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1)
『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1)
  •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 승인 2020.07.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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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1)

 

이 논문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썼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당대 유대인들은 물론 특별히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다. 당시 이방인들이란 로마인들과 그 통치하에 식민지와 속주들의 주민인데, 이들은 그리스 로마 고전에 익숙했다. 누가의 글을 접한 독자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학적인 텍 스트에 근거하여 예수와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 누가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낯선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그들에게 익숙한 서사 방식과 표현 방식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 기 때문에 누가가 이용했을 그리스 로마 고전이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누가의 이방 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누가의 글을 받아들였을 지를 그리스 고전과의 관련성 속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이런 필요성에 부응하여 누가의 글과 호메로스의 서사시, 호메로스적 찬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비교한다.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1. 들어가는 글: 누가의 독자는?

그리스 로마 고전과 신약성서, 특히 복음서 가운데 하나인 누가복음의 관련성을 조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일찍이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 때(기원전 334~322년)부터 그리스 문화권에 편입된 유대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70인 역 성서’(ἡ μετάφασις τῶν Ἑβδομήκοντα; Versio Septuaginta Iinterpretum)1) 가 완역되고 보급되면서 히브리어 원전 구약성서보다는 그리스어 번역의 구약성서를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고 보급되었다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적인 종교와 윤리, 세계관의 주요 개념 들이 그리스의 사상으로 해석되고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히브리어는 점차적으 로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종교 지도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보다는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 역 성서’를 점점 더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예수와 그 의 제자들, 사도들과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 역시 70인 역을 읽었으며 강독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저술에 인용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담은 복음서와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서신들과 요한의 예언서도 모두 그리스어로 집필되었다. 

이런 종교적, 문화적 환경에서 그리스어를 읽고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그리스 고전에 익숙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스어를 익히면서 그것이 훌륭하게 구사된 고전을 주교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4대 복음서의 하나인 누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누가의 저작 연대는 서기 80~110년 사이로 추정 하는 것에 대체로 합의하고 있으며, 그가 저술한 또다른 작품인 사도행전도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2) 이 글은 일단 누가가 위의 두 책의 작가라고 전제하고3), 그가 그리스 고전과 함께 이를 모방하며 개화한 로마 고전까지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와 로마 고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신의 집필에 적극 활용하였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서 그의 사역,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까지를 다룬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전통 종교인 유대교에서 예고되었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임을 분명히 밝히며, 탄생지였던 베들레헴에서 시작하여 예수가 자라고 활동하던 갈릴리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편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속편으로, 예수로 인해 성립한 기독교가 제자들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 최초의 과정을기록한 것이다. 

예수의 승천 이후 그의 제자들(사도)의 활동이 전반부를 장식하며, 제13장 이후로는 뒤늦게 사도의 대열에 합류한 바울이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서사의 공간은 예수가 승천하고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과정을 통해 확 장되며, 마지막으로 바울이 도착한 로마로 옮겨진다.4)

이와 같은 공간 이동을 통해 누가는 기독교가 유대 전통에서부터 새로운 종교로 거듭나서 전 세계인들의 구원을 위한 보편 종교로서 확립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다. 특히 마지막 로마에서의 설교는 첫 대상이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상위층 사람들”(τοὺς ὄντας τῶν Ἰουδαίων πρώτους) 이었지만, 그들이 바울의 사명을 우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가운데 일부는 그의 설교를 받아들이지 않자,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 들에게로(τοῖς ἔθνεσιν) 보내어진 줄 당신들은 알라. 그들이 그것을 들으리라” 선언하며(28:28),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모두”(πάντας τοὺς εἰσπορ ευομένους πρὸς αὐτόν) 영접한다. 

이 마지막 구절은 짧지만, 기독교의 구원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음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공간의 이동과 확장, 그에 따라 복 음이 전 민족에게로 전파되는 거대한 서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가가 두 작품을 집필한 시기는 로마가 황제에 의해 지배되던 제국의 시기였으며5) 당시 로마는 이른바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로마의끝이 곧 세상의 끝이며, 로마가 곧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적어도 누가의 서사는 이런 당대의 지정학적인 인상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서사에 핵심 주인공인 예수와 바울은 모두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활동한다.6) 

‘이런 상황에서 누가가 두 작품을 쓰면서 염두에 둔 독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적어도 누 가는 두 종류의 독자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는 예수의 고향이며 바울이 종교적인 뿌리를 두고 있던 유대 전통의 독자들이며, 다른 하나는 유대 전통 바깥의 이방인들인데, 그들은 대체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전통 속에 있던 사람들이다.

