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8)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8)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4.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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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친구인 빌닷의 입장을 들어보겠습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2) 빌닷이 이해하고 있는 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욥 8:2).

빌닷은 욥이 거칠게 하나님께 도전하는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욥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욥의 자녀들이 죽은 이유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빌닷의 말이다.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욥 8:4).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욥의 자녀들은 각자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빌닷도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보응의 법칙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생각했다. 욥의 자녀들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고 욥은 죽음에 이를 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빌닷은 욥에게 죄에서 돌이키라고 그렇게 한다면 의롭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욥 8:6).

여기에서 “청결”은 단순히 위생의 개념으로 한 말이 아니다. 부정함이 없는 무흠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상태인 “정직”을 언급하였다. 욥이 바르게 행해 의롭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욥의 처지를 회복해주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통해 빌닷이 의를 도덕률의 완성 즉 율법적인 성취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청결하고 정직하면” 즉 행위의 결과로 인간이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빌닷은 자기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자신이 한 말이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고 출처를 밝힌다.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욥 8:8).

이와 같은 말을 통해 우리는 빌닷이 말한 의에 대한 개념이 전통적인 입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욥의 세 친구인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당시의 지혜자들이다. 그들이 하는 주장은 그들만의 독특한 신학이 아니다.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수 받았다. 그들의 주장이 당시 신학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은 의에 대해 보편적으로 <도덕적 충족으로써의 의>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으신 분

빌닷의 말을 듣고 욥은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기위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해야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분이시라고 폄하한다. 이어지는 욥의 고소를 들어보자.

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욥 9:15~20)

욥은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심판할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권자이시니 마음대로 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자신을 심판하시는 막무가내인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욥은 이런 억울한 상황이기에 자신이 의롭다고 하더라도 죄가 있다고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다고 넋두리한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는 흡사 악한 재판관이 가혹한 심문으로 거짓으로 죄를 실토하게 만드는 경우와 유사하다. 결국 욥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더욱 비방한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과 온전한 사람을 함께 멸망시키시는 공정하지 못한 분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무죄한 사람의 절망을 보고 비웃으시는 잔인한 분이라고 말한다. 욥은 세상이 악하게 된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던 욥의 믿기지 않는 발언을 확인해보자.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욥 9:21~24)

또한 욥은 자신이 스스로 깨끗하게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더럽히실 것이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의 근원자, 죄를 만드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모함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없는 죄를 덧씌워 심판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자신 중 누가 옳은지 재판을 해보고 싶지만 상대가 하나님이시기에 재판을 할 수가 없다고 체념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권력으로 위협하신다는 의미이다. 욥은 재판을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보다 자신이 옳다고 판결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렵게 하지 않으신다면 자신이 당당하게 말하겠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욥의 말을 들어보자.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욥 9:30~35)

욥은 자신의 결백을 확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마음대로 대하시는 공의롭지 못한 분이시다. 설사 인간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재판을 해보고 싶어도 자신이 주권자라는 특권으로 자리를 피하셔서 시시비비를 가려볼 여지조차 없다. 욥은 하나님을 안하무인하게 폭정을 일삼는 절대군주로 치부해버렸다. 욥의 주장은 이미 고난으로 인해 고충을 호소하는 탄식의 범주를 넘어섰다.

오늘은 두 번째 친구인 빌닷의 주장과 그 말을 들은 욥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세 번째 친구인 소발의 주장을 들어보고 욥이 자신의 구원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을 확인하려 한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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