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가이아와 하느님
[북리뷰] 가이아와 하느님
  • 김란희 목사(길벗교회 협력)
  • 승인 2022.01.0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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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치유를 위한 생태 여성 신학

 

로즈마리 래드퍼드 류터 지음/전현식 옮김, 가이아와 하느님: 지구 치유를 위한 생태 여성 신학 (이화자여대학교출판부, 2000.7)
로즈마리 래드퍼드 류터 지음/전현식 옮김, 가이아와 하느님: 지구 치유를 위한 생태 여성 신학 (이화자여대학교출판부, 2000.7)  /   김란희 목사(길벗교회 협력)

 

본서의 제목으로 중요 개념이 되는 ‘가이아’는 그리스 지구의 여신을 일컫는 말로, 러블록과 마굴리스와 같은 지구 생물학자들은 이 단어를 전체 행성은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살아있는 시스템이라는 말로 사용한다고 한다.

제1장 세 가지 고전적 창조 이야기들

기독교 세계의 규범적 창조 이야기는 기독교 교회가 유대교로부터 헤브루 성서를 부분적으로 선택하여 통합한 창세기 1장에서 발견된다. 헤브루 창조 이야기 배후에는 더 오래된 『에누마 엘리시』는 바빌로니아 창조 이야기로 기원전 2천 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야기를 기원전 6~5 세기에 제사장 계통의 저자들이 그들 자신의 의식 제도를 반영하고 부분적으로 선택하고 전유하고 교정하여 자신들의 이야기인 헤브루 창조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원 전 4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16~17세기에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태양 중심설이 대두되기 전까지는 고전시대와 중세 시대 동안 ‘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우주론을 담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은 헤브루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규범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1500년 동안 그들의 정신 배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티마이오스』의 우주론이었다는 것이다.

 

바벨로니아 창조  이야기

초기 창조 이야기들을 개정하여 만든 『에누마 엘리시』는 바빌로니아 도시와 그 도시의 신인 마르독이 첫 번째 바빌로니아 왕조 시대(기원전 19세기와 16세기) 동안에 다른 도시 국가들을 지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모권 사회였던 여성의 지배체제가 마르둑을 통해 남성 지배적 권력 세계로 대체되고 있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지배 계급이 갖는 ‘물질’의 전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새로운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어머니의 살아있는 몸에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어머니의 죽은 몸을 밟고 올라서서 그것을 자신들의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배자와 노예와의 계급적이고 계층적인 구조를 만든다. 인간으로 하여금 ‘신들에게 봉사할 책임이 있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편하게 된 신들은 성전과 궁전에 거하는 한가한 귀족 사회의 불멸의 구성원들이 되어, 노동자들의 땀이 밴 노동 생산물을 몰수한다.

의식과 법의 사제적 힘과 군대와 무기의 군사적 힘은 이런 두 귀족 계급의 영역이며, 그들의 부와 안락은 노예화된 노동자의 구부러진 등 위에 기초해 있었다. 몰수된 노동에 기초해 있는 여가는 귀족 계급을 농노와 노예들의 하층 계급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신과 동일시했다.

 

헤브루 창조 이야기

헤브루 창조 이야기에서는 창조자는 우주의 최초의 ‘물질’과 공존하면서 그 과정을 관리한다. 헤브루 저자들은 거룩한 법 안에 간직하고 싶었던 그들의 창조 이야기를 노동 주간에 맞춰 설계하여, 우주의 형성이 창조자의 6일 간의 작업을 통해서 장엄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한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물고기, 새, 그리고 육지 동물을 포함하는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에 대한 지배권이 주어진다. 헤브루 성서의 여러 곳에서 하느님이 군사적 ‘힘’을 통해 피조물을 관리하는 왕-전사의 모형을 따른다 할지라도,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의례적 명명을 통해 모든 사물을 존재케 하는 제사장 계급의 지적 권력의 모형을 따른다.

이 창조 이야기에서는 바빌로니아 창조 이야기에서 확증된 것처럼 인간 사이의 계급 지배는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하느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하나의 단일한 집단체로 이해된다. 헤브루 법은 노예 제도를 허락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방인에게는 허락되었지만, 유대인에게는 일시적 상태로만 이해되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근원적 이야기는 유대인 사이의 노예화를 제한시킨다. 그들에게 노예의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고용된 종으로서 친절하게 대우하며 희년(50년마다)에는 자유인의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는 여지는 열어놓는다. 하지만 하느님과 아담을 지칭하는 대명사의 남성적 호칭은 남성이 이런 하느님을 집단적으로 대표하며, 여성은 이런 집단적인 ‘인간’ 주권의 혜택을 함께 나누지만 동시에 남성 가장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남성이 먼저 창조되고, 여성은 남성의 갈빗대에서 나중에 창조된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설명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가부장적 관계를 분명히 의도적으로 요구한다. 남편은 최초의 집단적 인간이며 여자는 남자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파생적 인간이다.