누가는 자신의 두 작품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유대교의 전통에 잇닿아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도 낯선 것이었으며, 특히 유대인의 영역 너머 로마 제국의 시민들, 곧 이방인들에게는 더욱 더 낯선 것이었다.7) 먼저 『사도행전』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바울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초대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고 제거하는 역할에 열성적이었다는 사실이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 들의 반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그 이후 그의 활동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도 그 방증이다. 그 보다 앞서 예수가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 자체에 낯선 이방인들에게는 더더욱 낯선 것이었다. 누가는 기독교에 낯선 이 두 집단을 모두 독자로 두었음에 분명하다. 물론 두 작품의 첫부분에서 특정 독자 ‘테오필로스’가 언급되지만, 이는 이방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모두 일반적인 이름이었으며, 이 이름은 액면 그대로 ‘신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상징적인 이름일 수 있다.8) 따라서 이 두 작품은 당연히 모든 사람을 독자로 놓고 있으며, 당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독자인 셈이다.9)

특히 누가가 유대인들 이외의 이방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알려주려고 했다면, 그 이방인들이란 결국 로마시민들과 로마제국의 식민지인들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의 로마의 문화와 문명은 그리스의 그것을 수용하고 모방(imitatio, μίμησις)하며 경쟁(aemulatio)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립되었다.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로마의 그리스 문명 수입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절정에 이르렀고,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등 아우구스투스의 문화적 황금시대에 활약했 던 로마의 시인들은 그리스 시인들을 모방하는 일을 창작의 중요한 과정이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아우구스투스의 통치를 신화적으로 정당화 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모방의 모범으로 삼았다. 이는 표절의 시비가 걸리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호메로스와 같은 최고 작가의 반열에 이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통했다. 오비디우스가 호메로스는 물론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를 모방하고, 앞선 작가인 베르길리우스와 경쟁했던 사례도 모방이 창작의 중요한 방식이며 요소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뿐만 아니라, 대가를 답습하고 모방하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로마의 시인이 그렇듯, 로마의 독자들도 그리스 문학과 취향에 익숙해 있었고, 그 익숙함은 최고 수준의 교양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이러한 사정은 초기 기독교의 복음서 저자들과 그들 이 겨냥한 독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10) 누가는 바로 그런 독자들을 향해 두 작품을 썼던 것이다.

나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누가가 예수와 사도들, 그리고 바울의 이야기를 쓸 때, 그리스 로마 고전을 모방하였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주요 검토 대상은 누가의 『누가복음』이지만, 『사도행전』의 일부를 곁들여 다룰 것이다. 그리스 로마 고전으로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적 찬가 가운데 5번 「아프로디테 찬가」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의 관련 부분을 검토할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한 성과를 내놓은 D. R. MacDonald 의 연구가 검토의 주요 대상이다. 그는 “The Shipwrecks of Odysseus and Paul”을 내놓은 이래11), 누가의 두 저술을 비롯해서 신약성서, 특히 공관 복음과 그리스 로마 고전과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하며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는데12), 동일한 주제에 관한 이전의 단편적인 연구들을 체 계적으로 비판, 종합하는 한편, 다른 학자들의 다양한 후속 연구를 생산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2. 누가는 그리스 로마 고전을 모방했는가?

MacDonald의 주장은 한 마디로 누가가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의도적으로 모방했으며, 이 과정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과 행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보다는 기독교의 의미와 가치, 특성의 진실은 지키되, 이를 부각하기 가장 효율적인 서사를 짓는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간다면 누가의 기록은 사실을 있는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일부 각색한 것이 된다. 중요한 것은 기록의 사실성보다는 기록의 진실성, 메시지의 함의인 셈이며, 그것을 위해 실증성은 메시지에 의해 다소 훼손되는 것 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누가의 복음서는 1인칭 서술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 격자와 말씀의 일꾼이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든사람은많기때문에,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테오필로스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3) 

