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2)
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2)
  • 조아서 선교사(아신대 구약신학 Ph.D)
  • 승인 2022.11.0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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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3장과 슥 14장의 간본문성 연구를 중심으로
 ▲'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의 성격과 기원' 세미나에서 조아서 선교사(중앙) ⓒ오인용 목사(강릉이음교회)

아카데미 <동행>은 10월 28일 저녁 7시 30분 강릉이음교회(오인용 목사)에서 '종말적 안식'과 관련된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조아서 선교사를 초청해 그동안 한국교회에 잘못 전달된  종말론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기회를 가졌다.  

 특별히 초막절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스가랴서에는 안식이나 안식일이라는 용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막절 예배가 강조된다. 그러나 창조의 궁극적인 완성이 안식에 있다면 새 창조의 완성도 안식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비록 안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막절 경배에 안식의 정신이 분명히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막절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막절은 세 개 절기 중 하나로서 1년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기였다. 특별히 초막절은 출애굽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출애굽을 기념하며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거주했기 때문이다. 비록 광야에서의 초막 생활이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삶이었지만 그들과 언약을 맺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었다. 훗날 솔로몬이 초막절에 성전봉헌식을 거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라는 더 강한 의미가 추가된다. 성전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곱째 날의 안식과 초막절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라는 데 있다. 일곱째 날이 창조의 완성을 통해 새롭게 시작되는 창조세계의 시작을 보여주었다면 마지막 날의 초막절은 구속의 완성과 더불어 새 창조의 완성을 통해 시작되는 새로운 창조세계의 시작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새로운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의 안식은 첫 창조 때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 창조 때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된 것처럼 마지막 날에도 거룩함이 강조되되, 시간의 거룩함을 넘어 사람들과 그들의 거주지까지 거룩해진다. 먼저 사람의 거룩함은 남은 자들의 거룩함으로 나타난다(슥 14:5). 남은 자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며 그들은 초막절 예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나아온다. 간혹 남은 자 사상이 예언서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그들도 선택된 자들이라는 면에서 여자의 후손(창 3:15)과 맥을 같이 한다. 창 3:15은 원시복음으로서 인간의 타락을 불러 온 뱀을 심판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뱀은 여자와 원수가 되며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된다. 이때 여자의 후손이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가리킬 수 있으나 오경의 문맥에서는 구속사를 잇는 선택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경은 늘 선택된 자들과 대적자들이라는 구도를 따른다. 이때 선택된 자들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다. 따라서 선택된 자들이라는 면에서 여자의 후손과 남은 자는 구속사를 이어가는 동일한 존재들이다.  

 공간도 거룩해지는 변화를 맞이한다. 에덴동산은 인간을 위한 최적의 거주지와 하나님의 임재 공간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었다. 첫 인류는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두 가지 기능을 분리시켰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야만 했다. 족장들은 제단을 쌓았지만 출애굽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늘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의미로 성막을 짓도록 하셨고 훗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게 된다. 이러한 전개는 자연스럽게 시온신학을 만듦으로써 시온을 중심으로 하는 회복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스가랴는 두 가지 기능이 다시 합쳐지는 날을 기대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하나님을 제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슥 14:20-21). 그곳은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그들의 거주지가 거룩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최후의 전쟁을 통하여 에덴동산에 침투했던 악의 근원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스가랴는 9장 이후 중요한 길목마다 전쟁 기사를 위치시키고 전쟁 후 주어지는 평화의 시대를 기대한다. 그리고 14장에 이르러 악인들을 전멸시키심으로써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악이 사라진 세상에서 새 창조가 이루어지며 마지막은 거룩함으로 장식된다.   

이렇게 새 창조가 완성된 곳에 하나님께서 왕으로 임하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신다. 첫 창조기사는 안식의 시간을 통해 왕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스가랴는 왕이신 하나님을 세 번에 걸쳐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모든 남은 자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초막절에 찾아올 것을 내다본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각자의 처소에서 왕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린다. 이렇듯 종말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안식의 시간으로 마무리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종말론이 단순히 마지막 날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새 창조의 완성으로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셨던 창조세계를 보여주는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종말론의 모든 요소들이 이미 창조기사에 실려 있다. 따라서 종말론의 기원이 창조에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창조세계가 어떠한 곳인지 드러내 주셨다. 이러한 면에서 종말론은 구약을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신학사상으로 연구될 가치가 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창조세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지혜서에서조차 우리는 종말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현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성도로서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가야 할지도 깨달을 수 있다. 부디 먼 훗날 주어질 미래의 세상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안식의 세계를 맛보며 살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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