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하나님의 긍휼은 힘이 셉니다
#14. 하나님의 긍휼은 힘이 셉니다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8.10.0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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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하마... 로암미? 암미!”

'하나님의 긍휼과 사람의 긍휼'

 

! 이 새끼야! 똑바로 안 해?”

“....”

 

폭언에 가까운 살벌한 큰소리에 돌아보았습니다. 재활병원복도를 오가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내내 마음을 스쳤습니다. 우리 위층 병동에 입원한 아버지와 아들. 날마다 같은 시간대에 재활치료실에서도 봅니다. 그 아들은 교통사고로 몸이 망가졌답니다. 온몸이 땀으로 다 젖은 채 비틀거리며 한걸음씩 내딛고, 흔들리면 아버지가 똑바로! 라며 주먹으로 복부를 퍽! 소리가 나도록 때렸습니다. 입 다물고 비명조차 안내고 맞는 아들. 날마다 그렇게 걷기 연습을 시키고는 갈아입을 옷이랑 수건을 챙겨 함께 샤워실로 들어가는 아버지.

 

에휴... 나는 당신을 저렇게 호되게 운동시키는 보호자는 못하겠다.” 같이 지켜보는 아내에게 푸념조로 말했습니다. 몸은 고된 훈련으로 조금씩 나아질지 모르지만 저렇게 보낸 시간 쌓인 상처가 나중 어느 날 또 다른 아픔으로 남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하지만 누가 알까요? 그 쓰라린 후유증을 예상하고 알면서도 저렇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심정을. 바깥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문드러진 채로 사는 처지를, 가슴을...

 

남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불행은...
남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불행은...

 

마음 같으면 무조건 힘들지 않게 해주고 먹여주고 시중들어주는 것이 착한 그리스도인이나 가족의 본분 같지만 진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재활병원에 도는 속담 중에는 게으른 간병인이 환자를 일으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할 일을 다 거들어주면 신체의 복구가 덜 움직이는 만큼 늦어집니다. 그래서 효자는 부모를 안방에 누워 꼼짝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도록 부려먹는(?) 자식이 오히려 부모를 위하는 거라던가요? 그러니 함부로 혹독한 아버지를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시간 병실 복도 끝 구석, “엉엉엉!” 한 환자가 눈물 콧물 쏟으며 울고 있습니다. 평소 유난히 사납고 쌈닭같이 굴어 남들을 피곤하게 하던 아주머니입니다. ‘저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내일 것이고, 또 자식들에게는 비 쏟아지는 날 우산 같은 엄마일 텐데...‘ 이런 마음으로 보니 환자가 평상시 밉던 모습과 다르게 보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밖에 없는 순간을 단 한사람과 경험하며 지나가는 풍경들입니다.

 

긍휼 그래도...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끼리 함부로 대하지 맙시다. 국어사전에는 긍휼 [矜恤]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 -로마서 9:16] 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바라거나 힘써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가엾게 여겨 도와주는 긍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루하마, 로암미? 암미!”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을 얼마나 긍휼히 여기는지 가르쳐 줍니다. 주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주의 말을 따라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습니다. 고멜이 아들 이스르엘과 딸 로루하마, 셋째아들로암미를 낳았습니다.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고, 로암미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부정을 만드는 접두사를 떼면 암미는 너는 내 백성이다라는 뜻이고, 루하마는 긍휼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로 호세아서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호세아2:23)]를 표현하면 루하마, 로암미? 암미!”가 될 것입니다. 너를 긍휼히 여겨 내 백성 아닌 자리에서 내 백성으로 삼겠다!’.

 

음란한 고멜을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랑은 때론 그렇게 어렵습니다.
음란한 고멜을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랑은 때론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린코다밀러의 작품-호세아와고멜

 

신약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10)” 즉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로암미? 암미!, 로루하마? 루하마!”가 되나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만일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한 사람도 구원받을 방도가 없습니다. 애굽에서 고통 가운데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에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너도 노예 -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해방된 노예 - 이므로 도망쳐 나온 다른 노예들의 심정을 공감하고 저들에게 긍휼을 보이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사이의 긍휼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쉽게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이것저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마치 기독교인인 자신은 거룩한 신앙인이고 세상은 온통 타락과 범죄의 소굴처럼 비난과 저주를 퍼붓기도 합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는 모두가 죄인 -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받은 죄인 - 이므로 세상 사람들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나 불신자 모두가 죄인입니다.

 

나폴레옹에게 한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아들이 두 번이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법에 따라 사형 받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사령관님, 저는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그런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그럴 자격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자격이 있다면 긍휼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어머니의 호소를 듣고 나폴레옹은 그 아들을 완전히 사면시켜 주었습니다. 긍휼을 잘 나타내는 한 예입니다.

 

T.풀러는 긍휼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의 적이다라고 했고, 리처드 십스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그분의 능력도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불쌍히 여겨 내려주는 긍휼이지만 받는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따로 또 있습니다. 아더 핑크의 말처럼 긍휼을 얻으려면 파산한 사람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를 향한 예수님과 사람들의 태도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람의 긍휼을 봅니다.
바디매오를 향한 예수님과 사람들의 태도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람의 긍휼을 봅니다.

 

마가복음에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그는 디매오의 아들로 소경으로 태어나 거지로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터라 그 예수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mercy) 여기소서!”라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는 단지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아픔, 외로움, 소외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더욱 소리 높여 예수를 불렀습니다.

 

분명 사람사이의 긍휼은 참 어려울 겁니다. 같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조차 불쌍한 소경 바디매오의 절박한 소리도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사람사이의 긍휼이 어렵기는 해도 사랑의 하나님이 먼저 베풀어주셨고 예수님이 본을 보여 실천하신 긍휼이 우리들 사이에 씨앗이 되고 싹을 틔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람의 긍휼은 뿌리가 하나고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씨앗은 힘이 셉니다.

하루도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음에도...
하루도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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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식 작가의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위즈덤하우스, 2013)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곁에서 남편이 써내려 간 6년 동안의 일기를 모은 에세이로 살아 있는 지금 시간이 기적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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