성서의 대부분의 저자들이 취하는 태도는 ‘성령의 감동에 의해 말씀을 기록한다’는 것인데, 그에 반해 누가는 자신이 직접 읽고 듣고 보고 확인한 것을 직접 쓴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무사(Mousa) 여신을 부르며 영감을 얻길 요청하며 시작하는 그리스 로마 서사시의 전통보다는 실증적 자료와 증언에 바탕을 둔 그리스 로마 역사 서술의 정신을 따르는 셈이다.14)

이렇게 시작한 『누가복음』은 예수의 일생을 기록하는데, 이 이후의 서술은 3인칭으로 이어진다. ‘내’가 쓰지만, 그 내용은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책에 이어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테오필로스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가 행하고 가르치기를 시작함부터 그가 택한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고 승천한 날 까지의 일을 기록하였습니다”라고 1인칭을 주어로 노출시킨 후, 바울의 전도 여행을 기록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그가 바울과 동행하였던 것을 보 여주기라도 하듯이 “우리”가 주어가 되는 서술을 전개한다. 

이 부분을 액면 그대로 읽는다면 그것은 누가 자신이 사울과 동행하면서 직접 목격한 것을 기록했다고 봐야 한다.15) 이와 같은 서술은 그리스 역사 서술의 기본 태도와 유사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자주 등장하는 ‘오뒷세우스의 서사 기법’과도 유사하다. MacDonald는 이점에 주목하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 구성 방식은 누가가 호메로스의 기법을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주목했듯이 ‘우리’가 주어가 되는 서술은 우연찮게 트로이아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전도여행 당시, 바울은 소아시아 북쪽 비튀니아(Bithunia)로 가려고 했으나 꿈에 환상을 본 뒤 마케도니아로 행선지를 바꾸게 되고, 이를 위해 트로아스(Troas)로 간다. 여기부터 ‘우리’, 다시 말해서 바울과 합류한 누가, 그리고 그들의 일행은 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다(행 16:11-40). 이후 ‘우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역시 출발지점은 트로아스이다. 

트로아스는 트로이아(Troia)를 포함한 지역의 이름이기도 하고, 구체적으로는 트로이아와 가까운 곳이다. 이름 또한 비슷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트로이아 전쟁 신화를 떠오르게 한다. MacDonald에 따르면, 누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주어인 문단을 트로아스에서 출발하는 서사로 작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바울의 여행 일부가 트로이아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떠나는 오뒷세우스나 새로운 트로이아를 찾아 떠나는 아이네아스의 모험을 연상시키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주어가 된 서사의 가장 유명한 부분은 사도행전 27장 1절 부터 28장 16절까지이다. 이 부분의 출발점은 앞선 두 사례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이사라(Caesarea)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라로 온 바울이 누가와 함께 배를 타고 로마로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우리’의 목적지가 로마라는 것이며, 이 점에서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가 멸망한 트로이아를 버리고 로마로 떠나는 모험과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탄 배는 처음에는 아드라뭇데노(Adra- myttion) 배였지만, 무라(Myra)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타는데, 이 배는 크레타 섬과 멜리데(Malta) 섬 사이의 바다에서 큰 태풍을 만나 표 류하고 끝내 난파되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다. MacDonald를 비롯해서 많은 학자들은 이 부분이 그리스 로마 문학에서 즐겨 소재로 사용 되는 항해와 난파의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데에 주목해 왔다. 성경 전체 에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는 항해 이야기는 구약 성서의 요나의 항해를 제외하면, 바울의 항해 이야기가 유일하다. 

예수가 폭풍을 잠재우는 이야기도 있지만, 바울의 항해와 비교한다면 그것은 지중해가 아니라 갈릴리 호수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한편 요나의 서사와 비교 하면, 바울의 항해의 과정은 훨씬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누가가 기록한 바울의 다른 여행에서도 배를 타는 이야기는 있지만, 모험이라고 할만한 사건은 이것 이외에는 없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전무한 항해의 모험 이야기가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것에 당시 독자들이나 후대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런 항해 모험의 사례는 그리스 로마 문학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소재의 하나였음에 주목하면 누가가 바울의 항해를 자신의 두 저술의 끝 부분에 배치한 의도를 단순한 사실 기술 이상의 문학적 효과의 측면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바울의 항해 이야기를 읽는 그리스 로마 문화권의 독자들은 당장에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아폴로니우스의 『아르고호의 모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같은 그리스 로마 문학에서 그려진 항해 이야기 나 역사기록의 유명한 일화들을 떠올렸을 법하다. 이런 점에 주목한 학자들은 누가가 자신의 두 저작의 마지막 부분에 바다 모험의 이야기를 넣은 것은 그리스 로마 문화권 독자를 의식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MacDonald는 이 부분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제5권과 제10권에서 12권을 모방한 것이라고 딱 꼬집어 주장하면서 누가의 저술 의도를 해석 하려고 한다. 

