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족 사람들 (6) - 사냥꾼의 아들, 다반 존
부르족 사람들 (6) - 사냥꾼의 아들, 다반 존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4.03 2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망친 선교사의 치료적 글쓰기
세 명의 존. 제일 오른쪽이 다반 존.
▲세 명의 존. 제일 오른쪽이 다반 존.

아내와 나는 부르족에서 피난 나온 뒤로 2년 가까이 부르족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피차간에 감정적으로 도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깊이 숨겨 놓는 것이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아내가 부르족을 떠올리다가 오열하듯 울고 난 후, 우리는 의도적으로 종종 부르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슬픔을 말하십시오. 비탄이 입을 못 열면 미어지는 가슴이 터져버리고 마는 법이니.”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드 중에서

“부르족을 떠나고 누가 제일 마음에 걸려?”

내가 물었다. 그리고 아내는 이미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존.”

“존? 어느 존? 존이 너무 많아.”

비난슈가 부르족 청년들에게 "존"이라는 이름을 너무 남발해서 지어주었다.

“우리가 공부시켜주겠다고 했던 존. 전쟁 나서 돌려보낸.”

“아... 다반?”

그의 이름은 다반이었다. 다반. 피곤함이라는 뜻이다. 나는 다반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웃겨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정말? 이름이 피곤함이야?”

“응. 엄마가 나를 낳고 피곤했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름을 피곤함이라고 지어?”

그러자 다반은 옆에 있는 또 다른 존을 보며 말했다.

“얘 이름은 ‘죽은 엄마’야.”

“뭐?”

그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웃을 수가 없었다.

부르족은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상태나 주변 환경을 보고 아기의 이름을 짓는다. 어떤 사람의 이름은 “할머니가 왔다”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은 “가난”, 어떤 사람의 이름은 “배고픔”, 어떤 사람의 이름은 “화난 아버지”, 어떤 사람의 이름은 “설탕”, 어떤 사람의 이름은 “말라리아”, 어떤 사람의 이름은 “죽은 엄마”, 어떤 사람의 이름은 “비가 온 날”, 어떤 사람의 이름은 “전쟁”.

그 뒤로 나는 비난슈로부터 영어 이름을 받은 청년들에게 원래 이름을 물어보지 않고, 그냥 영어 이름으로 불렀다.

 

아내는 '부르족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공부'라고 생각하고, 아이들로부터 청년들까지 열심히 영어를 가르쳤다. 아내가 "영어 학교를 하겠다,"고 홍보를 하고 영어 학교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부르족에는 원래부터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 학교를 열어봐야 아무도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일학교에 오는 아이들에게 "영어 학교에 꼭 오라고 강청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우리끼리 '20여 명쯤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첫 번째 영어 수업에 200여 명이 왔다. 그 중에 50여 명은 어른들이었다.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이 “에이, 애플! 비, 버드! 씨 캣!” 하며 크게 따라 했다. 부르족 전체가 떠나갈 듯이 우렁찼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울컥 하고 울 뻔했다.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가 생각났다.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며 '학교를 세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르족에 학교를 세우자. 눈물을 머금으며 다짐했다.

영어 공부 붐은 단연 청년들을 강타했다. 할 일 없이 그늘 아래서 시간을 보내던 청년들은 아내가 영어 학교를 시작한 이후, 손에 영어알파벳 쪽지와 영어 프린트물들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부족에서 유일하게 영어가 가능하던 비난슈가 바빠졌다. 청년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난슈에게 달려갔다. 비난슈는 마다하지 않고 물어보러 오는 청년들을 가르쳤다.

“청년들이 너무 귀찮게 하지 않아?”

내가 물었지만 비나슈는 오히려 기쁘게 대답했다.

“아니야. 난 좋아. 사실 난 우간다에서 돌아와서 학교를 세우고 싶었어. 그런데 나 혼자 하기가 버거워서 접었었는데 좋은 기회지. 난 좋다고 생각해. 내가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울게.”

비난슈는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비난슈와 영어공부하는 청년들.
▲비난슈와 영어공부하는 제이콥과 존.

청년들 중에서도 유난히 아내를 따르며 몰려다니는 무리들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 영어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다반 존은 다른 청년들과 몰려는 다니지만, 영어는 전혀 못했다. 가르쳐 주려고 하면, 오히려 거절했다.

“아니, 나는 사냥꾼이 될 거야. 영어는 필요 없어.”

