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론 연구자 문우일 교수의 요한계시록 세미나 초읽기
필론 연구자 문우일 교수의 요한계시록 세미나 초읽기
  • 윤지숙 기자
  • 승인 2021.09.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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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그리스-로마, 헬라적 유대 체계인지, 예수님 전승인지 알아볼 가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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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일 교수(전 서울신대 신약학 교수)

 

먼저 베트남에서 귀국하신 것을 두손 들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지난 5월-6월까지 8주간의 요한복음 세미나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의 연구를 재탕 삼탕하지 않고 새롭게 연구되어진 것들을 나누어 주셔서 수강자들의 만족도가 꽤 높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번 9월 7일부터 8주간 온라인으로 시작되는 요한계시록 세미나와 9월 27일과 28일 전라도 광양에서 가질 오프라인 세미나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주의나 신조 교리 방법론 등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요한계시록 자체를 찬찬히 읽고 있어요. 어떤 단어와 문장이 나오는지, 그런 단어와 문장이 성경의 다른 책이나 성경 외의 다 른 문헌에도 나오는지, 당시에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지 읽으며 찾아보는 중입니다. 잊어버리는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좀 더 속도를 내야겠지요. 읽기를 어느 정도 한 다음에는, 그동안 강의했던 것들을 좀 보충하고 글자로 정리하면서 강의에 임하려고 합니다. 교직에 있을 때는 늘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자료 찾아 강의하기도 벅찼거든요.

요한계시록 주변 문헌과 역사서들을 읽으며 요한계시록이 쓰일 당시 상황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무엇일지 고민합니다. 저는 본래 요한복음을 전공 했는데요, 그동안 본의 아니게 요한복음보다 요한계시록 강의를 더 많이 했어요. 강의 요청이 더 많았기 때문이죠. 주로 신학대학교와 대학원, 평생교육원과 목회신학원(목회자 전문 양성기관) 등 전문 교역자와 신학자를 배출하는 기관에서 강의했는데요, 아마도 요한계시록은 실제로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렬한 책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가 신학도들에게 꼭 필요하 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하여 다른 분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요한계시록 강의를 듣는다고 하면 성경 66권 중 가장 논란이 많아서 그런지 이상한 눈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다른 신약 성경과 달리 서신과 예언적-묵시라는 독특한 문학적 장르를 형성 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의 구조나 구성(나선형 구조, 요점 반복, 막간)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환상과 신현, 내세로의 여행, 현재적 구원, 종말론적 심판 등

묵중한 주제이고 다양한 이유들을 추측할 수 있겠으나, 몇 가지만 말씀드려요.

(1) 요한계시록의 장르는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빠르고 강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옛 장르를 효과적으로 응용하여 구체화한 장르 같아요. 서신, 예언, 묵시는 모두 독자 흡인력이 강한 장르 입니다. 각 요소가 신약 성경 곳곳에 흩어져 있으나, 특별히 요한계시록에서 세 장르가 합해져 그 기능이 증폭됩니다. 예언과 묵시는 초월자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오래된 방식으로서, 글에 신적 권위와 신비감을 부여합니다. 특히 묵시는 오감을 자극하는 생생하고 기이한 장면들을, 우주적 차원 을 넘어서는 차원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역동적으로 빠르게 펼치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강렬한 장르입니다. 여기에 서신의 특성이 더해져, 초월적 발신인과 지상의 수신인을 특정하고, 주로 1인칭을 사용하므로, 독자는 마치 초월자를 마주하는 듯한 경외감에 사로잡혀 바짝 긴장하고 집중하게 되지요.

(2) 그처럼 강렬한 계시를 접한 수신인(독자)은 두렵기도 하겠지만,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예컨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인을 잔인한 방식으로 발본색원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수신인(독자)은 오늘 잡혀가 사자 밥이 될지, 내일 십자가에 못 박힐지, 모레 사지를 절단당할지, 알 수 없는 처지에 있었을 거예요. 때로는 하나님마저 나를 버렸다는 외로움이 엄습해 왔겠죠. 그럴 때 요한계시록을 접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고통에 동행하심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박해를 이겨 낼 용기와 기력을 회복했을 거예요.