과연 그의 주장대로 누가는 그리스 로마 문화권의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바울에게 독특한 위상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메로스를 모방한 것일까? 그가 정말 호메로스를 읽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예수와) 바울의 서사를 위한 지침으로 삼았던 것일까? 아니면 사실이 그랬으니까 누가는 단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며 우연히 호메로스의 서사와 비슷했던 것일 뿐일까? 그래서 누가는 호메로스의 서사를 떠올리면서 그 표현과 서사의 구조를 차용하여 바울(과 누가)의 실제 경험을 기록한 것은 아닐까?16)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로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 목적은 네로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서이다. 예루살렘 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곳이면서 동시에 부활하여 승천한 곳이다. 예수는 승천에 앞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곧 제자들에 대한 명령이었고, 그 명령에 결정적인 마침표를 찍는 사람은 바울이었다. 

예수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이 기독교가 성립하는 과정이라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여정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종교가 될 것이라는, 종교의 보편화가 시작됨을 보여주며 완성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로마는 제2의 예루살렘인 셈이다. 

이 여정은 로마의 독자들에게는 멸망한 트로이아를 탈출하여 바닷길의 고난을 뚫고 로마 에 도착하여 새로운 트로이아, 제2의 트로이아를 건설하는 아이네아스의 여정을 떠오르게 한다. 땅 끝까지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려면, 바울은 예수를 죽인 죄로 얼룩진 예루살렘을 떠나 새로운 예루살렘인 로마로 가야 만 했던 것이다.17) 그러나 그 여정은 순탄하지 않으며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난항의 길이다.

MacDonald에 따르면, 누가는 ‘우리’의 여정 가운데 전반부의 항해와 멜리데 섬에서의 환대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제5권과 6권 전반부까지를 의도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오뒷세우스는 칼륍소의 섬을 떠나 무난하게 집으로 가는 것 같았지만, 곧바로 분노한 포세이돈이 일으킨 폭풍에 휩싸여 죽을 고비를 맞이한다. 

이때 레우코테아 여신이 나타나 오뒷세우스에게 구원의 희망을 약속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이에 따라 오뒷세우스는 정신을 차리고 폭풍을 이겨내며 알키노오스가 다스리는 파이아케스 족의 나라에 도착한다. 도착한 이후에 오뒷세우스는 따뜻한 환대를 받고 마침내 섬을 떠나 고향 이타카까지 갈 수 있도록 배와 항해에 필요한 물품, 그리고 선물까지 받는다. 이와 같은 서사의 줄거리가 누가에 의해 차용되었다는 것이 MacDonald의 해석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구절을 비교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구절은 난파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두 물이 합 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ἐπέκειλαν τὴν ναῦν),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27:41)이다. 이 구절 에서 배(ναῦν)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은 물론 신약성서의 다른 어떤 구 절에서도 나오지 않고 오직 이곳에서만 나온다. 일반적으로 신약성서에 서 배를 가리킬 때는 언제나 “πλοῖον”을 사용한다.18) 

구약에서도 항해 이야기가 나오는 요나의 그리스어 번역(70인 역)에서는 “배삯”을 표현할 때는 “ναῦν”(배)에서 파생된 “ναῦλον”을 사용하지만(1:3), 배는 “πλοῖον” 으로 표현한다(1:3, 4, 5). 또한 “걸다”(ἐπέκειλαν)라는 동사는 호메로스 서 사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단어이며, 이 “ναῦν”(배)와 “ἐπέκειλαν” (걸다)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전형적인 호메로스의 용례라고 할 수 있다.19) 이 구절에 대한 MacDonald의 언급은 이전의 학자들이 단편적으로 이미 지적한 바 있으며, 후대에 많은 학자들도 MacDonald를 따라 이 구 절이 누가가 호메로스를 모방한 결정적인 증거라고 인정하는 편이다.20)

