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31)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31)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7.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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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닌 의의 한계에 대해 엘리후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4. 엘리후의 세 번째 설명 : 도덕적 충족으로써의 의의 한계

(1) 욥이 가진 의의 가치

엘리후의 세 번째 이야기는 욥이 주장한 의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 그 관점은 욥의 의가 하나님께 어떤 가치가 있는지이다. 그는 먼저 욥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욥 35:2).

욥이 주장한 의는 도덕률을 추구한 결과이다. 그러나 엘리후는 첫 번째 설명에서 그 의로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대속물에 의한 의가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 대속물에 의한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다. 이처럼 위 구절은 욥이 주장한 의는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의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전에 욥은 의로운 일을 한들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는 투로 한탄했다.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욥 9:22~23).

엘리후는 그러한 주장을 지적한다.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 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욥 35:3).

사람들은 악인이 흥하고 의인이 궁핍에 처한다고 세상의 부조리를 지목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분이시라면 어찌 악인들이 흥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보응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다면 굳이 죄를 짓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불의한 방법을 통해 이익을 추구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의롭게 살기 위해 굳이 힘들게 노력할 필요도 없다. 이는 욥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인간이 범죄 한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있으며 의로운들 무슨 이익이 있는가?

“그대가 범죄 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6~7).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의롭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시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인간이 의롭게 산다고 해서 보상을 하셔야할 만큼 하나님께 무슨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반대로 인간이 악행을 저지른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저지해야할 필요도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범죄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인간의 악이나 의는 인간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뿐이다.

물론 공의로운 재판관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구현하신다. 그 내용은 엘리후가 두 번째 변론으로 말했다. 여기 세 번째 변론에서는 당연한 권리인 듯 인간이 하나님께 의에 대한 보상이나 악에 대한 처벌을 강요할 입장이 아니라는 측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צדקה)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욥 35:8).

위의 “공의”는 히브리어 ‘צדקה(쩨다카)’를 번역하였다. 즉 의를 가리킨다. 엘리후는 ‘그대의 의’라고 하여 욥이 여태껏 스스로 주장한 의를 지목하였다. 그 의는 욥에게만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의이다.

엘리후는 바로 전 구절인 욥기 35:6~7에서 욥의 범죄나 의로운 행동이 하나님께 어떤 피해나 유익도 줄 수 없음을 상기시켰다. 이는 욥의 의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받으셔야만할 당위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이 스스로 추구한 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인간 스스로의 의로는 하나님의 기준을 충족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 구절을 통해 엘리후는 욥이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이 서로 간에 악을 행하더라도 하나님께 피해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전혀 착각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런데 누군가 하나님의 소유인 어떤 이에게 헤코지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권리가 있으시다.

여기에서 말하는 엘리후 주장의 초점은 인간의 의나 불의에 대해 하나님께서 의무적으로 나서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의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2) 악한 권세자의 심판이 늦어지는 이유 :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

엘리후는 두 번째 설명에서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 설명할 때 악한 권세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주제가 세 번째 설명에서도 이어진다. 이제는 악한 권세자들이 즉각적으로 심판 받지 않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악한 권세자들의 폭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바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당연한 듯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 꼭 그러셔야할 의무는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욥 35:10~11).

참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부르짖음은 헛된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허망한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고 그러한 자들을 보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통치자가 사람들을 억압함에도 심판이 늦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의지해야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 35:12~13).

엘리후는 두 번째 설명에서 하나님께서 보응을 집행하시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악한 권세자들이 백성들을 핍박하기에 그들을 구하시기 위해 악한 권세자들을 심판하신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즉각적으로 심판 받지 않는 악한 권세자들도 있다. 그들이 심판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후는 그에 대해서 악한 권세자에 의해 곤궁에 처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 허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

엘리후의 이 주장에 예외가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 약간의 보충설명을 하겠다. 지금 엘리후가 하고 있는 설명은 하나님의 보응에 대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이후 엘리후는 네 번째 설명에서 보응을 포함한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린다. 엘리후에 의하면 보응은 목표가 아니라 그 결과를 넘어서는 목적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때문에 이 부분을 하나님 섭리의 한 측면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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