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 교수의 그리스역사] 페르시아 왕의 개인적 오만과 아테네의 패권주의(1)
[최자영 교수의 그리스역사] 페르시아 왕의 개인적 오만과 아테네의 패권주의(1)
  • 최자영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
  • 승인 2022.10.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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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 보이는 오만(hybris)의 개념 차이를 중심으로
▲최자영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 전 한국서양역사문화학회장)
▲최자영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 전 한국서양역사문화학회장)

I. 서언

II.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 서술의 객관성
III. 반복, 교훈으로서의 역사와 오만(hybris)징벌(nemesis)의 개념
IV.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오만(헤로도토스)과 아테네의 패권주의(투키디데스)의 차이점

V. 결론

I. 서언

헤로도토스의 『역사』 (페르시아 전쟁사)와 투키디데스의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기술은 서로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회자된다. 양자의 차이점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헤로도토스가 신화를 대거 포함하여 설화적으로 기술1)하는 반면, 투키디데스는 전쟁사, 정치사를 중심으로 하 고 또 더 분석적2), 비판적3) 혹은 객관적이고 과학적 시각에서 기술한다는 것이다.4) 이런 관점은 투키디데스가 자신이 기술한 역사가 과장을 일삼는 시인이나 진실보다 흥미를위주로 하는 산문작가들(logographoi)과 달리 가능한 한 확증이 있는 것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 말한 데서 더 강화되었다.5)

그런데 이런 획일적 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나는 헤로도토스도, 투키디데스와 같이 전쟁사를 중심으로 했고 비판적, 객관적 시각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투키디데스 자신도 반드시 과학적, 객관적 진실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신화적, 비극적 구성6), 혹은 우연 (tyche)7)의 작용등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로도토스도 나름의 진실성, 비판성, 객관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 그 자신이 밝힌 역사서술의 원칙이나 구체적 서술과정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투키디데스가 헤로도토스와 다른 점으로 언급되는 전쟁사, 정치사, 객관적 역사라는 점이 사실은 헤로도토스도 자신의 『역사』에도 나타나며, 그 자신도 그런 점을 그서문에 표방하고 있다. 즉 그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에 벌어진 전쟁사를 기록한다는 것, 또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기술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점 등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김경현의. 『헤로도토스를 위한 변명』8), 김봉철의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사료비판 사례』9) 등의 연구가 나왔다.

다른 한편, 한편, 20세기 초반 콩포드(F.M. Cornford)가 투키디데스를 신화작가(Mythistoricus)로 규정한 이래, 투키디데스의 작품이 비극적 구도를 가진 역사문학서라는 점에 관심이 기울어졌다.10) 존 핀리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나 다른 산문작가와는 달리 투키디데스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비극 작가의방식을 따랐던 것으로 평가한다.11) 우리 학계에서도 이두희는 헤로도토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 등도 투키디데스와 같이 ‘비극적 역사’를 서술했음을 논하고 있다.12) 오흥식은 투키디데스의 작품을 우연(tyche)에 따른 사건의 진전을 통해 인간의 오만에 대해 궁극적 신의 징벌이 내리는 그런 구도를가진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김진경은 헤로 도토스의 작품도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는 주제에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사이』 와 비교할 수 있음을 논했다. 이렇게 두 역사가 사이에는 다소 간에 차이가 없지는 않으나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각기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주제로 역사를 기록하면서 당면한 전쟁의 규모가 큰데 놀란 점에서도 유사성이있다.13) 그런데 이 글에서는 대규모 전쟁을 조장하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이해가 양자 간에 차이점이 있음을 살펴보려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주제는 흔히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오만에 대한 신의 징벌이며, 이것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사이』의 주제와도 공통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숨은 원인이 아테네의 세력 성장에 대한 스파르타인의 두려움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을 중심으로 양자 간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오만에 대한 개념에서 큰 괴리가 있음을 살펴보려 하는 것이다.

그 차이점은 양자가 살았던 시대상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헤로도토스가 주제로 한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는 없던 군사적 패권주의가 투키디데스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그 배경은 페르시아전쟁이후 델로스 해상동맹의 결성으로 그리스 세계에는 전에 없던 군사력의 조직화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게 되고 이런 것이 결국은 아테네의 군국적 패권주의를 조장하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는 점과 연관 지을 수가 있겠다.

 

II.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의 객관성

흔히 헤로도토스는 잡다한 신화와 전설 등을 광범하게 기록하나 투키디 데스는 전쟁사, 정치사에 국한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런 점에서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보다 더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이런 평가는 다음과 같은 투키디데스 자신의 언급에 의해 더 강화되어 왔다.

Thucydides, I.21.1 이와 같은 증거를 근거로, 누구라도 내가 말한 것들을 긍정하 는 입장에서, 사건들을 더 과장 수식하는 시인들이 노래한 것, 또 사실이기보다는 근거도 없이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허황한 신화로 변해버린 것들을 이야기작가(로 고그라포이)들이 청중에게 듣기 좋게 늘어놓는 것들을 믿지 않고,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과거사에 대해 증거를 바탕으로 서술했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그릇됨이 없을 것이다.