하지만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학자들도 있다. D. Marguerat는 MacDonald 의 설명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 표현의 사용을 근거로 누가가 호메로 스를 직접 모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이미 호메로스의 표현은 그리스 상고기로부터 고전기,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모방과 인용의 대상이 되었으며, 따라서 호메로스를 보지 않고도, 그리고 호메로스를 모방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고도 이 표현을 얼마든 지 관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21) 우리는 이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그리스 로마 문화 전체에 끼친 영향을 생각한다면22), 누가가 두 개의 저술을 집필할 때, 특정해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모방의 제1의 모델로 삼았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호메로스적인 표현을 누가가 의도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좀 완화된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호메로스를 포함하여 그리스 로마의 다양한 문화적 유산을 자신의 서사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계속>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전공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열린 2019년 12월 13일 김헌 교수가  그리스 로마 고전과 '누가' 사이: 호메로스적 아프로디테 찬가 5번과 누가복음 2장 비교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제하고 했다.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전공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열린 2019년 12월 13일, 김헌 교수는 "그리스 로마 고전과 '누가' 사이: 호메로스적 「아프로디테 찬가」 5번과  「누가복음」 2장 비교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제하고 했다.

 

김헌 교수는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서양고전학, 호메로스)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에서 서양고전학 박사학위(서양고전학,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았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생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역사,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으며 , 역서로는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  『'어떤  철학'의 변명』 등이 있다. 

또한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지식의 기쁨>, <최강 1교시> 등에 출현하며 대중에 서양 고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김헌『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인문논총 제77권 제1호 (2020.02.28), pp. 79~106  

-본 아티클은 집필자이신 김헌 교수님의 동의 하에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에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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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지원한 집담회의 성과임.

1)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로 재위기간은 기원전 283년부터 246년. 알렉산드로스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아들로 기원전 308/9년 에 태어났다. 재위 기간 중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과 박물관을 발전시키며 이룬 문화적인 성취로 높이 평가된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은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기원전 350~280년)가 제안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아리스토텔 레스 또는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로 알려진 데메트리오스는 카산드로스 왕(기원 전 355~297년)에 의해 아테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가 기원전 307년 정적들에 의해 추방되어 기원전 297년부터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궁에 머물며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문화운동을 도왔다. 기원전 250년경 성서 번역 을 위해 초대되었던 유대의 학자들은 서로 떨어져 지내며 번역을 했는데, 나중에 그들의 번역을 모아 비교해보니 완전히 일치했다는 전설이 있다[알랭 카롱 외 (2000), 김호영 옮김, 알렉산드리아, 창해, p. 64].

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작 과정에 관한 문헌학적인 접근에 관해서는 H. J. Cadbury (1958, 19271), The Making of Luke-Acts.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를 보기 바람. 한편 예수의 일생에 관한 공관복음서로 꼽히는 마태복음은 서기 80~90년 사이에, 마가복음은 65~7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며, 문헌의 성격은 다르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기술된 요한복음은 90~11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을 액면 그대로 읽는다면, 누가는 바울의 전도 여행의 많은 부분에서 동행한 것으로 기술되며, 자신이 들은 것과 직접 겪은 사실 을섞어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저자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누가에 대해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그가 이 두 책의 저자가 아닐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3) A. Plummer (1901),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 Luke. Edinburgh, p. xi. Plummer는 「누가복음」의 저자에 관련해서 세 가지 주장 을 한다. 1)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는 사도행전의 저자와 같다. 2)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의 동료이다. 3) 이 동료는 누가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개는 확실한 반면, 세 번째는 가설이라고 인정하지만, 다른 어떤 가설보다도 더 개연성이 높다 고 주장한다.

4) 두 작품을 ‘여행’의 모티브로 살펴본 연구는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국내에서 볼 만한 것으로는 대표적으로 반재광(2013), 「누가-행전의 여행 내러티브 연구: 눅 9:51-19:44와 행 19:21-28:31」, 성경과 신학 66, pp. 125-155; 이두희(2011), 「바울의 예루살렘 여행기에 나타난 ‘비극적 역사’ 문체」, Canon & Culture - A Journal of Biblical Interpretation in Context 5 (1), pp. 237-267 등을 들 수 있다.