(3) 만약에 수신인(독자)이 구약성경을 알고 예루살렘 성전을 기억하거나 전해 들은 사람이라면, 요한계시록의 글자 하나하나가 더욱 친근하게 눈에 들어왔을 거예요.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언어와 장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여 해결하시던 바로 그 장대한 광경들과, 예루살렘 성전의 행복한 기억들을 조각조각 기워넣은 조각보와 같으니까요. 그 단어 사이사이에서 하늘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한 예루살렘을 언뜻언뜻 보고, 하나님 의 구원사에 참예하는 백성으로서 도도한 자부심을 다질 수 있었을 거예요. 어린양 예수님처럼, 이 박해를 이겨낸 후에는 내가 하늘성전에서 노래하리라, 하고 담대하게 박해를 맞이했겠죠!

(4) 요한계시록은 당시 상황을 인류 역사에서 매우 드문 우주적 위기로, 그 위기들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종말 상황으로 파악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그런 위기 상황이 인류사에서 자주 있지는 않았어요. 노아 방주 시대, 출애굽 시대, 바벨론 포로 시대 정도로 제한되죠. 그런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은 한두 가지 기적만 베풀지 않으시고, 기적에 기적을 이어가시다가 마침내 하늘 끝부터 심 연 밑바닥까지를 모두 개방한 상태로 뒤흔들어, 생물과 무생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총 동원하여 창조 질서를 재편하십니다. 이런 구원과 심판 언어를 적극 도입하여 요한계시록은 구약 예언과 묵시 계보를 따라 하나님과 그 백성이 소통한 유구한 역사의 파편들을 조각조각 모자이크처 럼 박아넣어 고통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할 수 있겠어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읽기나 해석에 있어서 실증주의, 이상주의, 미래주의, 절충주의 등의 방법론이 거론 되고 있는데 어떻게 접근 하면 좋을까요? (구원사적 기록론, 역사-문학, 사회-정치적, 선교적 읽기 포함)

다양한 읽기 방법을 취할 수 있겠고, 교단별로 개인별로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희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전역사적 전천년설 입장을 교단헌법에서 명시하여 강조하는 편입니다. 저는 저희 교단 목사로서 그런 입장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소개는 할 수 있지만요. 왜냐하면 저희 교단의 입장뿐 아니라 다른 관점들도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어느 한 관점에 천착하여 극단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언제나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책들과의 연관해 특히 이사야 24-27장, 에스겔 37-39장, 스가랴서, 다니엘서 등 유대 묵시 문학을 토대로한 공통의 묵시 전승은 요한계시록을 읽는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페르시아 의 영향이 아니라 이스라엘 제사장[사독 계열] 배경에 대한 유래했다는 주장 포함)

-인용, 암시, 반향, 중의적 의미 사용, 상호텍스트성 등의 규명

묵시문학에 대한 이론이 방대하므로 그것을 본격적으로 정의하고 설명하기에는 제 공부가 부족합니다. 다만, 언급하신 본문들이 실제로 언제 쓰였건, 그 본문들의 내적 설정 배경은 포로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외세로 인한 민족적 위기와 극심한 고통 중에 나온 글이라는 점에서 요한계시록과 공통점이 있겠습니다. 게다가 그 본문들 대부분을 요한계시록이 직간접으로 사용하기 때 문에, 그 본문들은 요한계시록 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언이나 묵시, 특히 묵시는 일상어의 기호체계를 벗어나는 극도의 상징 언어를 대량 사용하므로, 그 문화권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이 이해하기는 극히 어렵습니다. 그 언어를 이해하려면 그 기호체계의 전체 윤곽과 상세한 구성 요소들을 파악하여 그 체계 안에서 디코딩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 유의할 것은, 요한계시록이 구약의 묵시나 예언 본문들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을 항상 같은 의미로 고스란히 베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이 다 말하지 않은 다른 것을 말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말씀들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구약은 이미 독자에게 익숙하고 믿을 만한 말씀들이므로, 요한계시록은 그 기호체계를 활용하여 자기만 의 독특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크건 작건 구약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구약 본문들과 요한계시록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무엇이 구약과 같고 다른지를 찾고, 왜 달라졌는지 끈질기게 묻고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중요한 의미들이 읽힐 때가 많습 니다.

 

▲1세기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로마 제국과 로마의 종교 생활 사이의 관계로 기독교를 시민종교로 정치 사회학적 접근하는 경향들도 있는데 교수님의 견해도 궁금합니다.

-현재의 억압, 미래적 희망 등

‘시민종교’라는 단어부터 정의해야겠는데요, 만약에 ‘집단 강박증’ 정도의 의미라면, 기독교 전체를 대상으로 일반화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용어입니다. 기독교는 초기 성장 과정에서 로마 황제숭배라는 강박증에 대항하여, 그것을 대체하려고 했던 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그런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도 풍부하므로, 시민종교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기독교를 재단하면 기독교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햇빛을 피하고자 파란 모자를 썼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를 파랗다고 하면 옳지 않으니까요.

