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3] “ 더 큰 역사 ”(계 1:9-11)
[요한계시록강해3] “ 더 큰 역사 ”(계 1:9-11)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4.0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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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독감”이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지 많은 사람들이 시달렸습니다. 사실 감기가 굉장히 무서운 질병이라고 하지요. 다가올 미래가 가장 무서운 질병은 “감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따지자면 너무너무 작은 병균, 바이러스인데 이것 때문에 쓰러져서 아무 것도 하지 못 합니다. 자신이 너무너무 연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자신의 한없는 연약함을 발견했을 때에, 누군가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것이 부모님이 되었든, 의사가 되었든,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이지요.

독감으로 동안산 병원에 입원한 은경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저는 전화통을 붙잡고 은경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제 아버지, 김진흥 목사님은 이런 일에 제게 모범 교사가 되어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가정의 일을 위하여, 교회의 환난에 대하여 기도원을 찾아가 장기간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모습을 자주 뵈었기 때문입니다. 염려가 되어 찾아가 뵈면 그 얼굴만 뵈어도 이미 응답받은 모습을 하고 계신 겁니다.

사실 우리에게 닥쳐오는 환난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됩니다. 환난이 오면 주님 앞에 무릎으로 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환난이 오면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믿음마저 던져 버리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1.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지난 시간에는 “사랑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일곱 교회”에 편지하라고 하셨던 게지요. 오늘 본문은 그 편지가 밧모 발 편지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밧모 섬은 소아시아 서부에 있는 섬들 중 하나로 로마제국이 유형을 보내는 섬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의 나이 거의 100세가 가까운 나이에 밧모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이유는 본문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 말살 정책에 걸린 것이지요. 백발의 노인이 유배형을 살고 있습니다. 로마 군병의 통제 가운데 그 자신의 몸도 제대로 추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이 보면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에 관하여 소개하는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9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해왔는데 막판에 섬으로 유배를 당하다니, 왜 이 고난을 나에게 주십니까?” 라고 항의할 만 한데, 그러지 않고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그 나라를 누리기에 인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는 순서를 바꾸어 환난 중에도 인내함으로 소망함으로 결국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로도 받을 수 있겠지요.

“환난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누린다”는 것은 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주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고, 주의 음성을 더 크게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지요. 모든 육체의 기회를 잃어버렸기에 주님만 바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익이라는 것이지요. 들을 수 있기에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에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 5:3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터툴리안(AD155~240)은 “우선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밧모 섬의 환난에서 사도 요한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2. 주의 날에 임한 성령의 감동

사도 요한이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 즉 그 나라를 누리면서 인내하는 모습이 10절에 나타납니다.

10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그는 유배된 가운데서도 주의 날을 지켰습니다. “주의 날”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 즉 오늘날 “주일”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가 안식 후 첫날 모여서 예배하며 교제했던 것처럼 유배지에서도 “주의 날”을 지킨 것입니다. 그가 어떤 모양으로 예배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있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죽은 자처럼 되었다가 깨어나 찬미하고 기도했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요한 역시 밧모 섬에서 갇혀 제한된 삶이지만 “주의 날”에 예배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혼자 했을지, 아니면 다른 유배자들과 함께 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다른 이들이 있었다면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함께 예배하였을 것입니다.

밧모 섬의 유배가 죽음과 같은 것이지만 부활을 기념하며 주의 날에 예배함으로 성령의 감동이 임하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한없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부활의 날이니까요. 적어도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예배한다면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려 올 줄 믿습니다.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가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에게 환난이 없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국가적으로도 환난이요, 일터에도, 가정에도, 학교에도, 내 몸도 환난에 놓여 있지요. 중요한 것은 이 날이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란 사실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부활 승리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겁니다. 사도요한의 믿음을 따라 갈 때에 우리에게도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큰 음성으로 말미암아 부활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일곱 교회에 보내라.

이제 하나님의 큰 음성은 밧모 섬의 요한의 귀만 울린 것이 아닙니다. 그 울림은 두루마리에 씌어져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했습니다. 사탄은 요한을 유배 보내 놓으면 복음의 역사가 중단 될 줄 알았겠죠? 다시 한 번, 사도행전 16장의 사도 바울의 빌립보 감옥 이야기를 떠올려 볼까요? 바울을 감옥에 넣으면 복음이 중단 됩니까? 아니 죽이면 중단 되나요? 복음을 막으려고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두었다가 빌립보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감옥문이 열리고 결박이 풀리고 간수가 회개했던 역사를 잘 알지 않습니까?

우연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지요.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눅 20:18). 결국 감옥의 간수장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간수장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구원받았습니다.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지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요? 이는 존 번연의 설교를 금지시켰음에도 지키지 않자 감옥에 넣었는데, 그 감옥에서 탄생한 것이 “천로역정”이고,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고, 만일 존 번연이 종교 개혁기에 태어났더라면 “번연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지요.

사도 요한 역시 밧모 섬에서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이 임했고, 그 감동은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나타났고, 그 큰 음성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다시 말해서 모든 시대,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난 가운데 된 일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맺으면서 9절 상반 절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했지요? NIV성경이 원문대로 잘 번역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의 것들인 환난과 나라와 끈질긴 인내로 너희 형제와 동역자인 나 요한은....”입니다. 그러니까 환난과 나라와 인내가 요한 것만이 아닌 “우리들의 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 편지를 받는 일곱 교회가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형제요 동역자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요한만이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편지의 수신자 일곱 교회뿐 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이 은혜를 누려야 하는 게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들도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경험해야 함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그 환난 중에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말씀이 큰 나팔소리로 7배로 증폭되어 새겨지길 축원합니다. 오늘이 주의 날입니다. 이 주의 날에, 부활하신 날, 예배하는 날, 성도들이 교제하는 날에 성령의 감동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환난 중에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지옥과 같은 밧모 섬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은경이의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라는 음성은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에 해당하는 소리였지만 그것이 바로 환난 중에서 주님을 찾는 소리라고 본 것이지요. 그 중심으로 병상에 앉아 기도하는 마음이 은경이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한다는 사실이지요.

지금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환난 가운데 주를 찾는 믿음은 마침내 큰 나팔 소리 같은 음성으로 나타나며, 더욱 더 증폭된 은혜로서 일곱 교회, 온 교회로 증거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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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학 목사는 백석신학교와 백석신학연구원을 졸업하고 안산 성경제일교회를 개척하여 23년째 섬기고 있다. 목회 10년차에 안산전도학교를 설립하였고 미자립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안산시 복음화에 힘썼다. 목회 15년차, 교회 분열의 시련기를 거치면서 "암 발병과 함께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기도하던 중,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운동의 폐단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성경강해설교학(MA) 과정을 거쳐 현재 일반대학원 신약신학(Th.M)을 전공하며 후반기 목회의 사역에 기쁨으로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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