Thucydides, I.22.4 내 글은 신화적인 것이 없으므로 재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 다. 그러나실제있었던사건은물론, 인간의본성때문에언젠가다시일어날것같은일, 혹은그와유사한일에관해정확한지식을얻고자하는사람들이내이 작품을 아주 유용한 것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이 글은 한 순간의 박수갈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유산으로 씌어졌다.

그런데 존 핀리(John F. Finley)는 이런 투키디데스의 비판적 시각은 헤로 도토스에게도 같이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하고, 헤로도토스에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가 비판의 소재가 되고 있다고 한다.14) 여기서 존 핀리는 두 가지 면에서 투키디데스에게 비판적이다. 투키디데스가 공언하는 객관성 이 그 자신의 독창적인 것인가 하는 점, 그리고 투키디데스가 표방하는 객 관성이 말 그대로 정확성을 바탕으로 하는 점에 대해 존 핀리는 재고하는 입장에 선다. 즉 한편으로, 투키디데스가 지향하는 객관성은 그 생존 당시 시대적 조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투키디 데스가 표방하는 객관성도 자신의 판단과 사료의 재구성을 배제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에 관련된 투키디데스의 서술을 다음과 같다.

Thucydides, I.22.1~4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한 것이나 전쟁이 시작된 다음 한 것이거나 간에 여러 사람들이 행한 연설들은 내가 직접 들었던 것이든 혹은어디선 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전해준 것이든, 연설의 내용을 그대로 내가 기억하기란 어려 운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각자가 해당 상황에서 그렇게 말했으리라 생각되는 것의 요지가 가장 충실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연설문을 썼다. (2) 그러나 이번 전쟁 중에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들에 관해서는,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거나간에, 내가 임의로 적지 않고 가능한한 하나하나 정확하게 검증하였다. (3) 검증의 작업은 아주 힘든 것이었는데, 같은 사건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이, 각자가 어느 편을 드는가,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존 핀리에 따르면 투키디데스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려는 뜻을 가졌으 나,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음을 지적한다.15) 연 설문의경우 투키디데스가 원래의 말과 구성을 놓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 할수없으며, 또원래는두세개였을연설문을그가하나로축약했을가 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16) 이런 관점에서 투키디데스의 진실성, 객관성은 자신의 판단에 따른 주관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역사에는 신화적인 것이 없어서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한 투 키디데스와 달리 헤로도토스는 각종의 전실 및 신화를 다루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의탐구(historiai)의 목적은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 동시에 진실 을 규명하겠다는 집념이 자리 잡고 있다.17) 헤로도토스도 비판의식이 결여 된 것이 아니라 나름의 객관성을 가진 것으로 자처했는데, 그의 역사 도 처에신화나전설의가치에관한자신의견해를적고있기때문이다. 그 한 예는 다음과 같다.

Herodotos, II.21ff. 21. 두 번째 견해는 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앞의 첫 번째 견해 보다 더 근거가 약하다. 세상을 두르고 있는 대양(오케아노스)으로부터 강이 흐르므 로그와같은특성을갖는다는것이다. 세번째견해는가장그럴듯하지만오류도 가장 많으며, 다른 견해보다 더 참된 것이 아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네일로스는 눈이 녹는 곳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리비아에서 아이티오피아를 관통하여 아이깁토 스로 흘러내리면서 가장 더운 곳에서부터 대부분 더 냉한 곳으로 흐르는데, 어떻게 눈에서 녹아서 흐를 수가 있나? 이런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강물이 눈에서흘러내릴리가없다는사실을다음의증거에서알수있게된다. ... 대양(오케아 노스)에 관한 의견은 불확실한 것이라 논박할 필요가 없다. 나는 대양(오케아노스)의 강을 아는 것이 없다. 호메로스나 다른 옛시인이 그 이름을 지어내고 그 시에 적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견해들을 폐기하면서 나는 이 불확실한 문제에 대한 내 의견을 밝혀야 한다면, 나는 여름에 네일로스가범람하는 원인으로 보는 것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II.44.5 내가 탐구한 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오래된 신임이 분명하다. ... 두 종류의 헤라클레스 신전이 있어, 하나는 올림포스의 불사신인 헤라클레스에게 제물 을 바치고, 다른 하나는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Herodotos, II.55f. 내가 테베 사제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상과 같고, 다음 이야기는 도도나의 여사제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 도도나 신전에 있는 다른 사람 들도 이런 이야기를 사실로 인정한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Herodotos, II.120 아이깁토스 사제들의 말은 이와 같았다. 나(헤로도토스) 자신은 헬레네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를 믿는다. ... 이것이 내 믿음이고 내가 하는 말이다.

헤로도토스는 한 사항에 대해 복수의 정보를 열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자신의 뚜렷한 견해를 가진 경우에도 해당된다. 김경현의 비유에 따르면, 투키디데스는 자신이 도달한 결론만 기술할 뿐이므로, 각주 가 달린 근대적 전형의 역사서나 부단히 본문에서 일탈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와는 다른 서사기법을 구사한다. 이렇게 투키디데스는 일정한 가치 관에 따른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사료를 평가하고 가공해서 만든 내용을 우리에게 전한 비판적 역사가였으므로, 그가 무엇을 폐기했는지 우리는 전 혀 알 수가 없으나, 헤로도토스는 그런 주관적 관점을 최소화했으므로 훨 씬 더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음이사실이다.