5) 집필 추정 시기에 통치하던 황제는 티투스(79~81년, 제10대) 도미티아누스(81~96년, 제11대), 네르바(96~98년, 제12대), 트리아누스(98~117년, 제13대)였다.

6)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그의 약혼자인 요셉이 모두 갈릴리에 터를 두고 살고 있었는데, 베들레헴까지 가게 된 이유가 그 역사적 배경을 알려준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영토에 포함된 사람들의 호적 조사를 명했을 때, 예수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장 1~7절 참조.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전 영토에 걸쳐 인구조사를 했던 적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 이 있으며, 국지적으로 시행된 인구조사였는데, 누가가 이를 잘못 알고 기술했다는 주장도 있다. F. Bovon (1991), L’Évangile selon Saint Luc 1,1-9,50. Genève: Labor et Fides, pp. 117-118. 어쨌든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초대 로마 황제였던 아우 구스투스(기원전 27년~서기 14년)와 티베리우스 황제(14~37년)가 로마를 통치하 던 시기다. 한편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 타르소스 출신인데, 그의 생몰 년대(5-64 (67?)년)를 고려하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37~41년), 클라우디우스 (41~54년), 네로(54~68년) 황제가 통치하던 때에 활동했으며, 마지막에는 네로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7)  Cf. L. C. A. Alexander (2006), Acts in Its Ancient Literary Context. London, T&T Clark, p. 2. “the message of the Christian euangelion was not only good but news — something new, something that hadn’t been heard before.”

8)  A. Plummer (1901), p. 5.

9)  이 글에서 나는 누가의 독자를 특정하는 대신 유대인들과 그리스 로마 문화권의 이방인 일반이 누가의 실제적 또는 잠재적 독자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의 독자를 전제하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며 그에 따라 누가의 저술을 읽어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R. Bieringer, G. van Belle, and J. Verheyden (ed.) (2005), Luke and His Readers (Festschrift A. Denaux). Leuven : Leuven University Press를 참조바람. 이 논문집에서 B. Dehandschutter는 에이레나이오스 (130~202년)가 누가의 저술은 발렌티니우스(100~160년)의 제자들이었던 프톨레마 이오스 영지주의자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을 소개하면서 논의를 펼치고 있다(Readers of Luke in the Second Century the Valentinian Gnositics, pp. 49-60).

10) D. R. MacDonald (2015), The Gospels and Homer, Imitations fo Greek Epic in Mark and Luke-Acts. Lanham, Boulder, New York, London: Rowman & Littlefield, pp. 3-7.

11)  이 논문은 1999년에 New Testament Studies, 45 (pp. 88-107)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 을 발표하기 이전에도 MacDonald는 “Luke’s Eutychus and Homer’s Elpenor: Acts 20:7-12 and Odyssey 10-12”, JHC 1, 1994, pp. 5-24; Christianizing Homer: “The Odyssey,” Plato, and “The Acts of Andrew.”.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4를 발표했지만, 본격적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상기한 논문이다.

12) The Homeric Epics and he Gospel of Mark (2000, New Haven: Yale University), Does the New Testament Imitate Homer? Four Cases from the Acts of the Apostles (2003,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The Gospels and Homer: Imitations of Greek Epic in Mark and Luke-Acts (2015, Lanham: The Rowman & Littlefield), Luke and Virgil: Imitations of Classical Greek Literature (2015, Lanham: The Rowman & Littlefield)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13) 누가복음 1:1-4. 번역은 개역개정판에서 가져온 것이며, 어투와 고유명사는 손질 하였다.

14) 이 점에 주목한 연구로는 D. Marguerat (2002), K. McKinney, G. J. Laughery, R. Bauckham (Transl.), The First Christian Historian. Cambridge University Press를 보기 바람.

