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져 가는 성전, 교회(에베소서 2:11-22)_다드림교회
지어져 가는 성전, 교회(에베소서 2:11-22)_다드림교회
  • 김병년 목사(다드림교회)
  • 승인 2018.10.17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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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주일 설교
다드림교회 김병년 목사
▲다드림교회 김병년 목사

노회에 계시는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게 됐어요. 너무 멋있게 잘 개척해서 ‘정말 저분이라면 교회가 안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교회가 문제가 생기고, 그 목사님이 사임을 하시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임하는 날, 저희 노회에 속해 있는 시찰회 목사님들과 함께 모여서 그분을 위로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 목사님이 일어나셔서 그러시는 거예요. “개척할 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새 집은 새 기둥을 써야 하는 데, 헌 집에서 빼온 기둥을 쓰니까 문제가 많더라.” 그러면서 “새집은 새 기둥을 써야 합니다. 개척하고 난 뒤 이곳저곳에서 온 분들과 함께 좋은 교회를 만들어보게 했던 것이 큰 실패감을 경험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때는 그 말에 굉장히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 3년쯤 저도 개척을 하고 보니까 “새 집도 헌 기둥으로 집 지을 수 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새집을 짓는다고 시작을 해도 그 집을 이루는 저 자신부터가 늘 헌 기둥이 되는 거예요. 어떤 다른 사람들이 부패하고 낡아지는 것보다 목회자인 제 자신이 자라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전의 경험했던 고집에 사로 잡혀 “이건 절대 안 돼!” 이런 생각들이 슬쩍 슬쩍 들어올 때가 참 많아요.

현대식 건축물들은 건축하고 나서, 해체하면 쓸게 없지만, 옛날 한옥 집들은 해체 해도 그 목재를 그대로 써도 아무 어려움이 없더라고요. 정말 옛 건물들 속에 있는 오래된 목조는 새롭게 쓸 뿐만 아니라 너무 단단하다 해서 다시 쓰임을 받는데 우리 모든 성도들도 한옥집에서 나오는 목재처럼 함께 교회를 이루어서 새롭게 쓰임 받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어떻게 우리가 지어져가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11절부터 13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지어져 가는 성전은 거듭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듭 나기 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육체로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 하는 비아냥거림, 조롱을 당하고, 무시를 당했던 사람들이었고요. 12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밖의 있었고, 세상 가운데 소망도 없었고, 하나님도 없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오는데. 놀랍게도 그때의 에베소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모든 복으로부터 제외됐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자, 우상숭배자였다는 것이지요

당시 에베소라고 하는 도시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단히 뛰어났던 곳이에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철학자들이 많았고, 지혜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두란노 서원을 통해 복음을 전했고, 논쟁을 하고, 또 사람들을 설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이 없는 자, 우상숭배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심지어 “세상에서 소망도 없는 자들”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기 전의 상태가 아무리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속적으로 풍요로워도 바울 사도는 그런 삶을 단 한 마디로, “하나님이 없는 자들의 삶”이었다고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초등학교 졸업하고 45년만에 동창회를 갔어요. 44명이 졸업을 했는데 벌써 6명이 죽을거예요. 그중에 제일 빨리 소천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죽었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아내가 벌써 죽었더라고요. 살아 있는 31명 중 14명 정도가 왔어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어떤 사람은 안 믿고. 그래도 친구들 만나니까 너무 즐겁고 막 술잔이 돌지 않겠어요. 저는 장로님이 가르쳐 준 거품 있는 소주(사이다)로 색깔을 맞춰 마셨습니다.

제가 주는 잔마다 넘죽 넘죽 받아먹으니까 그 친구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사이다도 너무 많이 마셔서 물로 바꾸어서 마셨어요. 그 어떤 술 좋아하는 친구가 제 컵의 것을 삼키고는 “에이~ 이거 병년이 꺼 잖아!”라고 너스레를 떨었어요.

친구들이 저도 모르는 저에 대한 추억이 많은 거예요.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네가 학교에서 공부 제일 잘했다. 달리기를 잘 했다.” 아! 여러분 저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웃음) 운동회 때마다 인간탑쌓기를 하면 저하고 1, 2번하는 친구가 맨 꼭대기에 올라갔다는 이야기.

