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또는 수백 억에 달하는 대회비 수입지출 투명하게 공개 요망
-차별과 배제, 우리 사회 여전한 문제로 자리매김
“고작 교우 100명 모이는 골목의 작은 신앙공동체도 매달 1원 단위까지 수입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15년 단위로 개최하는 운동으로서 지난 50년간 꽤 큰 공룡조직으로 제도화한 또 하나의 기관을 향후 15년간 먹여살리기 위해 수십억, 수백억, 어쩌면 1천억 이상의 자금이 유통되는 이런 대형군중집회가 필요한 게 아닌지 따지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로잔 대회는 누가 돈을 내는지, 얼마나 많이 자금을 모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하부구조를 만천하 복음주의 형제자매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구성원들이 그 입체적 전모를 파악해야 로잔이 표방한 simplicity, humility, integrity의 미덕에 부응할 수 있다. 허장성세의 돈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기도와 구제와 금식을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차정식 교수의 발언이다.
한국신약학회(회장 이민규 박사)는 ‘포스트-구조주의 시대에 기독교의 쓸모’라는 주제로 1월 2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1월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오는 9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될 ‘제4차 로잔대회를 즈음한 기독교의 방향 모색’이라는 부제를 담아 김회권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가 기조강연자로, 토론에서는 오형국 목사(청년신학아카데미)의 사회로 김학철 교수(연세대),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홍동우 목사(『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의 작가)는 패널로 참석했다.
김회권 교수는 “로잔언약은 1968년 웁살라 WCC 대회(총체적 구원-정치사회 경제적 해방)에 대한 반동으로 가진 1974년 로잔 선교대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개인전도 중심의 빌리그레이엄 전도협회의 복음주의와 존 스토트가 대변하는 영국 성공회의 성찰적 복음주의, 그리고 중남미 해방적 복음주의가 세계복음주의를 위한 복음주의자 광폭 연대를 다짐하는 15개 항목의 언약을 공표했다.”고 서두를 열었다.
특히 “로잔언약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과 제6항 교회와 전도가 존 스토트나 르네 파디야 등 중남미 복음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서구교회의 주도세력은 대체로 무심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 결과 실질적인 결실 없이 로잔언약은 세계교회나 한국교회에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못한채, 질식사하기 직전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복음주의를 개인이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을 유일한 과업인양 좁게 해석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큰 그림 안에서 세계 복음화를 자세하게 논의한 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를 정독하고 이 5항을 살려내 로잔대회의 내적 긴장과 불일치를 해소해야 한다”고 갈무리 했다.
패널토의에서 차정식 교수는 “인형극의 무대만 보고 그것을 전체 현실로 이해하는 자는 바보다. 연극도 영화도 그 최종 작품을 연출한 감독을 비롯한 배후의 구조를 읽어야 현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며, “허장성세의 돈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기도와 구제와 금식을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기독교의 쓸모 아닌 쓸모와 미래 방향은 개혁기독교가 지향해온 기도와 노동의 균형, 영혼과 몸의 균형을 놓친 지점을 성찰해 목사와 성도가 공히 땅을 파고 흙을 만지며 땀을 흘리는 데서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며, “목사와 신학자의 머리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교인의 귀가 너무 고급이 된 나머지 성실한 흙의 노동과 모험적 투신 없이 두뇌 운동과 언어 담론만 요란하다. 등 따시고 배 부르면 인간의 몸과 정신은 태만해지고 자기혁신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다. 교인, 신자이기에 앞서 동물성의 존재인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생리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홍동우 목사는 “구한말(일제 강점기) 선교사들은 말로 복음을 전했지만 그 이면에 병원과 보육원 등을 세운 사회참여가 있었다.”며 “숨 막혀 죽어가는 로잔언약 5항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회가 나설 공통 의제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학철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상 한번도 성장하지 않은 적이 없다. 다만 먹고사는 문제라는 우상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유대기독교의 가장 큰 정신능력은 우상비판에 있다.”며, “1910년대 당시 교회와 선교사들이 박성춘, 에비슨의 면천운동, 신분제 철폐에 앞장섰던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답이 기독교에 있음을 보여줄 때 한국 기독교가 회복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학교에서 90%이상의 비기독교에게 (교양과목으로)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흑암과 역사적 예수를 사실 그대로 전했고, 학기가 끝날 무렵 예수를 믿고 싶다고, 교회에 나가 보고 싶다고 찾아온 학생들도 있어 그간 200-300명 정도 전도한 것 같다.”며, “너의 쓸모라는 말은 사실 모욕적이다. 그 쓸모를 묻는 사람에게 저항하는 것이 오히려 참 인간을 실현하는 모습”이라고 발언해 참석자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장외로 홍동우 목사는 자신의 SNS 계정에 “분명 로잔대회는 빌리 그레이엄의 공과가 뒤섞인 혼합물이다. 당대만 하더라도 로잔대회는 WCC에 대한 대항세력 역할이 짙어 보였다”며, “쉽게 말해 ‘WCC판 기독교’냐 혹은 ‘로잔판 기독교’냐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기술했다.
