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0)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0)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5.0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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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과 친구들이 주장한 존재적 숙명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4. 인간은 원래 의로울 수 없어

(1) 엘리바스가 이해하고 있는 의

엘리바스는 4:12~16에 자신이 경험한 환상을 소개한다.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얻은 지식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게 강조한 내용은 의에 관한 것이다. 엘리바스는 인간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욥 4:17).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높으심에 대해 상대적으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로울 수 없다는 존재적 숙명론을 편다. <존재적 숙명론>이라는 말은 인간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의롭지 못하다는 개념에 붙여본 용어이다.

이후 엘리바스는 두 번째 대답에서도 유사한 말을 한다.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욥 15:14~16)

이 구절은 엘리바스의 두 번째 대답 중에 있는 의에 대한 부분이다. 엘리바스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결코 의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피조세계가 부정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서 범죄를 반복하는 인간은 당연히 의롭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엘리바스는 더나아가 인간의 의가 하나님께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세 번째 대답에서도 유사한 의의 개념을 확인해보자.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욥 22:3).

엘리바스는 욥이 범죄했기 때문에 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위 구절은 설사 욥이 의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유익한 점이 없다는 말이다. 엘리바스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가 하찮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엘리바스는 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인간이 지닌 의는 하나님의 의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궁극적인 도덕률을 지닌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아무리 옳게 행한다고 하여도 그 가치가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2) 인간은 의로울 수 없는 존재

두 번째 친구인 빌닷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감히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는 존재적 숙명론을 편다. 빌닷의 말을 들어보자.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욥 25:4).

25장은 빌닷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는 하나님의 높으심과 인간의 비천함을 비교하며 감히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의로울 수 없음을 주장했다. 욥이 자기 의를 끝까지 주장하자 그 주장을 꺾기 위해 욥뿐만 아니라 여자에게서 출생한 자 즉 모든 인간은 의로울 수 없다고 변론한 것이다.

엘리바스와 빌닷만 인간이 숙명적으로 의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욥도 그렇게 생각했다. 엘리바스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욥 4:17a)라고 하자 욥은 나도 그쯤은 알고 있다는 듯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고 존재적 숙명론을 인정한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이처럼 욥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이 없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니 의문이 하나 생긴다. 욥은 하나님보다 자신이 의롭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자기 모순적인 말을 하다니 이상하다. 그 점은 이어지는 문맥인 9장 전체를 보면 욥이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알 수 있다. 9장 전체를 읽어보기에 분량이 많으니 여기에서는 욥의 의도가 묻어나는 5~7절을 확인해 보겠다.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욥 9:5~7).

욥은 하나님께서 산을 무너뜨려 다른 곳에 새롭게 세우시더라도 산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태양과 별들인 천체 조차도 하나님의 힘에 꼼짝할 수 없단다. 이처럼 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그 권위 아래에서 인간이 의로울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9: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욥 9:12).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서 무엇이든지 빼앗아버리시면 감히 누구도 왜그러시냐고 반문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 욥은 인간의 자기 부정, 즉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절대군주로써 군림하시니 인간 따위는 아무 권한도 자유도 없다는 한탄이다. 이처럼 욥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계시니 그 앞에서 인간이 어찌 의로울 수 있느냐는 입장이다.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의로울 수 없다는 이들의 입장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앞에서 살펴본 엘리바스와 빌닷의 말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떻게 의로울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 이후에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여자에게서 난 자’는 모든 인류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다.

인간은 첫 사람의 불순종 이후 타락하여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원죄라고 불리는 죄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러한 원죄라는 표현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더라도 인간은 경험으로 보아 죄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욥과 친구들의 존재적 숙명론은 일견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신앙의 태도로 비춰진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인간이 스스로의 죄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의를 상실했다는 의미와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욥과 엘리바스와 빌닷이 하나님을 절대적인 의를 지닌 분으로 높여 생각한 점은 공감한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의를 요구하실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부정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이시다. 자신이 지존자라고해서 무조건 인간을 불의하다고 평가내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피조물이기에 무조건 심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시기에 절대적인 의를 가지고 계시고 반면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결코 의로울 수 없다고 하였다. 의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실 수 없는 관념적인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의를 요구하셨다.

그런데 역사상 그 의를 충족한 존재가 등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고 불순종했을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를 통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루셨다.

욥과 친구들은 인간적인 직관이나 경험적 추론에 의해 ‘여자의 후손’ 즉 ‘여자에게서 난 자’는 의로울 수 없다고 단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절대적 의를 주장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의롭거나 의롭지 않거나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의롭지 못하다는 그들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오늘은 욥과 친구들이 주장한 <존재적 숙명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엘리바스의 최후통첩과 그에 대한 욥의 최후변론을 살펴보려 한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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