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작가] #37. 내가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김재식 작가] #37. 내가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6.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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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불행속 그때 그 말씀들 12

아내가 깨우는 소리에 시계를 보니 오전 350. 급히 가림막을 치고 잠이 덜 깬 채로 소변을 받아내는데, 이상하게 바닥이 축축해옵니다. 아뿔싸! 소변 통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호스 끝이 빠져나와있었습니다. 그러니 소변이 그대로 매트리스 위를 철벅하게 적시고 있었습니다.

 

'아악!' 머리를 쥐어뜯어보지만... 끙끙거리며 어둑한 조명아래에서 침대보를 갈고,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물수건으로 닦고,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나니 5시가 넘고 있었습니다. 옆 침대 분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자지 못하고 기다리다 세수시키고 아침밥 먹이고, 체중 재고 채혈하고,,, ‘, 한 시간만 더 자고 싶다.’ 소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영화 '소중한 사람' 포스터. 가족을 어디까지 돌볼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남기던 영화
영화 '소중한 사람' 포스터. 가족을 어디까지 돌볼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남기던 영화

 

기억의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줄 '소중한 사람'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라고 묻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치매로 망가져 가는 시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길을 가는 며느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02년 영화 '소중한 사람'의 포스터 문구였습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 우리는 이런 경험을 다들 합니다.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한 방법 찾기! 도서관 뒤지기! 이웃에게 물어보기! 도모에와 그녀의 가족 역시 이와 같은 방법들을 강구하느라 하루하루가 벅찼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를 시설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까지 도달합니다. 치매가족 대부분의 사람들이 밟아가는 순서처럼.

 

그 과정의 험난하고 고단함, 슬픈 갈등을 어찌 말로 할까요. 병의 종류를 불문하고 병든 가족을 돌보는 일이란 다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며느리 도모에는 그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갑니다. 그녀가 책으로 펴낸 간병일기를 보고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고 십년이 넘도록 계속 상영 중입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이 땅에 아픈 사람과 돌보는 가족이 끝이 나지 않는 한 계속 볼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계속되는 또 다른 실화일 것이고.

 

'나의 끝은 어디일까? 끝까지 아내와 같이 가기는 할 수 있을까?'

 

기어이 아내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미안한 아내는 공연히 다른 트집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는 그런 아내를 왜 날카롭냐고, 그러면 내가 모를 줄 아느냐고 따지다 숟가락을 놓고 복도로 나가버렸습니다. 어쩌면 예고된 충돌입니다. 밤새 잠 못 자고 예민해진 두 사람이 마주보는 기차처럼 달렸으니. 그런데 마음이 자꾸 편치 않습니다.

 

꼬리를 물고 한 생각이 따라붙습니다. '나는 속상하면 이렇게 휙 나가서 풀고 올 수 있지만 거동도 못하는 아내는?...' 그 생각에 병실로 돌아오니 다른 환자를 보는 간병사가 아내를 달래고 있고 아내는 울고 있습니다. 우는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어깨를 감싸는데 나도 모르게 오열이 터집니다. "미안하다. 내 생각만하고 나갔다와서..."

 

암센터 병원 뒷산에서 내려오며 찍은 모습 저 건물의 9층 어느 창문 안에 아내가 누워 있었습니다. 나올 때는 숨이 막혀 갑갑하다가 살아날 것처럼 벗어나지만, 막상 나와 있다 보면 무슨 일은 없을까? 어디 또 아프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예정보다 늘 일찍 들어가던 병동입니다.
암센터 병원 뒷산에서 내려오며 찍은 모습 저 건물의 9층 어느 창문 안에 아내가 누워 있었습니다. 나올 때는 숨이 막혀 갑갑하다가 살아날 것처럼 벗어나지만, 막상 나와 있다 보면 무슨 일은 없을까? 어디 또 아프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예정보다 늘 일찍 들어가던 병동입니다.

 

 

그런 중에 휴일이 왔습니다. 우리 가정도 예전에는 이 날이 참 행복했습니다. 온 가족이 늦잠도 자고 가끔은 장도 보면서 외식도 하는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모처럼 잠시 주사들을 떼어내고, 3층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난 뒤 아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울음을 누가 볼까봐 구석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자꾸만 대상없는 분노가 몰려왔습니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하나? 혼자 속으로 이런 저런 저울질을 해대는데 저만치서 어떤 사복 입은 분이 우리에게로 곧장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담당 의사선생님이었습니다. 아마도 지나다 구석진 자리에서 울고 있는 우리 부부가 눈에 보여 다가오셨나 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쉬시는 날인데 어떻게..." 엉겁결에 인사를 하면서 황급히 눈물을 닦고 말없이 있는데 이런 저런 증상을 물어보십니다. 묻는 분이나 대답하는 우리나 의례적인 빤한 대답을 하고 다시 침묵, 그러다 결국은 털어놓았습니다. "솔직히 많이 힘들어서 좀 울었네요. 창피하게..." "괜찮아요.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치료과정을 버티면, 분명히 좋은 회복의 날이 올 겁니다. 힘내세요."

 

예전 병원생활에서 나는 불편한 경험을 하면서 의사선생님들은 직업적 관계이지 가족 같은 대상은 아니라고 단정했습니다. 두 시간을 대기실에서 힘들게 앉았다가 5분 만에 진료실에 서 쫓겨나듯 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더더욱 그랬습니다오늘은 그 불신을 균형 잡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그만 버틸까?' 고민하는 자리로 다가 와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복 입은 천사', 그 사복 입은 천사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세상을 향한 원망과 오해를 조금 덜어주려고 왔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성경을 읽고도 무심하던 나를 깨우려는 하나님의 보냄인지도 모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이사야서 4915]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겠다. - 요한복음 1418]

 

부활 후 제자들을 떠나시며 예수님이 다시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시기 전까지 돕는 이, 성령을 보낸다고도 했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심령을 돕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신 걸까요? 아님 너무도 연약해진 내 상태가 위태로워서일까요? 기어이 때를 맞추어 구체적으로 주변에 있고 실질적으로 힘이 될 사람을 보내신 것은. 기적은 평안하고 넉넉할 때는 일어날 필요가 없는 법입니다. 그만큼 몰리고 흔들리며 위태로운 순간들이었습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기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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