이어 “기도와 말씀으로 ‘개인경건’을 모색하는 한 인간이 어찌 자신이 속한 사회 혹은 회사 내의 체제적 불의에 눈감을 수 있을까? 사회 혹은 회사 내의 체제적 불의에 힘껏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가 과연 기도, 성경읽기, 공동체 내의 교제 등등과 같은 ‘개인경건’의 산물과 전혀 무관할까? 오히려 그런 자원들은 한 개인의 사회적 실천에 큰 자원이 될 것”이라며, “개인적 경건과 사회적 실천을 나누는 구도는 바람직 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기관지 《종교와평화》의 편집을 맡고 있는 민성식 기자는 오랜 기간 WCC를 취재해 왔다. 그는 “로잔운동은 보통 보수적인 선교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는 로잔운동을 WCC의 선교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퍼져 있다. 물론 초창기 로잔운동이 반WCC적 성격을 지녔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서, 로잔운동 역시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사회적인 문제나 생태문제 등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등 내용상 WCC의 선교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제로 WCC의 선교와복음화위원회(CWME) 위원들의 상당수는 로잔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두 흐름은 서로 겹쳐지는 경우가 많다”고 일갈했다. 뿐만 아니라 “로잔대회를 앞두고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은 성서대전은 이번 로잔 한국대회가 경제적 불평등 등 우리 사회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난한 반면, 광신대 총동문회는 한국로잔위원회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며 서로 상반된 것을 두고 로잔 비난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외에도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한상협, 협회장 진용식 목사)와 세계기독교이단대책협회(세이협, 대표회장 진용식 목사)는 작년 8월 “로잔대회가 선교신학적으로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도 있지만 부정적 영향도 분명하지만,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2차 로잔대회는 신사도운동가들, 피터와그너, 신디제이콥스 등이 강사로 나섰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한 “신사도운동가들을 통해 소위 ‘지역의 영’, 귀신이 땅에 붙어 있다는 무속적, 미신적, 비성경적 교리가 기독교의 옷을 입고 소개됐다”며 “루이스 부쉬 또한 10/40창에 지역 귀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영적도해를 선보여 일부 선교단체에 ‘땅밟기’라는 미신적이고 무속적 행위가 나타나게 됐다”며, “신사도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인터콥은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이단성·참여금지·예의주시 등으로 규정을 받았고, 문제의 교리는, 영적도해, 백투예루살렘, 지역의 영, 땅 밟기 등인데 모두 로잔대회에서 적극적으로 발표된 것들”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러 우려와 쓴소리와 함께 로잔대회에 대한 교계 기자들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순수한 복음주이 선교대회가 되리라”고 전한 공동의장인 이재훈 목사나 “로잔 대회가 한국교회 부흥의 기폭점이 될 것”이라는 준비위원장 유기성 목사의 긍정적인 전망이 로잔언약의 정신의 취지와 부합돼 실제적으로 이루어질지 기대가 모아진다.
한편 복음주의권의 가장 대표적 대회인 로잔대회는 제1차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제2차 1989년 필리핀 마닐라, 제3차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이번 제4차대회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되며 공동의장은 이재훈 목사(한국로잔위원회 의장)와 마이클 오(국제로잔 총재)이며, 준비위원장은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위임)다.
논의가 된 로잔언약 5, 6항은 다음과 같다.
제5조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주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해 뉘우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행 17:26·31; 창 18:35; 사 1:17; 시 45:7; 창 1:26-27; 약 3:9; 레 19:18; 눅 6:27·35; 약 2:14·26; 요 3:3·5; 마 5:20· 6:33; 고후 3:18; 약 2:20).
제6조 교회와 전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심을 우리는 확인한다. 이 소명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이 세상 깊숙이 파고드는 희생적인 침투를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울타리’를 헐고 불신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는 최우선적이다. 세게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의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만일 복음을 배반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이 없거나, 혹은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거나, 사업 추진과 재정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있어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회는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되어버린다.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제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요 17:18, 20:21; 마 28:19-20; 행 1:8·20:27; 엡 1:9-10·3:9-11; 갈 6:14·17; 고후 6:3-4; 딤후 2:19-21; 빌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