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16] "대 주재"(계 6:9-11)
[요한계시록강해16] "대 주재"(계 6:9-11)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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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지난 월요일 부활절 연합예배 준비 조찬 기도회에 다녀왔습니다. 설교자는 한국교회가 이기적 신앙을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며 회개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교회의 면모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허물에 대하여 비판과 정죄를 일삼는 사람들은 나는 의롭고 저들은 악하다는 이분법에 빠져 있습니다. “배가 가라앉는데 내 방은 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하면서 선장을 비판하고 있는 모습과 일반이겠죠?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국교회가 순교적 신앙으로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교적 신앙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욕망에 붙들린 유아적 신앙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장성한 신앙으로 나갈 때 자기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면한 상황에서의 순교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지도 않은 순교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시대의 순교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들의 순교에 비교하면 우리의 순교는 자칫 유치하게 보일 수 있으나 당면한 상황에서 순교를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을 대할 것입니다.

 

순교자

6:9,10a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다섯째 인을 뗄 때 요한이 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요한에게 제단 아래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 주셨고,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자 죽은 자들이 나오고 그들의 기도가 나오니 이 본문을 마치 죽은 자를 위한 본문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본문입니다.

 

지상의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성도들의 상태가 굉장히 궁금했을 겁니다. 자신들이 로마의 박해 가운데 있는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잠잠하기만 한 상태에서 신앙에 대한 의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배도하는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을 통하여 보여주신 예수님과 순교했던 천상의 성도를 보았을 때 저들은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지상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들은 인을 떼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천상의 성도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있는 겁니다. ‘~ 예수님이 일하고 계시는구나! 순교자들은 주님의 품 안에 있구나!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구나!’ 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 다음에 나타나는 기도의 내용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 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그들의 기도내용은 땅에 거하는 악인들에 관한 심판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죽인 적그리스도에 대한 보복성 심판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완전 저주성 보복 아니냐구요. 마치 원한에 사무쳐 이를 가는 중천에 떠도는 원혼처럼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11절을 보겠습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천상의 제단에서 기도하는 순교자들은 흰 두루마기를 받았습니다. 흰 두루마기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옷으로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교하고 부활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옷입니다.

 

7장에는 “24 장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입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7:9, 13, 14). 이들은 원한에 사무친 자들이 아니라 부활하고 승리하여 영원한 흰 두루마기를 받은 구원의 완성, 영화로운 주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천국에 있는 겁니다. 누가의 표현대로 한다면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이요(16:23). 예수님의 품에 있는 게지요(7:59).

 

지금 천국에 거하는 자가 원한에 사무쳐 울부짖을까요? 그들은 지금 땅에 거하는 것보다 주님 품에 거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면서 한없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게지요. 그들은 자기의 원한을 보복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지요. 땅 위의 악인들, 그들을 조종하는 악한 사탄은 조속히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성도들의 고통을 감하여 달라는 것이지요.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답은 무엇입니까?

11b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응답의 말씀이 난해합니다. 잠시 동안 쉬라는 말씀을 잘못 들으면,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이 흘린 피에 대하여 보복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답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원한에 사무친 자들에게 조금 더 기다려! 너희 친구들이 너처럼 더 죽어야만 돼!”라고 들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천상의 성도들은 아직도 미완의 구원상태이고, 여전히 땅에서 고통 받던 것을 잊지 못하는 원한의 상태라고 보아야겠지요. 하지만 이들은 흰 옷을 입은 자요, 영화롭게 된 자들입니다. 저들은 오히려 그 환난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천상의 예배자입니다. 따라서 잠시 쉬라는 이 말씀은 천상의 성도들에게는 안식을 의미하는 하나님 나라의 누림입니다.

 

잠시 동안 쉬라는 말씀을 천상의 성도들을 위한 말씀으로 오해함으로 인해 영혼 수면설”, “연옥과 같은 교리들이 나왔지요. 이와 같은 교리에 대하여 깊은 연구가 없는 성도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이런 혼란한 틈에 이단 사이비가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면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장로교에서는 중간상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할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32장을 보면,

