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6)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6)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4.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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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고발하는 욥의 주장을 확인해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3) 하나님은 나를 핍박하시는 분

욥도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닥친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입장도 동일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런 벌을 받을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답하고 울분이 쌓여 있는데 엘리바스가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나 있는 듯 죄를 회개하라고 했다. 때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욥 6:8).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도 않으시고 응답하지도 않으신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묻어 있다. 이어지는 욥의 말을 들어보면 단순한 불만의 표출정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자신을 공격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뻐하시는 잔혹한 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끓어 버리실 것이라”(욥 6:9).

욥기 3장에서 우회적으로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원망하던 욥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 욥은 분명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나를 멸하시기를”과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는 말이다.

욥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잘 따르는 인간을 공격하시며 즐기시는 나쁜 분이시다. 이는 분명 다름 아닌 욥의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핍박하신다는 욥의 주장은 너무 힘든 나머지 충동적으로 내뱉은 일시적인 탄식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낱낱이 살펴보면 분량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핍박하신다는 욥의 주장이 분명히 드러나는 구절 중 몇 개만 살펴보겠다. 다음은 그 중 하나이다.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욥 13:20~21).

욥은 하나님께 두 가지 일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첫 번째는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손으로 자신을 때리지 말아 달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힘으로 자신에게 공포를 주지 말아달라는 의미이다.

이 둘은 같은 의미이다. 현재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폭력이자 강압적인 공포라는 것이다. 결국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억압하신다고 하나님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욥의 친구들 중 빌닷도 욥의 고난에 대해 엘리바스와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도 욥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자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하면서 자신을 정죄하던 말던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고 체념한 듯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분명히 한다.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욥 19:6).

욥은 하나님께서 아무 잘못 없는 자신을 환란 가운데 두신 현실이 너무 억울했다. 자신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나 사냥감처럼 꼼짝없이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욥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을 한 구절 더 살펴보자.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욥 19:21~22).

욥의 입장은 분명하다. 자신은 누명을 쓰고 하나님에 의해 고통 받고 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자신을 심판하시는 불의한 분이시다. 이처럼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하나님께서 옳지 않다고 고발한다.

욥은 세 친구들과 논쟁을 마무리하는 최후 변론에서도 하나님의 잘못을 지적한다. 자신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잘못을 덮어씌운다고 주장했다. 그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욥의 정당함을 외면하셨고 그의 영혼까지도 괴롭히는 분이시다. 정말 그러한지 확인해보자.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욥 27:2).

욥기 1~2장에서 볼 수 없었던 욥의 고백들이 충격적이다. 힘든 상황으로 인해 신음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당함을 무시하시고 자신을 벌주시는 나쁜 분이시다.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인 고통을 넘어 자신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시는 잔혹한 분이시다. 욥의 주장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다음은 하나님을 고소하는 욥의 최후 변론 중 일부이다. 욥이 이해하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비유적 서술이다. 그의 생각을 또렷이 알 수 있는 말을 들어보자.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22 나를 바람 위에 들려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욥 30:19~23)

하나님께서 욥을 땅바닥에 팽개치셨다. 욥은 비참하게 흙무더기에 뒹굴려져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욥은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향하여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하나님을 불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을 외면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으신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력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짓이기셨다. 그리고는 공중에 던져버리셨다.

욥은 압도적인 힘에 휘둘리며 자신을 죽이려하시는 하나님의 진심을 느낀다. 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욥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처럼 나쁜 분이 없을 정도이다. 이상으로 죄 없는 자신을 핍박하시는 하나님을 고발하는 욥의 주장을 확인하였다.

 

[본문연구]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욥 6:3)의 의미

욥이 3장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자 엘리바스가 욥에게 회개하라고 했다. 그러자 욥은 그에 대한 답변으로 6~7장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시작인 욥기 6:2~3을 보면 욥이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인정하며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라고 말하였다. 2~3절을 확인해보자.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욥 6:2~3).

욥은 자신이 받는 고통과 재앙을 측정한다면 그 분량이 아주 크다는 의미로 위와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어 자신이 조심성 없이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이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이다. 이는 자신의 고난을 받아들이며 이전에 3장에서 했던 말을 반성하는 태도로 비춰진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6~7장 전체의 입장과 충돌한다. 과연 욥의 진심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모순은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라는 번역의 오해로 인해 발생했다. 이 부분의 원문은 ‘דברי לעו’인데 이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말들을 그들이 삼켰다’(욥 6:3b, 사역).

‘나의 말들을 그들이 삼켰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들’은 누구를 가리키며 ‘말들을 삼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상당히 애매하다. ‘삼켰다’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삼켰다’는 말을 조심성 없이 가볍다는 뜻인 ‘경솔하다’로 번역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욥은 ‘나의 말들을 그들이 삼켰다’라는 말을 다음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나의 말들’은 무죄를 주장하는 욥의 말들이다. ‘그들’은 욥에게 닥친 재앙들이다. ‘삼켰다’는 자신에게 닥친 재앙들이 자신의 무죄 주장을 덮어버렸다는 표현이다.

욥은 자신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의 재앙이 유죄를 증거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신에게 닥친 재앙으로 인한 증거가 분명하여 자신의 결백이 묻혀버렸다는 의미로 6:2~3을 말한 것이다.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는 욥이 하나님을 원망한 말들을 후회하여 철회하는 표현이 아니고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표출한 말이다. 따라서 욥도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 보응의 신학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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