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2)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2)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5.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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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의롭다고 제시한 근거를 통해 욥이 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3) 욥이 이해하고 있는 의

욥은 최후변론에서 자신의 행실을 의로운 근거로 일일이 제시한다. 욥이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는 구절을 확인해보자.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במאזני־צדק)에 달아 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욥 31:6).

이 구절은 욥 자신이 공정한 거래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울로 측량할 대상은 욥 자신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평한 저울에 달아 보신다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번역된 “공평한 저울”은 히브리어 ‘במאזני־צדק(브모즈네-쩨데크)’로써 직역하면 ‘의의 저울’이다. 그러므로 위의 말은 하나님께서 의를 측량할 수 있는 저울에 자신을 달아보신다면 자신이 의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분이시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욥의 진술은 욥기 31장으로 마친다. 욥은 마지막 발언인 31장에서 욥은 “만일 내가”와 “내가 언제”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하며 자신이 행한 일을 열거한다. 의의 저울로 자신을 달아보라고 말했음으로 이후 욥이 하는 말은 자신이 의로운 근거임을 알 수 있다. 31장의 분량이 적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항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려한다. 욥이 자신이 의로운 근거를 어떻게 제시했는지 확인해보자.

첫째, 나는 음행하지 않았다.

욥은 자신이 이웃의 아내에게 음욕을 품었다면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람과 정분을 통하여도 괜찮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런 죄는 법적인 조치를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함으로 만약 자신이 범죄 하였다면 모든 생산물을 잃어도 좋다고 한다. 이는 욥이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출 20:17)는 계명을 도덕률로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욥 31:9~12).

둘째, 나는 인권을 존중했다.

욥은 자신이 종들을 부당하게 압제했다면 하나님께 면목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주인인 자신과 종들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의 지으심을 입었다고 했는데 이는 욥이 주종의 관계를 넘어 인간평등사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한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였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욥 31:13~15).

셋째, 나는 약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욥은 자신이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대하였음을 밝힌다. 이는 욥이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 14:29b)라는 계명을 따라 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욥은 의복이나 이불이 없는 헐벗은 자들을 도왔고 자신의 양털로 헐벗은 자들을 입혔다. 또한 송사를 부당하게 하여 약자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에서 자신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실 것이기에 그것이 두려워서 바르게 살았다고 고백한다.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욥 31:16~23).

넷째, 나는 재물이나 우상에 의지하지 않았다.

욥은 세속적으로 재산을 모으고 집착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신은 재물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욥은 자신이 태양이나 달을 숭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월성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는 법에 저촉 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중죄이다(신 17:3~5).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 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욥 31:24~28).

다섯째, 아무도 나를 고소하지 않는다.

욥은 자신이 죄악을 숨긴 적이 없기에 떳떳하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큰 무리나 여러 종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가 고소나 고발을 했을 것인데 접수된 고소장이나 고발장이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만약 자신에게 온 고소장이 있다면 그것을 머리에 쓰고 다니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욥 31:35~36).

여섯째, 나는 공정한 거래를 했다.

욥은 자신이 토지도 잘 관리했다고 한다. 이는 칠 년째 안식년으로 땅을 쉬게 하는 율법을 지킨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레 25:4). 39절에 “소유주”로 번역된 히브리어 ‘בעל(바알)’은 ‘주인’ 또는 ‘남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이 구절에서는 욥의 토지에서 경작하는 소작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39절은 욥이 소작인들에게 품삯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40절은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농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자기 저주이다. 자기 행동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38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בעל)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 31:38~40)

다소 길지만 욥의 최후변론인 31장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욥은 6절에서 자신을 ‘의의 저울’로 달아보고 의롭다는 사실을 확인하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말했다. 결국 욥은 의로움을 자신이 행한 일들로 증명한 것이다. 욥은 의를 율법적인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의에 대해 <도덕적 충족으로써의 의>의 개념에 머무르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욥을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요점정리

세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1~2장에서 알 수 없었던 욥의 본심이 드러났다. 그는 율법의 성취 여부에 따른 보응의 원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런 불의도 없는 자신에게 심판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 의가 어그러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불의하게 통치하신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사회적 도덕률, 율법의 덕목, 스스로의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 의인이라고 믿었다. 욥은 보응의 기준인 선과 악의 기준을 본인 스스로의 정의에 의지하고 있다. 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은 첫 사람과 같은 맥락을 따른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이름이 그 과실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원래 선과 악에 대한 지식 즉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실을 먹었다는 말은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바로 선악의 기준, 선악의 결정권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가지겠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는 욥의 본심이 고난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다.

이번 회까지 욥과 세 친구들이 나눈 주장의 핵심을 모두 확인하였다. 욥과 세 친구들은 서로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마쳤다. 그런데 여기에서 욥기의 새로운 막이 열리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엘리후이다. 다음 시간부터는 엘리후의 주장을 확인하려 한다.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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