 이르러 인간이 갈구하는 행복을 가져오는 진리의 지식이다”(121쪽). “에리우게나의 존재론적 위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에리우게나도 철학에서 종교적 목적을 발견했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신플라톤 주의의 범주들을 활용했다”(133쪽).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이교대전』은 무슬림이나 유대인, 이단과의 선교적 만남을 위해 그리스도인을 준비시키는 변증적이고 선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며 “『신학대전』은 신학의 초보자를 위해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살피는 보다 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145쪽).

저자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실재에 대한 지식이 다시 과학 연구의 절대적 목적인 것처럼 나타났다”고 하면서 “그 최초의 독립적인 지적 활동은 무관심한 자연 개념으로의 복귀였다. 르네상스의 전체 철학은 이 목적을 향해 나아갔으며 이 방향에서 그 위대한 결과들을 성취했다”(184쪽)고 설명한다.

칸트의 “목표는 계몽주의가 신봉하는 가장 근본 항목인 이성의 권위에 영원한 기초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는 주장을 인용하며(241쪽), “칸트는 계몽주의를 구하기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성취하려 했다. 첫째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는 비판과 유물론에 빠지지 않는 자연주의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비판과 자연주의 사이의 긴장을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243쪽).

하지만 이러한 목적 중심의 철학은 근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뉴턴과 다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278쪽). 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르트는 목적 자체를 부정했다. “우리를 위해 공표된 객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고 삶에는 궁극적인 의미나 목적이 없으며 그리하여 이 점에서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을 상기시킨다(297쪽).

사실 저자들은 목적론으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혹독하게 평가하였다. “성경의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창조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할 수도, 질서와 불변성과 변화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96-97쪽). 여기서 우리는 저자들이 주장하는 기독교 철학의 성격을 깨닫게 된다. 다름 아니라 진정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 철학이라는 것이다.

 

3. 결론

이 책은 서양 철학사의 흐름과 강조점, 논쟁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잘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별히 앞에서 언급했듯, 철학함에 있어서 중요한 “구분”하는 능력과 “목적”을 적절히 잘 이용하여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독자에겐 생소한 기독교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는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철학적(?) 혹은 신학적(!) 판단으로 어떤 철학자들은 아예 언급도 안하고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미국에서 유명한 과정 철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화이트헤드를 단지 플라톤 철학을 언급할 때만 인용하고(81쪽), 현대 철학 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한 의심은 증폭된다. 미국에서는 과정 철학에 기반한 과정 신학도 발달하였는데, 저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영역까지도 언급하였다면 참으로 폭넓고 더 좋은 철학 입문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저자들이 철학사에서 철저히 무시되었던 하만과 같은 철학자를 발굴하여 알린다(255쪽)는 점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이와 함께 “개혁주의 인식론”과 “개혁주의 철학”에서 언급된 “개혁주의”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더군다나 한글로는 똑같이 “개혁주의”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를 보면 Reformed Epistemology와 Reformational Philosophy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데도 그냥 넘어간다. 더군다나 저자들이 언급하는 개혁주의 인식론은 미국 학자들의 이론이고, 개혁주의 철학은 네덜란드의 학자들의 이론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그 두 지역과 분야 밖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학자들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이어진다면 정말 이 책은 기독교 철학의 입문서의 고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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