 

▲로마의 지배, 황제숭배의 강요 등 외적 요소 외에 니골라 당의 위험, 거짓 교사들의 유혹, 지역 회당들과의 갈등(사탄의 회당, 2:9; 3:9)과 유대교와의 갈등 문제 등 초대교회를 어렵게 했던 내적 요소들은 본문에서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저항문학, 명예담론, 이교도 사회와의 타협 거절 등)

그 모든 것을 명예담론이나 저항문학이라는 특수한 틀에 무리하게 집어넣으려고 하면, 본문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사안별로 판단하되, 주변 문헌과 역사를 고 려하여, 그것이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지 아니면 상징인지 분별해야겠지요. 판단 결과가 언제나 옳지는 않겠으나, 객관성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일곱인, 일곱나팔, 일곱대접과 천년 왕국 등의 숫자적 의미에 대한 해석에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피타고라스나 플라톤 체계에서 기하학과 산술학이 매우 중요하듯이, 요한계시록을 낳은 문화권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숫자들과 공식들과 상징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날의 독자가 그 모든 의미를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주변 문헌을 찾아가며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읽기라고 생각 합니다. 그 숫자들이 순수 유대 체계인지, 그리스-로마 체계인지, 헬라적 유대 체계인지, 예수님 전승을 가미한 새로운 변주인지를 알아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저도 궁금하니까 새로 발견하면  저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17장의 음녀 바벨론의 멸망, 2:22-23 이세벨과의 연장, 12:14 광야로 추방되는 여자, 12장 해를 옷 입은 여자, 14:4 여성은 새 예루살렘에서 제외된다는 이미지는 여성 혐오로도 읽혀질 수 있는데 이런 페미니스 해석에 대해서는?

물론, 당시 여성의 지위는 오늘날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보다 훨씬 열악했겠죠. 그런 시대 상황이 언어에 묻어나오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렇다고 요한계시록이 여성을 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쓴 책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부분들을 경계하며 읽되, 요한계시록에는 나쁜 남성과 좋은 남성이 고루 나오듯이 나쁜 여성과 좋은 여성도 고루 나온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더구나 요한문헌은 여성들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는 편이랍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교회와 신부도 여성이잖아요. 또한 요한문헌 중 하나인 요한2서는 남성 주님(퀴리오스)에 해당하는 여성 주님(퀴 리아)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요한2서는 ‘선택받은 여주인님(퀴리아)과 그 자녀에게 장로님이’ 보낸 편지랍니다.

 

▲신약학회에서 초대교회에 대한 1세기 연구의 연장선에서 알렉산드리아 필론 연구의 필요성도 피력하셨는데, 향후 연구 계획이나 집필 계획 등은 어떻게 되실까요?

필론(Philo of Alexandria)의 70여 편의 작품들 가운데 1/7 정도를 우리말로 옮기고 각주와 그림을 넣었습니다. 필론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난해하고 중요하고 가장 많이 인용된 부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남은 작품들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아직 갈 길이 멀답니다.

번역하면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용어들과 상징들과 사상들을 대거 발견하고는 가끔 전율을 느끼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을 언제 소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하 기만 해요. 개인의 시간과 체력과 실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언제 번역하고 언제 주석하고 언제 신약성경과 비교하는 글을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저 자신의 부족함과 한 계상황을 경험합니다.

좋은 동역자를 만나면 더 배우고 익히며 공동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동역자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구약성경(70인역)과 고대 그리스 철학과 1세기 전후의 유대-로마 관계사와 신약성경과 유대적 헬라어에 모두 정통하고 우리말까지 잘 쓰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실력자들은 다른 일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후속 연구가 이어지도록 징검 다리 몇 개 놓을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오는 9월 7일에 열리는 요한계시록 세미나의 주강사인 문우일 교수(전 서울신대 신약학 교수)와 인터뷰 장소를 제공한 르사이공 강남점을 운영하는 조명화 전도사가 서로의 관심사인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오는 9월 7일에 열리는 요한계시록 세미나의 주강사인 문우일 교수(전 서울신대 신약학 교수)와 인터뷰 장소를 제공한 르사이공 강남점을 운영하는 조명화 전도사가
서로의 관심사인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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