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작은 일도 사소하지 않습니다_김재식 작가
#17. 작은 일도 사소하지 않습니다_김재식 작가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8.11.17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실의 묵상
생명은 언제나 사소하지 않습니다. 작고 큰 차이가 없이
▲생명은 언제나 사소하지 않습니다. 작고 큰 차이가 없이

"와이셔츠를 이틀씩이나 입고 가도 누구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아침 드라마에서 신랑이 아내에게 투덜거렸습니다. "왜 그래? 와이셔츠 이틀씩 입은 거 처음도 아니고 나 요즘 일 바쁜 거 알잖아?" 아내는 그렇게 말해놓고도 딴 사람에게 물어 봅니다. "와이셔츠 이틀 입는 게 뭐 그렇게 화날 일인가? 와이셔츠를 새로 두어 개 더 살까?"

아내들도 때로는 모릅니다. 남자들의 투정 아래에 숨어 있는 큰 얼음덩어리를, 와이셔츠는 핑계입니다. 그건 뭔가 외롭거나 화나거나 사는 게 시큰둥해져가는 경고인데... 그러나 그 아내가 드디어 눈치를 챘습니다. "우리 당일로라도 어디 여행갈까? 당신도 나도 요 근래 힘들었잖아?" "~엉말? 나야 좋지!"  드디어 영민하신 아내가 와이셔츠가 아닌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남자는 얼굴이 활짝 펴지고! 남자만 그럴까요? 사는 게 두렵거나 속상하면 외이셔츠나 물고 늘어지는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것이...

뭔가를 향한 그리움 그 대상이 늘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소하다고 무시하여 쌓이면 절대로 사소한 채로 머물지 않습니다. 더구나 서로가 서로를 잘 몰라서 일어나는 위험은 눈덩이가 굴러가듯 점점 더 커집니다.

"아들, 참 미안했다." "뭐가요?" "어릴 때 많이 혼 낸 거..." 십여 년이 넘도록 내가 큰 가시하나처럼 기억에 담고 자책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적 교육을 이유로 한 체벌에 어떤 때는 화풀이가 더해졌던 것이... 그러나 아들에게 확인하니 그냥 나 혼자의 걱정이었고 미안함이었습니다. 아들은 그 날이 아닌 다른 날들을 기억하며 나를 믿고 살았나봅니다. 나는 그렇게 아들을 몰랐습니다. 내게서 나오고 내가 키우고도 나는 아들이 그 일로 상처를 담고 나를 원망할 줄만 알았습니다.

가장 놀란 건 아내의 경우였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힘들어 죽어버릴지도 몰라...' 중환자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릴 때, 매번 내 마음은 벌렁거리고 많이 불안했지만 그때마다 아내는 꾹 참고 잘 견뎠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하겠지? 사소한 일이니까' 하며 병실의 다른 사람들과 생일회식으로 바깥나들이 하고 온 날, 아내는 속상하다고 펑펑 울었습니다. 못 움직이는 아내니까 당연히 나 혼자 다녀오는 거다 싶었는데 소외당한다고 많이 서러웠나봅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책에서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소중하게 보지만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 기준에 따라 작고 사소한 것으로 단정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로 많은 상처도 생기고 갈등이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작은 사람이 작지 않고 작은 일이 사소하지 않나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가끔 보는 스토리가 생각납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요? 보잘 것 없고 시시해 보이는 나그네에게 마실 물도 주고 먹이고 쉴 곳을 제공했는데, 나중에 보니 천사더라는. 아마도 그런 친절을 베푼 사람은 천사를 눈치 채고 갑자기 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딱하게 여기고 대접했을 겁니다. 또 반대로 평생 그렇게 살고도 단 한 번도 천사를 만나지 못한 채 진짜 수고로만 끝나는 사람도 많을 소도 있습니다. 많은 영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바보 같고 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이나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작은 일과 작은 사람에게도 충실함이 기쁨인 복을 받기를 빕니다.
작은 일과 작은 사람에게도 충실함이 기쁨인 복을 받기를 빕니다.

중세기 때 평신도로 한 수도원의 부엌에서 섬기는 '니콜라스 헤르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로렌스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수도원을 찾은 어느 방문객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매일 부엌에서 청소하고 그릇을 씻고 음식 만드는 일만 하는데 그것 때문에 불평한 일은 없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음식을 만들면서 계속 기도합니다. '이 음식을 먹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우소서.' 그리고 청소하면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하소서.'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 외에 남는 시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를 부엌의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의 가르침에도 그런 태도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 역린에는 <중용 23>이 명대사로 나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살아서 자란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하다.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하지 못하다." (눅 16:10)

예수님은 이 말을 당시의 제자들과 군중에게 해주면서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사람들 속에 있는 어떤 습관과 영악함과 고약한 기준, 그것이 서로를 어떻게 망치는지를 이미 내다보고 계신 것은 아니었는지...

남들에게는 아니라고 펄쩍뛰며 말하고 싶지만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면 인정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작은 일, 작은 사람의 판정기준이 종종 내게 이득이 얼마나 생기는지에 달라지더라는 것. 또 겉옷이나 지갑의 두께에 따라 사람을 귀하거나 낮은 자로 판단하는 이유가 되었더라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다른 이들도 그럴까요?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사소하다고 무시하지 않아야 큰 일이 무너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을 받고 벌을 받고 그런 나중의 결과를 떠나서 그렇게 사는 오늘, 지금의 순간들도 평안해지고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는 것도 하늘의 은총이지만. 비슷한 마음을 소설가 박완서님의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에서도 보았습니다. 소박한 마음 겸손한 기준이 살아있는 매순간을 감사하게 만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 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 때의 빛나는 재능도 다 소용없구나,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그런 아주 사소한 일들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다음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


* 김재식 작가의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위즈덤하우스, 2013)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곁에서 남편이 써내려 간 6년 동안의 일기를 모은 에세이로 살아 있는 지금 시간이 기적임을 일깨운다.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