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송영의 삼위일체론』, 이동영 저
[북리뷰] 『송영의 삼위일체론』, 이동영 저
  • 박진기 기자
  • 승인 2018.11.17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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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하느니 나는 차라리 경배하리라!"
『송영의 삼위일체론』(이동영 저, 새물결플러스, 2017.9)/ 이동영 교수
『송영의 삼위일체론』(이동영 저, 새물결플러스, 2017.9)/ 이동영 교수 ⓒ 사진출처: 새물결플러스

 

들어가는 말

교회를 다년간 다닌 사람일지라도 우리가 믿는 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이 내 자신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단이 중요한 인물로 손 꼽는 칼뱅이 기독교강요를 통해 가르친 바 이기도하다. 그러면 필자는 어떠한가. 과연 필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표현하여 말하는 ‘신’이라는 개념으로써 하나님을 얼 만큼 이해하여 설명 할 수 있는가? 

애석하게 필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주관적으로 설명 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늘 한계에 이르렀었다. 객관적인 설명에 있어서 늘 부딪혔던 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었다. 어떻게 세 위격이 한 본질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만에 문제가 아닌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난제였다. 하지만 본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결코 사변적인 것으로써 상념과 주관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것임을 풀어 설명하는 것에 있다. 이어서 저자가 강조하는 바 신학은 사변이 아닌 송영 곧 하나님에 대한 찬미로부터 태동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동방의 신학 곧 삼위일체

삼위일체에 관해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 차이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동방의 신학 곧 삼위일체에 대한 진술이 니케아 공의회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권위를 두고 있는 것임을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의 진술로부터 종속론의 위험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저자는 성부와 성자에 지위가 결코 종속적이지 않은 것임을 설명하며 동방교회의 진술에 대한 위험에 대안이 페리코레시스임을 말한다. 이는 세 위격이 어떻게 하나로써 사역하였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전통적인 노력이다.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정통이라 할 수 있는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진술에 전통을 두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동방의 신학을 접할 수 있었는 것은 이 책만이 가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느낄 수 있는 분량에서 동방의 신학에 대한 아쉬움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필리오케’와 관련한 것이다.

저자는 말하기를 세 위격에 대한 비공유적 속성 곧 신성의 원천과 영원한 출생 그리고 영원한 발출이 설명되어졌고 이해되었더라면 성부를 통해서라는 것이 성자를 통하여서와 전혀 부딪힐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교회의 회의와 고백에 권위를 두고 신학을 전개하는 동방교회의 이해는 세 위격이신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하나를 이루는지 곧 사역에 대한 관심이었고 신경의 고백과 진술에 따라 ‘혼합없이’ ‘변함없이’ ‘분리없이‘ ‘분열없이’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다. 

 

서방의 신학 곧 삼위일체

서방의 신학은 동방의 신학이 가진 종속론의 위험을 인식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한 분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써 사역하시는지에 대한 이해를 진술한다. 하지만 이 역시 양태론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우리가 접하는 수 많은 사례들이 증명한다. 예를 들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을 설명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으로부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 차라리 저자가 제안하는 것처럼 동방과 서방에 이해에 장점을 모두 취합하여 이해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본질로서 하나라는 것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한 서방 그리고 세 위격의 사역을 조금은 더 깊게 이해한 동방의 신학을 깊이 이해하는 것 말이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느냐에 있는 것이지 본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동방은 세 위격이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서 페리코레시스기 대안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한 서방은 아프로프리아치오가 대안이 되는 것이다. 

 

나가는 말

칼 라너는 삼위일체에 관해 다음의 진술을 하였다. ”경륜적 삼위일채가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가 곧 경륜적 삼위일체적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경륜적 삼위일체 곧 세 위격으로서의 하나님은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 동의되는 바이다. 전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위와 같은 진술이 경륜적 삼위일체가 내재적 삼위일체와는 같다 할지라도 내재적 삼위일체 곧 하나님의 본질로써 세 위격과 공유하시지 않는 신성의 원천이 경륜적 삼위일체에 비해서 깊기 때문이다. 필자는 저자의 이러한 진술을 통해 삼위일체 교리는 늘 ‘종속론’과 ‘양태론’이라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교리이며 신학임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사변하느니 경배하리라!”는 멜랑히톤의 고백과 찬미는 삼위일체 교리가 결코 사변이 아닌 삶의 실천을 요구하는 신학임을 교훈하는 것일지 모른다.

결국 동방과 서방의 신학을 종합하여 사고할 때 우리는 저자가 바빙크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과 같이 삼위일체 교리가 교회의 심장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간의 동일성이 곧 획일성이지 않다는 것과 그 안에서 세 위격이 구별 됨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 가장 속시원한 진술은 페리코레시스적인 세 위격의 연합이며 아프로프리아치오 곧 하나이시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여서 세 위격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사역에 있어서 서로 간의 상호침투. 내재. 환대하며 본질로서 하나이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견해와 진술의 수립이 역사와 동떨어지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이유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나 ‘사랑’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르겐 몰트만이 정의하는 사회적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공부해 보아야 할 분야임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통틀어서 삼위일체에 관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 인간에게는 여전히 완전한 인식이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신비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종말에 완성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생각하며 삼위일체 간에 사랑과 섬김의 실천이 인류보편적으로 교회를 통해 드러나길 소망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종말에 완성되는 것임에도 존재론적인 방법과 인식론적인 방법에 있어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할 객관적인 설명은 무엇인가? 삼위 하나님이 인류을 위해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섬김과 실천이 교회를 통해 흘러나가야 할 사회적인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지 않겠는가!

 

한편 이동영 박사는 총신대신대원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고전어학부에서 고전어과정(라틴어, 헬리어)을 이수한 후, 동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에서 신학기초과정을 공부했다. 그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신학부에서 코르넬리스 판 더 코이 교수(Prof. C. van der Kooi)의 지도로 신학석사를 취득했다. 독일 보쿰 대학교 신학부에서 트라우고트 예니헨 교수(Prof. T. Jähnichen)의 지도로 삼위일체신학을 전공하여 최우등(magna cum laude)의 성적으로 신학박사학위(Dr. theol.)를 취득했다. 

학위본문은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항하여 독일 고백교횔르 설립하는 일에 중대한 공헌을 했던 고백교회의 지도자 한스 에렌베르크 목사(Pfr. Dr. Hans Ehrenberg)를 기념하는 신학시리즈인 "한스 에렌베르트 기념신학총서"(Schriftreihe der Hans-Ehrenberg-Gesellshaft)라는 제목으로 독일에서 출판됐다. 

또한 오스트리아 빈에 소재한 현지 개혁교회인 츠빙글리교회(Österreichish-reformierte Gemeinde Zwinglikirche [HB]의 협동목사로서 한인교회인 빈 정통교회를 개척하여 12년 동안 담임 교역자로 사역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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