15) “우리”가 주어가 된 부분들에 관한 연구도 매우 활발하다. 이에 관해서는 H. J. Cadbury (1957), “‘We’ and ‘I’ Passages in Luke-Acts”, New Testament Studies 3 (2), pp. 128-132; V. K. Robbins (1975), “The We-Passages in Acts and Ancient Sea Voyages”, BR 20, pp. 5-18; V. K. Robbins (1978), “By Land and by Sea: The We-Passages and Ancient Sea Voyages” In Perspectives on Luke-Acts. ed. C. H. Talbert, Danville VA/Edinburgh; C. J. Hermer (1985), “First Person Narrative in Acts 27-28”, Tyndale Bulletin 36, pp. 79-109; S. M. Praeder (1987), “The Problem of First Person Narration in Acts”, Novum Testamentum 29 (3), pp. 193-218; A. J. M. Wedderburn (2002), “The ‘We’-Passages in Acts: On the Horns of a Dilemma”, ZNW 93, pp. 78-98; S. Byrskog (2003), “History or Story in Acts — A Middle Way? The “We” Passages, Historical Intertexture, and Oral History” In Contextualizing Acts, Lukan Narrative and Greco-Roman Discourse. ed. T. Penner, C. V. Stichele, Atal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pp. 257-283; W. S. Campbell (2007), The We Passages in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Narrator as Narrative Character.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W. S. Smith (2012), “We-Passages in Acts as Mission Narrative” In The Ancient Novel and Early Christian and Jewish Narrative: Fictional Intersections. ed. M. P. F. Pinheiro, R. Pervo, J. Perkins, Groningen: Barkhuis Publishing & Groningen University Library, pp. 171-188. S. A. Adams (2013), “The Relationships of Paul and Luke: Luke, Paul’s Letters, and the “We” Passages of Acts” In Paul and His Social Relations. ed. S. E. Porter, C. D. Land, Brill, pp. 125-142.

16) 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와 기존 연구 소개는 H. Kim (2019), “A Metaphorical Interpretation on Paul’s Sea Journey to Rome in Acts 27:1-28:15” In Studi del sesto convegno RBS — International Studies on Biblical & Semitic Rhetoric. ed. F. Graziano, R. Meynet, pp. 203-224을 보기 바람.

17) 이와 같은 시각은 D. R. MacDonald (2015), Luke and Virgil, Imitations of Classical Greek Literature. Lanham, Boulder, New York, London: Rowman & Littlefield를 참조 바람. 이와 맥을 같이하는 국내의 연구로는 이종철(2012), 「바울의 로마 항해 내러티브와 버질의 『아이네이스』(Aeneid)의 상호텍트성 연구」, 신약논단, pp. 1103-1140을 보기 바람.

18)  『사도행전』의 경우, πλοῖον (27:6, 17, 38, 39), πλοίου (27:10, 15, 19, 22, 30, 44), πλοίῳ (27:2, 31, 37, 28:11). D. Marguerat (2015, Les Actes des Apôtres (13-28). Fribourg: Labor et Fides, p. 361)에 따르면 ναῦς는 전함을 가리키는 반면, πλοῖον은 상선을 가리킨다.

19)  D. R. MacDonald (1999), “The Shipwrecks of Odysseus and Paul”, New Testament Studies 45 (1), pp. 94-95. ναῦς와 (ἐπι)κέλλειν가 함께 나오는 용례는 오직 『오뒷세이아』에서만 여섯 번 나온다. “πρὶν νῆας ἐϋσσέλμους ἐπικέλσαι” (9.148), “κελσάσῃσι δὲ νηυσὶ” (9.149; 9.546-47, 10.511, 11.20, 13.114).

20)  F. Blass (1895), Acta apostolorum sive Lucae ad Theophilum liber alter, editio philologica. Göttingen: Vendenhoeck & Ruprecht, p. 282; F. F. Bruce (1990), The Book of Acts. 3rded. Grand Rapids: Eerdmans, p. 474; S. M. Praeder (1984), “Acts 27:1-28:16: Sea Voyages in Ancient Literature and the Theology of Luke-Acts”,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46 (2), p. 701.

21)  D. Marguerat (2015), Les Actes des Apôtres (13-28). Fribourg: Labor et Fides, p. 361.

22)  호메로스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개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일리아스』거나 『오뒷세이아』다.”(R. Queneau), “호메로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을 시작하며 점차 어른으로 자라날 때 곁에 서있고, 우리가활짝피어날때, 함께피어난다. 우리는늙을때까지결코그를 싫증 내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곁에서 치워두자마자 곧바로 그를 향한 갈증을 느 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호메로스가 갖는 한계 만큼이 우리 삶의 한계라고.”[『호메로스적 알레고리』; 알베르토 망구엘(2012),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서울: 세종서적, pp. 47, 32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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