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1)
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1)
  • 조아서 선교사(아신대 구약신학 Ph.D)
  • 승인 2022.11.0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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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3장과 슥 14장의 간본문성 연구를 중심으로
조미정 선교사(아신대 구약신학 박사)
   ▲'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세미나에서 조아서 선교사(중앙) ⓒ오인용 목사(강릉이음교회)  

학계에서는 보기드문 구약의 종말론으로 학위 논문을 쓴 신진여성신학자가 있어 화재를 모으고 있다. HIS(합신선교회) 소속 조아서 선교사는 금년 아신대학교(총장 정홍렬 교수) 일반대학원에서 구약신학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창 1-3장과 슥 14장의 간본문성 연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 선교사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M. Div)과 구약신학 석사(Th.M)를 마치고 GBT(성경번역선교회)  소속으로 선교지 현장에 필요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해왔다. 

아카데미 <동행>은 10월 28일 저녁 7시 30분 강릉이음교회(오인용 목사)에서 '종말적 안식'과 관련된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조아서 선교사를 초청해 그동안 한국교회에 잘못 전달된  종말론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기회를 가졌다.  

다음은 조아서 선교사의 강의안의 일부를 요약한 내용이다.

19세기 후반 구약의 종말론 연구가 시작되면서 조직신학적 의미의 종말론이 아니라 구약신학에서 사용할 종말론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후 현재 역사와의 관계에 따라 두 가지 정의가 제시되었다. 현재 역사와 단절된 채 이루어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도래만을 종말론으로 봐야 한다는 좁은 의미의 종말론현재 역사의 뼈대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에 대한 기대를 종말론으로 이해하는 넓은 의미의 종말론으로 나뉘게 되었다. 

더불어 기원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되었다. 먼저 종말론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방 신화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이스라엘 내부에서 발생한 것인지의 논쟁이 있었다. 더불어 시기에 관한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초기 기원설(창조 또는 포로기 이전)과 후기 기원설(포로기 또는 포로기 이후)로 나뉜다. 이 외에 전승사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중 가장 이른 시기로 제시된 것은 창조 때 이미 존재했던 종말론적 요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진적인 계시설이다. 반면에 발전설은 포로기 이전으로 조금 이른 시기를 제안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었다고 주장한다. 후기 기원설은 포로기나 포로기 이후의 사회적 상황이 종말론의 부상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 일부 학자들은 주전 2-3세기의 묵시문학에서 비로소 종말론이 등장했다고 이해한다.  

필자는 이 견해들 중 점진적인 계시설이 가장 타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즉 넓은 의미의 종말론에 기초하여 창조 때 이미 종말론이 존재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을 위하여 구약성경의 가장 앞과 뒤를 차지하는 창 1-3장과 슥 14장을 비교하여 슥 14장에 담긴 종말론이 이미 창조기사에 모두 담겨 있음을 살피고자 한다. 다만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가 없어서 이곳에서는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인 안식에 초점을 맞추어 짧게 나누고자 한다. 

창조기사는 6일 동안의 창조와 일곱째 날의 안식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그 중 인간창조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곱째 날의 안식에 있다. 이것은 6일 동안의 창조와 일곱째 날을 기술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1장의 창조는 매일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가 시작되어 전형적인 날짜 공식(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중간에 창조 명령과 그대로 되었다는 결과 보고와 좋았다는 평가가 주어진다. 이 기술은 대부분 일곱 번씩 반복된다. 이것은 6+1이라는 구조와 함께 7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이에 더하여 창 2:1-3은 기술 방식에 변화를 준다. 창 2:1은 ‘완성되었다’는 동사로 시작되어 창조의 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6일 동안 매일 기록되었던 전형적인 날짜 공식이 빠져있다. 이것은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일곱째 날이 지속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담겼다고 하겠다. 즉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일 한 번씩 등장했던 날짜(첫째 날 등)는 일곱째 날에 와서 동일한 위치에 세 번이나 등장한다. 

심지어 대명사 접미까지 합한다면 무려 다섯 번이나 사용된 셈이다. 그만큼 일곱째 날이 강조되는 것이다. 거기에 일곱째 날은 새, 물고기, 사람 등 창조물들이 받았던 복도 함께 받는다. 두 번의 복이 충만함에 집중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일곱째 날이 받는 복도 충만함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시간이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신다. 그 동안 창조세계는 좋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때 좋다는 의미는 창조목적에 적합하게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고 그 목적에 맞게 창조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거룩하게 구별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된다. 즉 일곱째 날이라는 시간이 성경에서 가장 처음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곱째 날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날 모든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안식의 의미는 히브리어 두 단어에 기초하여 찾을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용어는 ‘안식하다’로 번역된 ‘샤바트((ַשָׁבַת, 안식하다)’로서 ‘마치다,’ ‘끝내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데 초점이 있다. 두 번째 단어는 ‘쉬다’의 의미를 지닌 ‘누아흐(נרּ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용례를 면밀히 살펴보면 단순한 쉼이 아니라 떠돌이 삶에서 벗어나 어느 한 곳에 정착한다는 의미에서의 쉼을 뜻한다. 그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이 보장된 상태에서의 쉼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모든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주시기 때문에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단어의 의미를 종합해보자.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를 완성하시고 그 창조세계에 임하셔서 쉬셨다. 그리고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창조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결국 하나님의 공급,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통치가 깃들어 있는 진정한 안식의 세계가 창조세계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안식의 파괴를 가져왔다. 땅은 저주를 받았고 인간은 쉼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더 이상 하나님의 공급도, 하나님의 보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양식과 안전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것도 고통이 수반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런데 동시에 이 땅에 다시 안식을 가져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도 새 창조를 행하셔야 했다. 그것이 구속사의 시작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것이 완성될 종말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창조세계의 안식은 종말까지 기다려야만 맛볼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비록 제한된 시간일지라도 안식일 제도를 통하여 미리 맛보도록 하신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다. 이렇듯 안식일은 첫 창조세계에서 보여준 안식을 떠오르게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져올 안식의 세계를 미리 맛보도록 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십계명에서 법제화되는데,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먼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며 둘째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셨기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는 그들이 언약 백성임을 보여주는 표징으로 작용할 만큼 중요한 율법 사항이었다. 만약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 백성이 될 수 없었다. 안식일 제도는 신분고하를 막론한 모든 인간과 그들을 돕는 모든 육축들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수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를 기대하며 쉬어야 했다. 안식일의 확장을 보여주는 안식년과 희년은 저주받은 땅과 모든 야생 동물들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땅의 소산물이 주어지고 노예로 팔린 이들에게 다시 기업이 주어진다는 면에서 약자들에게 안식을 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기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안식일이 모든 절기의 기본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오경은 세 개의 절기를 소개할 때마다 안식일 준수를 먼저 등장시킨다. 또한 모든 절기들은 안식일에 시작해서 안식일에 끝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안식일은 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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