그렇게 오십중반이 되어서 다시 만나가지고 친구들이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다!” 그러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그랬지요. 정말 좋은 친구지만 ‘야,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하고, 거기다 사는 철학 이야기를 하고, 돈 이야기 등 몇 가지만 얘기하면 다 원수 질 텐데. 얘들이 왜 이러지.’ (회중 웃음) 거기서는 그저 우리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며 참 멋있는 추억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너무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고, 실제로 저와 여러분이 똑같이 어떤 공동체에 있었던 추억은 있었겠지만 그 관계의 지속성과 그 속에서 나눴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다 끊어진 관계지요. 그런데도 세월이 지나면 그게 그리운 거죠.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의미를 찾고 무엇인가 발견하려고 하고.

제 마음 속으로 ‘얘들아! 나는 여기 너희들이 그리워서 온 건 맞지만, 여기가 내 고향이 아니야! 내 고향은 가 본 적도 없지만, 내가 믿고 있는 다른 고향이 있어! 그 분을 만나러 가는 것이 인생이지. 앞으로도 너희들을 만나러 오겠지만, 내게 절대적인 건 아니야!’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정말 동문을 찾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다 결코 고아일 수가 없고, 형제 없이 혼자 무남독녀, 아니면 동남 무녀. 이런 가정이 있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다 거듭나기 때문에. 그래서 때론 어떤 사람들이 목사님! 저는 너무 너무 외롭고 혼자 밖에 없어요. 마치 자기가 엘리야가 된 것처럼 직장에 들어가 가지고, 아니면 사회생활 하면서, 또 집 출장 가서 아무도 예수 믿는 사람 나 밖에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너 웃기지 마라 네가 모르는 사람 7천명이 유대 나라의 이스라엘 다했다. 그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여러분 우리 눈에 안 보이지만 어떤 어려운 시대에도, 어떤 세속적인 사회 속에도 그리스도를 경외한 사람들은 곳곳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 언약 안에, 하나님 나라 안에 있었다는 이 믿음의 고백을 자기 스스로 버리게 되는 것이예요.

 

2. 구원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내 믿음을 통하여, 내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구원 받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들 가운데 포함시켰다는 거지요. 히브리서 12장 1절의 표현대로라면 우리의 삶을 보고 있고, 우리가 그 증인들 속에 속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들과 함께 경주를 잘 마치도록 기다리고 있는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것이예요.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의 몸인 교회에 속하여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한 무리로 만드셨을까요? 13절 말씀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떠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거듭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도록 그렇게 우리를 부르셨다는 거예요.

방법이 뭔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해요. 그리스도의 피로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사역을 말하는 이것은 완결된 것이예요.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은 끊임없이 십자가를 묵상해야 됩니다.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단 한 번, 과거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날마다 그리스의 보혈을 의지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 사실을 믿고 매일매일 개개인이 인격적으로 예수와 연합 할 때에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성전 순례를 갈 필요가 없어요.

거룩한 땅은 하나님이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디든 임재 하시잖아요. 바울 사도는 지금 에베소 성도들은 향하여서 너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 이미 예수의 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가 이미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동체에 속하도록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지내도록,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도록 이렇게 불러 주셨지요. 그런데 14절에서 ‘원수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5절에는 이 둘을 자기 안에서 서로 화평하게 하시고. 이전에 삶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원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나지 않은 우리를 향하여 “나는 너의 원수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잘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를, 하나님의 심판을, 그래서 죄인으로서 죽은 상태로 우리가 살아갈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후에도 하나님을 싫어 하는 모습이. 지난 주에 예배드렸는데, 오늘 또 해야돼? 어제 아침에 묵상을 했는데 오늘 또 해야돼? 하면서 마음속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나가려고 하기보다 뭔가 싫어하고 멀리하기 쉽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십자가에 은혜로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뜻이 있어서 나를 부르는 줄 알겠는데 하나님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말하게 됩니다. 오랜시간 어려운 삶의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저한테 이런 얘기 참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하라” 등의 '항상'이라는 공포의 부사들이 좀 많습니까? 잠깐은 기뻐할 수 있지만 ‘항상’ 한다는게 어렵지요.

