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제안2] 공동체적 돌봄 구조
[변화를 위한 제안2] 공동체적 돌봄 구조
  • 전택보 목사
  • 승인 2019.08.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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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교회 구탁서 목사
ⓒ행복한교회 구탁서 목사

교회가 건물이 아닌 성도의 모임이기에 교회는 공동체적이다. 교회가 공동체적이라는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10:24).  교회에 속한 공동체원들은 주님을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이며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하거나 천하다고 말할 수 없는 각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몸 가운데 여러 지체를 주신 것은 서로 같이 돌보게 하기 위함이다(고전 12:25).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의 몸 된 지체들의 공동체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은 교회로부터 월급을 받는 직원들의 그룹으로부터 돌봄을 받는 소비자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교회는 사역하는 자들과 돌봄을 받는 소비자로 구성된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공동체적 돌봄 구조를 가지고 서로 돌아보는 지체들의 모임이다혹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신자유주의의 시대라고 부른다신자유주의를 정의하는 다양한 표현들과 각각의 강조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고객또는 소비자라는 것에 동의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하게 자신이 소비자임을 학습한다.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의 정당함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소비자로 군림한다. 그 공간에서 소비자는 왕이기에 누군가는 그 왕을 대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왕을 대접하던 사람은 또 다른 공간에서 왕으로 군림하며 누군가의 대접을 받는다.

우리는 어디서나 소비자로 군림하며 누군가로부터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전제다. 소비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면 그곳은 공동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공동체성이 상실된 교회는 직원과 손님으로 나누어진 두 백성이 존재한다. 한 백성은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설교, 성경공부, 심방(전화), 행정, 청소, 관리 등을 맡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이들의 전문성과 헌신에 의한 것이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백성은 모든 부분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사랑의 섬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교회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자신을 대신하여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마치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듯 교회의 명성을 따라 움직이고, 질 높은 제품을 자랑하듯 교회의 프로그램을 뽐낸다. 그들은 그저 교회를 멀리서 바라보며 관망하며 교회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다.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다. 아니다, 우리 교회는 나쁜 교회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교회를 운영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을 돕는 보조자 역할이다. 그들은 목회자의 사역을 돕고, 교회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함으로 공동체를 돕는다. 교사를 돕기 위하여 선교헌금을 보내고, 불우이웃을 돕기 위하여 구제 헌금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은 주체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주체를 돕는 행위로서의 도움이다.

소비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자신이 왕으로 대접받기 위한 수단일 경우가 많다. 그들은 헌금, 봉사, 헌신, 나눔 등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어 왜 자신이 왕처럼 대접받아야 하는지 입증하고자 한다. 소비자의 숫자가 많고 소비자가 열심히 활동일 교회일수록 당파와 분쟁이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소비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비록 그가 처음에는 소비자로서의 자기인식을 가지고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과정에서 교회의 주체로서 공동체를 섬기고 지체들을 돌보는 거룩한 무리에 속하게 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온전히 소비자의 틀을 벗어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분의 주권을 인정할 때, 스스로 소비자임을 주장하던 것을 멈출 수는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지체로서 자신을 비우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권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자신이 곧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임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 교회의 연약함이나 옆에 있는 지체들의 부족은 더 이상 관망하거나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문제이며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성도를 돌보는 것은 급여를 받는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의 지체들이 상보성의 원리 속에서 성도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서로 돌아보는 공동체적 이상이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인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맞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은 원래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바른 방향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다교회의 돌봄을 한 두 사람에게 미뤄두지 않고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적 돌봄의 구조를 만드는 것은 좀 더 전문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때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역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역자들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돌아보는 공동체적 돌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은 공동체적 돌봄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을 환경과 상황에 맞게 착안하고, 가장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 보다 더 힘들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역자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마음대로 사역하기 보다는, 모든 성도가 돌봄의 사역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할 때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적 돌봄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지향하며 취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 공동의회, 재직회, 당회(혹은 장로회), 남선교회, 여선교회, 구역 등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구조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공동체적 돌봄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개혁적인 교회를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두는 교회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교회의 특성에 따라 목장이나 셀이라는 이름의 조직들이 구성되거나 가정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단지 교회의 독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변화를 통하여 공동체적 돌봄을 강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교회는 자신들의 역사, 환경, 구성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공동체적 돌봄을 이뤄나가는 방법을 구성하고 실천할 수 있다. 스스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한 지체임을 믿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공동체를 점점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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