헤로도토스가 투키디데스와 다른 점은 잡다한 사실을 가능한 한 들은 그대로 독자에게 전하려 노력했고, 또 들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전하지 않고 폐기하지만, 그 폐기한 사실이 있 음을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다.18) 이런 점은 헤로도토스가 비판 의식 자체 가 결여되었다고 하기보다19),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정직하고 객관적인 행위라는 신념을 기본으로 하여 그 사실들에 대한 허실을 가능한 한 평가했던 것이라고 할 수가있다.

비판의 정도와 질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나 두 사람이 모두 나름대로 비 판성과 객관성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이런 유사성은 양자 간 에 서로 한세대의 차이가 있으나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지적 분위기의 영향을 같이 받았다는 점에서 볼 때도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겠다.2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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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예로부터 지금까지 헤로도토스의 이야기에는 사실 아닌 것이 적지 않게 개재해 있다는 관점에 대해서는 cf. Ctesias, Persica ; Cicero, De Legibus, !.4; A. Momigliano, Studies in Historiography (N.Y., 1966), pp.132~133. 한편, 헤로도토스에서는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혼재해 있으며, 특히 제우스 등 그리스 신의 이름을 다른 이방의 신들과 동일시하여 사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cf. 김봉철, “헤로도 토스와 그리스 신화서술 제우스 서술을 중심으로,” 『서양고대사연구』 27(2010), 290f.
2) John H. Finley, Thucydides (Michigan, 1967), 52f.
3) John H. Finley, Thucydides (Michigan, 1967), 68.
4) Cf. B. Bury, The Ancient Greek Historians (London, 1908), 129; M.I. Finley, Greek Historians (N.Y., 1959), 8; H. Herter, “Thucydides und Demokrit über Tyche,” Wiener Studien 89(1976), 114f.
5) Thucydides, II.21.1.
6) F.M. Cornford, Thucydides Mythistoricus (London, 1907/1965).

7) 오흥식, 「투키디데스의 티케(tyche)관」, 성균관대학교 박사논문(1995) ; ibid. 『서양사론』 46(1995), 125-179 ; ibid. 「투키디데스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스 전생사』, 『서양사론』 107(2010), 255-277.

8) 김경현, 「헤로도토스를 위한 변명」, 『서양고전학연구』 24(2005), 265-302.

9) 김봉철, 「헤로도토스 역사의 사료비판 사례」, 『서양고전학연구』 9(1995), 1-53.

10) F.M. Cornford, Thucydides Mythistoricus.
11) John H. Finley, Thucydides (Michigan, 1967), 322.
12) 이두희, “역사가들의 전쟁기술에 나타난 ‘비극적 역사(Tragic History)’ 문체 :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를 중심으로,” 『서양고전학연구』 37(2009), 47-69.

13) Cf. Herodotos, VII.19ff.; Thucydides, I.1; 아래 본문 pp..IV 참조.

14) John H. Finley, Thucydides, 93f.15) John H. Finley, Thucydides,95.
16) Cf. John H. Finley, Thucydides, 95.
17) 김봉철, 「헤로도토스 『역사』 의 사료비판 사례」, 49f.

18) Cf. 김봉철, 「헤로도토스 역사의 사료비판 사례」, 2227. 김봉철은 헤로도토스 가사료를 인용한 대목들을 모아 5가지 유형별로 분류했다. 총256개 사료 중 ① 사료비판 없이 내용을 전달 (127개) ② 사료검증을 통해 진위를 밝히려 한 경우 (52 개) ③ 내용이 일치하는 둘 이상의 사료 취급 (14개) ④ 내용이 보완적인 둘 이상의 사료 취급 (6개) 5 서로 내용이 모순되는 둘 이상의 사료 취급(57개) 등이다. 이 중 사료비판없이전달만한경우171개,진위에 대한 검증을 시도한 예는 85개로 통계를 냈다. 참고로, 총 256개 사료 중 순수한 구전 236개, 문헌자료 1개, 구전과 헤로도토스 자신의 목격 15개, 구전과 문헌자료, 직접목격에 의거한 것 3개, 문헌 자료 1개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은 모두 구전으로 분류]로 순수 구전자료가 약 92%에 달한다

19) Cf. 김경현(「헤로도토스를 위한 변명」, 288, 292)은 헤로도토스가 획득한 정보를 불신하거나 비판하기보다 그냥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투키디데스의 역사 에서는 그가 이른바 ‘가장 엄밀하고 상게한 검증’을 통해 내린 결론만 우리에게 전할 뿐 그가 이용한 상충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증거들에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전해지 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즉 투키디데스는 자신이 도달한 결론만 기술하라 뿐이므로, 각주가 달린 근대적 전형의 역사서나 부단히 본문에서 일탈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와는 다른 서사기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20) 투키디데스 뿐 아니라 헤로도토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도 소피스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점에 대해 cf. John H. Finley, Thucydides,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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