하나님은 구약의 언어로는 아브라함과 친구가 되셨고, 신약의 언어로는 내가 너를 친구로 삼았다고 하십니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를 말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유가 있는데. 하나님! 하나님도 나를 마음대로 하시는데 저도 제 마음대로 할꺼예요. 이렇게 말해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네 맘대로 해라 하실 겁니다. 이게 어거스틴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놀라운 은혜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이 점점 누구인지를 알아 가게 되죠.

 

3.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누리고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우리와 적대관계를 청산하셨습니다. 18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어찌 하려 하심이라” 우리들이 성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성령께서 함께 하실뿐만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들, 삼위 하나님이 모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관여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19절,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12절과는 너무도 다르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 나라의 시민, 하나님 나라의 가족,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0~22절은 모퉁잇돌, 건물, 성전, 모든 처소는 구약에 나오는 성전의 개념과 같습니다.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주석을 할 때, 한 문장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성경 말씀 곧 신약과 구약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터는 그리스도 그분의 모퉁잇돌 되심과 동시에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위에 교회가 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가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말씀이 아닌 인간관계로 선다면 교회는 깨지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터 위에 우리들의 삶을,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21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결코 혼자서 묵상하며 혼자서 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연합한 우리들이 서로 주님과 연결되면 자연스럽게 그의 집과 연결되겠지요. 그러려면 하나님과 연합되어여야 합니다. 어떻게 연결 시키냐에 공간들이 새롭게 나오고, 또 효율성도 있게 편하게 쓸 수 있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가 그 가르침에 기초하여 서로 연결 되어서 은사를 좇아서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보고 서로 도움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지어져 간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실 때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드림교회는 공릉동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이예요. 여러분은 저희 교회를 다니면서 ‘성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을 거예요. 성전은 바로 우리들의 몸이기 때문에 하지 마라 그렇게 가르쳐 왔는데. 빌딩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함께 몸이 모여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하고, 우리의 관계를 더욱더 주의 영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누구도 섣불리 이게 더 쉽다 말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 늘어난다고 공간을 늘려가면 반드시 성장주의가 그 귀결점이 됩니다. 그렇게 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성도들이 그 관계 안에서 서로 헌신하고 예수와 연합 하여서 서로를 섬기고, 돌보는 것이 더 깊어져야 하고, 적극적으로 되어져야 되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 안에서 지어져 가는 성전이 되어져 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더욱더 예민함과 그리고 진실함과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 예수와 더욱더 연합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헬라문화가 꽃피고 있는 에베소 땅에서 너희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입니다. 창세기 1-2장에도 성전이 나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하고 난 뒤에 인간을 그곳에서 다 쫓아내시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텐트 안에 거하셨습니다. 그 텐트는 솔로몬 성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겸손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안에 머무신 성전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2절, 23절에 보면, 예수님이 오셔서 “나는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을 입고 오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함께하신 곳 어디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만지면 불결하다는 사람들을 만지시고 교제하셨습니다. 언제나 누구든지, 그 사람의 도덕성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도 죄인이고, 그 사람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언제나 겸손함을 요구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5절-20절에는 누군가 죄를 범하는 가서 권면하고 그 사람을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면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십니다. 관계 안에서 지어져가는 성전을 돌아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용서입니다. 건물은 부수적인 거예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신실하게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공간과 환경을 의지해서 이곳이 성전이라고 말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지어져 가는 성전으로써 주님과 연합하고, 연합한 주님 안에서 성도들과 연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한국교회는 건물 짓다가 그만 탐욕이 일어나고 땅을 많이 산 것을 자랑하다가 그만 어둠의 권세에, 돈에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개척을 하고 난 뒤에 꿈꿨던 지워져 가는 성전, 교회로, 우리가 다시 자라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다 성령 충만 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그 연합한 주님 안에서 성도들과 연합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소그룹을 하는 모든 지체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져 가고, 세워져 가고, 자라가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다드림교회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다드림교회 10월 14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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