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0)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0)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3.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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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6:19의 "나의 증인"과 "나의 중보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2) ‘나의 증인’과 ‘나의 중보자’는 누구인가?(욥 16:19)

욥은 16장에서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 내용은 다음이다.

“지금 나의 증인(עד)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שהד)가 높은 데 계시니라”(욥 16:19).

욥은 자신이 심판 받지 않을 이유로 하늘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줄 ‘증인’이 있고 높은 곳에는 ‘중보자’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욥이 말하는 증인과 중보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라는 의미로 일반화시키기도 하지만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만약 욥이 예수 그리스도를 염두하여 ‘중보자’를 언급했다면 이는 욥이 메시아를 대망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욥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선지자로서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욥이 이 시점에 <구원의 근간으로써의 의>를 지닌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욥이 말한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지 알아보자.

먼저 ‘증인’과 ‘중보자’는 동일한 존재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19절이 평행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의 증인이 →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 높은데 계시니라

평행법은 구약성경에 흔하게 등장하는데 유사한 내용을 반복하여 운율을 주고 강조하는 문학기법이다. 그러므로 증인과 중보자는 같은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보자’로 번역된 ‘שהד(사헤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שהד(사헤드)’는 구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이다. 때문에 번역이 상당히 까다롭다. 그래서 성경번역본마다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었다.

<개역한글> “보인” : 보증하는 사람

<공동번역개정> “보증인” : 채무 불이행 시 대신 채무를 담당하는 사람

<개역개정> “중보자” :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관계를 성립시키는 사람

<새번역> “변호인” : 소송에서 변호를 담당하기 위해 선임된 사람

<개역한글>의 ‘보인’과 <공동번역개정>의 ‘보증인’은 같은 의미로 구약성경에서 널리 사용된 ‘גאל(고엘)’의 뜻에 가깝다. 보증인은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존재이다. 따라서 욥이 보증인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자신의 유죄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문맥의 흐름 상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보증인이라는 번역은 적절하지 않다.

<개역개정>의 ‘중보자’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만약 욥이 성육신 이전의 성자하나님께서 대속사역을 감당하실 것을 미리 알고 ‘שהד(사헤드)’라고 말했다면 ‘중보자’는 바른 번역일 수 있다. 그러나 욥이 성육신 이전의 성자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욥기 내에서는 그에 대한 단서를 찾기 힘들다.

어떤 분들은 욥기 19:25에서 욥이 말한 ‘대속자’가 욥이 중보자에 대한 지혜가 있었다는 단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은 오늘 16:19을 정리하고 다음 회에서 다루겠다. 그런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19:25의 ‘대속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 욥이 말한 ‘שהד(사헤드)’를 성육신 이전의 성자하나님으로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욥이 의인이라는 전제하에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중보자’라는 번역은 의미가 비약된 해석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욥기 16:19 이전 문맥을 보면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핍박하신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서는 16장 전체를 보아야하겠지만 그 내용은 성경을 펴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으로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16:11만 확인하겠다.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욥 16:11).

욥은 하나님의 공격을 받고 있는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욥 16:17).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욥은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자기를 핍박하신다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친구들은 자신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한다고 답답해한다. 욥은 이러한 입장 가운데 19절을 말했다. ‘나에게는 나의 결백을 밝혀줄 증인이자 중보자가 계시다.’

여기에서 욥이 중보자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중보자는 죄로 인해 깨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욥은 죄가 없는 자신으로부터 부당하게 자신을 핍박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할 존재를 구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지 자신의 죄를 담당할 존재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중보자’라고 번역하였다면 중보자가 지닌 고유성으로 인해 오해가 발생지 않도록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싶다.

19절에서 욥은 ‘שהד(사헤드)’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שהד(사헤드)’는 욥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줄 ‘변호인’의 의미로 말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평행법이라는 어법상으로 보더라도 증인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변호인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16:19의 ‘증인(עד)’과 ‘שהד(사헤드)’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욥은 증인이 현재 존재하며 하늘에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초월자이고 욥의 행사를 지켜본 자이다. 먼저 천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천사는 하늘에 있고 욥의 삶을 지켜보았으며 지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욥이 천사를 증인으로 제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욥은 이어지는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יכח)하시기를 원하노니”(욥 16:21).

욥은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를 희망했다.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재할 만한 주체는 19절의 증인과 동일인물이다. 그러므로 19절의 증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로 설만한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천사는 그럴만한 자격이 결여된다. 가치중립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이 하늘의 천사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고 보기는 힘들다.

천상의 존재로써 천사도 성자하나님도 아니라면 욥이 지목한 증인을 성부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로 이어서 욥은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20절)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 않느냐는 애절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을 증인과 변호인으로 세웠다면 하나님은 심판자인 동시에 증인, 재판관인 동시에 변호인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만약 욥이 하나님을 증인과 변호인으로 내세운 것이 옳다면, 자신의 고난의 부당함에 대한 빈정거림이거나 자신의 결백을 알고계시지 않느냐는 하소연일 것이다. 이후 욥의 말에 하늘의 증인이 성부하나님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내용이 있다. 바로 이어지는 문맥인 17:3~4이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욥 17:3~4).

3절에 욥은 누군가에게 담보물을 달라고 했다. 또한 자신의 손을 잡아줄 자를 구했다. 그는 바로 전에 언급했던 하늘의 증인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4절에서 친구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한 ‘주’에 대해 말했다. 여기에서 ‘주’는 분명 성부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늘의 증인’이 성부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욥은 성부하나님께서 자신이 무죄임을 알고 계시다고 생각했다. 이를 알 수 있는 구절은 다음이다.

“주께서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욥 10:7a).

욥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 계시다고 생각했다면 성부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신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 그래서 16:21에서 욥이 말한 ‘증인(עד)’과 ‘שהד(사헤드)’는 성부하나님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봐야할 내용이 있다. 욥이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심은 성자하나님의 성육신과 성령하나님의 강림의 역사가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개념이다. 욥이 초월적인 계시를 통해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는 욥기가 증언하지 않는 추측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욥이 말한 주를 신약시대의 입장에서 성부하나님으로 구분하여 생각해보고 있지만 욥의 입장에서는 단지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욥이 삼위일체의 엄격한 개념을 가지고 성부하나님이라고 말했다기보다 창조주, 절대자, 지존자 한분 하나님으로써의 인식 하에서 언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16:21에서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에 대해 말했다. 이는 성부하나님 외에 또 다른 중재자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욥이 말한 자신의 증인과 변호인이 성부하나님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욥은 ‘하늘의 증인’과 ‘높은 곳의 변호인’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분이 천사인지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제3의 존재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움이 있지만 욥이 자신의 결백함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여태껏 있었던 글의 흐름상 욥기 16:19을 욥이 자신의 결백을 선포하는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라고 본다면 큰 무리가 없다.

오늘은 욥이 16:19에서 언급한 “나의 증인”과 “나의 중보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욥기 19:25의 “나의 대속자”가 누구인지 확인해보려 한다. 이 글이 욥기를 바로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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