다른 청년들은 영어 단어 양이 늘어가고 서로 영어로 농담도 하며 노는데, 다반 존은 그럴 때면 청년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원래도 말이 없고 무뚝뚝한 청년이었는데,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수가 더 적어진 것 같았다. 청년들이 영어 공부하는 것을 보면 부러운 듯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막상 "공부하자!"고 제안하면 대답은 한결 같았다.

“나는 아빠 따라서 사냥꾼이 될 거야. 영어는 안 해도 돼.”

다른 청년들의 영어 실력은 서서히 늘어갔다. 그리고 한국의 후원교회가 단기선교팀을 꾸려 부르족으로 왔다.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청년들은 유창하게 영어로 말했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 온 부르족 청년들은 한국에서 온 청년들과 간단한 영어 표현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외국인과 대화가 된다는 것을 확인한 청년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다반 존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짐을 나르거나 청소하는 등의 다른 일들로 한국에서 온 단기 선교팀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한국에서 온 단기 선교팀이 돌아가고 부르족의 청년들은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부르족에 학교가 있다면 다니겠지만,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외부로 공부하러 가야만 했다.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오웅아 제이콥이었다. 제이콥이 공부하기 위해 우간다의 난민촌 학교로 가자, 아내를 따르던 다른 청년들도 제이콥이 우간다로 간 방법 그대로 난민촌 학교로 갔다. 그러나 다반 존은 가지 못했다. 함께 어울려 다니던 남자 무리 중에서 다반 존만이 부르족에 남았다.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내가 존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넌 공부하고 싶지 않아?”

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공부하고 싶지?”

존은 슬픈 눈을 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안 했어? 그동안?”

“아빠가 그랬어. 사냥꾼이 되라고. 나는 이미 아빠를 따라서 사냥을 배워서 사냥꾼이 되어야 해.”

“비난슈는 영어하는 낚시꾼이잖아. 너는 영어하는 사냥꾼을 하면 되겠네.”

“아빠가 허락을 안 해.”

“이제 남수단에 정부가 만들어졌어. 옛날처럼 부족끼리만 살던 시대는 끝날 거야. 남수단 정부가 영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했어. 나중에는 부족과 부족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차를 타고 교통하는 시대가 올 거야. 영어를 해 두는 게 좋아.”

“하지만 아빠가 싫어해.”

“아빠가 영어를 싫어하는 거야?”

“아니, 공부는 돈이 드니까. 비난슈가 우간다 갈 때도 비난슈 아버지가 소들을 다 팔았어. 제이콥도 이번에 우간다 갈 때 소 한 마리를 팔았어. 다른 애들 부모님들도 다 소 한 마리씩을 팔았어. 아빠는 사냥꾼이라 소가 없어.”

나는 존의 사정을 듣고 아내에게 존을 공부시키자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내도 동의했다. 아내의 동의를 얻고 우리가 공부시켜 줄 테니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존은 전에 본 적 없던 밝은 표정을 하고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으러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 돌아왔다.

“아빠가 허락했어. 짐을 싸서 내일 너의 집으로 갈게.”

 

존은 신나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터졌지만 다음 날, 존은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왔다. 난감했다.

“존. 미안한데, 전쟁이 났어. 상황을 조금 지켜보자. 응?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일주일 뒤에 다시 와봐. 일주일 뒤에, 응?”

존은 매우 간단히 대답했다.

“응.”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전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치열해지는 전쟁을 지켜보느라 존과 했던 약속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존은 잊지 않고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전쟁 중인데 눈치 없이 짐을 싸 들고 와서 우두커니 서 있는 존을 보니 미안한 생각보다 짜증이 났다.

“존. 지금은 전쟁이 났잖아. 지금 이 상황에서 공부가 돼? 일단 집에 돌아가. 전쟁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

내가 다소 매몰차게 말해서인지,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는지 존은 풀이 죽었다. 그 때의 존의 눈동자. 모든 희망이 꺼져버린 듯한 느낌을 가득 담은 그 눈동자. 울컥. 짜증낸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존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려 하자 아내가 존을 위로했다.

“존. 미안해. 전쟁이 끝나면 하자. 너무 걱정하지 마.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

존은 아내의 위로로 조금 기운을 얻었지만 여전히 풀이 죽은 채로 돌아갔다.

그것이 존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이 치열해진 전쟁에 우리는 남수단을 탈출했다.

아내도 나도 다반 존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때문에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 있다. 여전히 존의 마지막 그 실망한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존은 그 때 우리가 나갈 것이라는 걸 알았던 걸까?  

남수단은 여전히 전쟁 중이고 공식 공용어는 여전히 영어다.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