환경론자들은 이런 집단적 아담에게 주어진 창조에 대한 ‘지배’개념을 ‘인간’의 동식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인 착취적 이용의 원형이라고 비판한다. 창세기의 창조 설명이 인간 중심적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구에 대한 착취적이며 파괴적인 지배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 대한 주님의 소유권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하느님만이 자기의 창조물인 지구를 소유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지구의 사용권만이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지구를 돌보는 최고의 청지기이며, 이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규칙은 이차적인 것이다. 안식일의 휴식 안에 사육 동물을 포함시켜 인간이 많은 동물들을 육체에 대한 사용을 제한하는 이 모든 것은 지구에 사는 다른 존재들의 삶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스 창조 이야기

플라톤의 창조 이야기인 『티마이오스』는 제사장 계열의 헤브루 창조 이야기보다 더 추상적이고 철학적이지만 신화적인 인격화는 덜하다. 플라톤은 실제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사고의 영역과 보이는 유형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이 두 영역 사이에 창조자 혹은 세계 형성자(Demiurgos)가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마르둑과 헤브루 창조자처럼 데미어고스도 무엇을 ‘만들어서’ 창조한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은 우주의 개념은 삼위 일체 안에서 신의 발생과 하느님의 세계 창조를 구분하는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주를 소유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우주를 스스로 실재하는 신의 삶에서 구분시키기 때문이다.

데미우르고스는 공간으로 근원적 요소들인 불, 공기, 물 그리고 흙을 형성하고, 이것으로 구(球)모양의 우주의 몸을 만든다. 이 우주는 지구 중심적이며 위계적으로 이해된다. 중심에 있는 지구는 일곱 개의 행성들과 상향질서 안에 있는 별들의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행성과 별들의 하늘의 세계는 좀더 ‘영적’인 불의 요소로 만들어지고, 이 세상의 영역은 물과 흙 그리고 이 두 요소들 사이에 있는 공기로 만들어진다.

창조자는 그 다음에 세계영혼(world soul)을 만들어서 이것을 생명과 운동의 원리로서 우주의 몸에 주입한다. 존재들은 각 영역에 적절하게 배치된다. 신들은 행성과 별들 안에, 신들과 대화하는 새들은 공기 안에 물고기들은 물의 영역 안에 그리고 동물들은 땅위에 자리가 주어진다.

데미우르고스는 그 다음 근원적 요소들에 세계 영혼을 혼합시켜 약간 희석된 형태의 이 요소들로 인간 영혼을 만든다. 그는 이 영혼 혼합물을 별 안에 있는 여러 장소들로 분산시켜, 이 곳에서 그들은 실재의 영원한 본질 안에서 하늘의 교육을 받는다. 이런 존재들의 몸을 창조하는 것은 행성의 신들이 맡는다.

인간의 영혼들이 하늘의 진리를 받으면 그들은 남성의 몸으로 구체화되고 그들의 임무는 무질서한 감각을 통제하는 것이다. 임무를 성취하고 몸을 버리고 죽을 때 그들은 그들 본래의 곳인 별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신들과 가은 ‘축복받은 실존’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몸과 감각에 대한 통제에 실패하면 그 영혼은 다시 육체의 모습을 갖고 다시 태어나 여자가 된다. 이 상태에서 악을 중단하지 못하면 그는 악의 본성으로 타락하며 그런 악의 본성을 닮은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화신(incarnation)의 순환은 영혼이 몸을 정복하고 최초에 더 좋은 상태로, 즉 지배계급의 남성으로 돌아갈 때까지 궁극적으로 육신이 되기 이전에 하늘의 별 안에 있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된다.

플라톤은 실재의 마음과 몸을 구분했다. 마음 혹은 의식은 근원적이고 영원하며 선하다. 그러나 몸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며 악의 근원으로 정신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는 물질적 감각의 형태를 지닌다. 의식이나 마음은 죽지 않고 영원하며 신과 같이 거룩하고, 인간은 마음의 소유를 통해 신의 본성을 함께 나눈다. 반면에 몸은 죽음과 변화의 근원이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위계구조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인간의 동물에 대한, 그리고 지배자의 노동자에 대한 계급 위계 구조 안에서 되풀이 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서 정의롭고 질서화된 사회는 절제된 마음, 이성의 지시 하에 있는 의지, 이런 마음과 의지에 의해 욕망들이 통제된 잘 정돈된 자아의 위계구조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자아의 이런 위계 구조를 철학자 지배자들, 보호자 전사들, 그리고 육체 노동자들의 세 가지 사회 계급 제도와 일치시킨다. 이 책에서 여자는 세 계급 모두에 속하지만 각 계급의 이차적이며 열등한 구성원이다.

이 세 가지 창조 이야기들은 기원 전 2천 년에서 천 년 사이에, 지중해 동부의 초기 도시 문명 안에 있었던 노예를 소유하는 가부장 세계 안에서 형성되었다. 바빌로니아 이야기에서도 노예 제도는 중심이 된다. 노예는 지배자에게 귀족적 여가를 허용하면서 착취된 노동을 통해 부를 만들어 내는 인간 도구이다. 여가와 노동, 규칙과 예속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 중요한 은유가 된다.

헤브루 제사장들 역시 노예를 소유하는 가부장 세계에 살지만 자신의 뿌리를 유목적이며 좀더 단순하고 평등한 가부장 사회 안에서 기억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노예 소유의 가부장 세계를 수정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인-노예 위계 구조를 요구하는 신과 인간 사이의 노동과 여가의 경계선을 거부한다.

이스라엘의 남성 가장 공동체는 땅을 돌보라는 하느님의 명령 안에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누며, 동물을 포함하여 그들이 돌보는 사람들이 계약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좀더 평등한 사회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다르다. 아내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며 남편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아담의 ‘갈빗대’에서 나온 이브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가 ‘하느님의 형상’ 안에서 모든 인간을 집단적으로 창조한 첫 번째 이야기에 첨부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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