죽음 이후의 인간의 상태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하여, 사람의 몸은 죽음 이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어진다. 그러나 영혼은 불멸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시로 왔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해져서 지극히 높은 하늘로 열납 되고 그곳에서 빛과 영광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러나 악인의 영혼은 지옥으로 쫓겨나서 그곳에서 고통과 극심한 어둠 속에 갇혀서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지낸다. 성경은 육체를 떠난 영혼을 위한 장소로 이 두 곳 이외에는 인정을 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분명히 천국과 지옥 외에 중간상태는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미 성도의 구원은 죽음으로써 완성된 것이고 영화롭게 되었다고 본 것이지요. “그들의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라든지,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지낸다는 구절이 찜찜하기는 하지만,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우주적 구속의 시간에 몸의 부활로써 완성된 구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잠시 쉬라는 말씀이 중간 상태가 아님을 알겠지요? 죽임당한 성도들은 천국에서 완전한 구원을 누리고 있는 것이며, 전체적인 문맥을 살피면, 지상의 성도들에게 잠시라는 암시와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은 고난에서 끝까지 승리해야함을 말씀하는 게지요. 다시 말해서 천상의 기도자들이 지상의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지상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응답입니다.

 

이는 요한삼서 12~3절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가이오가 모진 박해 가운데서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겁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요한은 기뻐하면서 가이오에게 용기를 북돋는 말씀이 2절의 말씀인 게지요. 다시 쉽게 풀어 볼까요사랑하는 나의 자녀 가이오야! 환난 가운데 네 영혼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구나! 환난은 아직도 더 남아 있다. 그런 환난 가운데 범사에 믿음을 잘 지키고, 강건하게 환난을 이기기를 기도한다.”라고 고쳐 쓸 수 있는 게지요. 삼박자 축복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젖먹이에게 주는 해석이고 본래는 이토록 고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자기 십자가를 감당하는 장성한 성도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해함으로 우리는 다음에 나타나는 난해한 구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볼까요?

11b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지상의 성도들이 천상의 성도들처럼 순교하여 그 수가 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당해야 할 고난이 더 남아 있다는 뜻이지요. 아직 박해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상의 성도들은 천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순교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고 들었습니다. 지상의 환난이 계속될 때 저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빨리 가고 싶습니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순교적 삶을 살아 그 수를 채우려고 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순교적 상황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겪는 일들, 이것이 바로 순교적 삶입니다. 서두에 부활절 준비 조찬 기도회의 말씀을 소개해 드렸었지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이것이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부활 승리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한 것입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

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만일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이 글은 루비 레이첼 켄드릭’(Rubye Rachael Kendric) 선교사가 미국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글로, 양화진에 있는 그녀의 묘비에 새긴 것입니다. 레이첼 선교사는 25살 처녀의 몸으로 1907년 송도, 지금의 개성에서 사역하다가 1908619일에 과로로 인한 급성 맹장염으로 조선 땅에 들어온 지 9개월 만에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레이첼 선교사 역시 지금 흰 옷을 입고 제단 아래에서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 기도에 합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순교적 삶을 살아내야 할 줄 믿습니다.

 

레이첼 선교사에 비하면 우리의 순교적 삶이란 사치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당면한 상황에서 순교적 삶을 찾으시는 것이지 없는 것을 만들어 순교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제가 몸의 건강, 모친의 건강, 돈의 문제를 뒤로 하고 시에라리온에 갔던 것도 순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목사를 보내놓고 교회의 모든 예배를 인도했던 성도들, 그리고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며 교제했던 삶, 역시 순교의 삶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기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순교적 삶을 깊이 묵상해야 할 줄 믿습니다. 내 중심이 아닌 상대방을 고려하는 삶을 살고, 자기 유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찾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우리의 당면한 문제 가운데서도 진리 안에 행한다는 격려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고, 마침내 환난 가운데 부활 승리하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 죽은 자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그들의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성도는 이미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이미와 아직사이의 긴장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채워야 할 순교자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대 주재(oJ despovth")”라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는 하나님의 호칭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Sovereign Lord”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는 만물의 주권자요 통치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로마의 황제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교회를 해쳤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악한 영이 역사했습니다.

 

윗 문맥에서 흰 말을 탄 자, 붉은 말을 탄 자, 검은 말을 탄 자, 청황색 말을 탄 자가 종횡무진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우리 하나님이 데스포테스, 대 주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마침내 부활 승리의 흰 옷, “아직이 아닌 완성된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예레미야 2911절 말씀을 새기고 싶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대 주재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상황을 다 아십니다. 지금 당한 환난이, 지금 당한 난제가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되는 일이요, 그것이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는 사랑의 계획이라는 게지요.

대 주재이신 우리 하나님 앞에 로마 황제도, 루비 레이첼 켄드릭 선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도, 모든 이단 사이비, 전쟁, 기근, 사망도 심판하시고 지옥 불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생생한 그림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순절기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천상의 성도들의 큰 소리의 기도음성을 들으며, 대 주재이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승리하는 주의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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