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제자의 행복은 메시아 통치 중심적"
팔복 "제자의 행복은 메시아 통치 중심적"
  • 양용의 교수(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 승인 2019.1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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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안에서 산상설교만큼 자주 인용되고 집중적으로 연구되어온 본문은 없다. 복음서 연구에 도입된 역사적, 신학적, 문학적 관심은 해석상 큰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산상설교’ 해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 관심은 산상설교의 배경과 기원 및 발전 과정에 관해, 신학적 관심은 예수와 구약(특히 율법)과의 관계, 행위와 은혜 사이의 관계, 제자도의 성격,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 등, 문학적 관심은 보다 전통적으로 마태복음에서 산상설교의 위치와 구조, 보다 다양한 문학 비평적 질문들을 던진다.

 

무엇보다 산상설교를 읽는 독자들에게 “오늘날 산상설교에 따라 실제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하는 당장 매우 심각한 질문들에 직면하게 된다.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총장 이철) 양용의 교수는 마태복음 5장의 산상설교 가운데 ‘팔복’(5:3-10)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양용의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양용의 교수

 

▲산상설교 안에서 팔복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

마태복음은 다섯 개의 가르침 단락들(5-7장; 13장; 18장; 24-25장) 중 첫 번째 단락을 형성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맨 처음 효과적으로 제시해 준다.

많은 학자들이 주목하듯이, 산상설교인 5-7장(강론/가르침)과 8-9장(이야기/행동)의 상호 연관된 기능은 이 단락을 시작하는 4:23과 끝맺는 9:35가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하늘나라 선포 사역을 ‘가르침’과 ‘능력 행함’의 내용으로 요약하는 거의 동일한 문구의 인클루지오(inclusio, 수미쌍관법) 구조로 이루고 있다.

▲ 표는 양용의 교수가 <교회와 문화> 12호(2004)에 '팔복과 하늘 나라 그리고 제자도' - 산상설교에서 팔복의 위치와 의미-에 개제한 논문에서 발췌했다(p.16)    

마태는 이러한 삼중적 인클루지오(inclusio) 구조를 통해 팔복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늘나라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되어야 할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강조해 주고 있다. 팔복(5:3-10)은 제자도 주제와도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4:17에서 하늘나라 도래에 대한 예수의 선포와 회개할 것에 대한 예수의 초청을 소개한데 이어 마태는 예수께서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자 제자들이 곧바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를 따르는 이야기를 소개한다(4:18-22). 

여기서 ‘제자들’은 4:18-22에 언급된 네 명의 제자들로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하늘나라 복음에 반응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잠정적으로는 그들과 일체감을 갖게 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즉, 교회)을 대상으로 하는 교훈으로 볼 수 있다.

 

▲팔복(5:3-10)의 진정한 ‘복’의 개념은?

적지 않은 학자들이 다양한 이유들에 기초해 복의 개수를 일곱 개, 아홉 개, 혹은 열 개로 규정한다. 하지만, 5:3-10의 여덟 개의 복은 3인칭, 5:11-12의 복은 2인칭으로 되어 있다. 또한 첫째 복(5:3)과 여덟째 복(5:10)이 인클루지오를 형성하면서, 5:11-12의 복과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5:11-12는 ‘아홉 번째 복’이라기보다 ‘적용적 복’ 또는 ‘종결적 복’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팔복에서 반복해서 사용되는 정형화된 구조의 핵심 단어인 'μακάριος'(makarios)(행복한, 복된)는 구약 LXX에서 자주 발견된다(예, 시 1:1; 2:12; 31[32]:1-2; 39:5[40:4]; 105[106]:3; 118[119]:1-2; 127[128):1; 사 30:18; 32:20). ‘makavrios’는 LXX의 대개 히브리어의‘아쉬레’를 번역한 것으로 이 단어는 ‘대단히 행복한’ 또는 ‘지극히 운이 좋은’ 등의 의미이다.

이 행복은 세상적인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늘나라)를 누릴 수 있는 자들만 경험할 수 있는 행복으로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구원이 성취된 것을 깨닫고, 그 구원을 누리기 시작하는 자들이 경험하는 심오한 내적 기쁨을 의미한다. 현재 뿐 아니라  'ὅτι'(왜냐하면~ 때문이다) 귀결절들은 하늘나라가 완성될 때 보장될 보상을 선언하고 있다.

 

▲첫째 복, 심령으로 가난한 자들’(5:3)은 어떤 사람들인가?

‘심령으로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소유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그 모든 소유를 버린 자들(4:20-22)로 가난을 통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음을 표현한 자들(참조. 7:24)이다. 그 결과 이사야 61:1-2가 약속한 메시아적 통치를 누릴 대상이 된다.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부자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 나라/영생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19:21-24).

 

▲둘째 복, 애통하는 자들(5:4)은?

‘애통하는 자들’의 ‘애통’은 의로운 자들은 고통을 당하는데, 악한 자들은 번영하는 상황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사야 61장이 약속했던 메시아적 통치가 예수의 사역을 통해 이미 성취됐기 때문에(4:17, 23) 지금 ‘행복한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21:4에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와 고통과 죽음을 제거하시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겨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세상에서 모든 위로를 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셋째 복, ‘온유한 자들’(5:5)은?

‘온유한 자들’의 ‘온유함’은 부드럽고 수동적인 태도라기보다는 억압과 착취로 인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낮은 상태를 지칭한다(시 37:14; 사 61:1-2). 겸손히 하나님을 의존하기 때문(시 37:9)에 하나님의 통치가 그들 가운데 있어 그로 인해 기뻐한다(참조. 18:3-4).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 될 때, 그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19:28; 사 65-66장; 계 21-22장).

 

▲넷째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5:6)은?

마태가 제자들의 열망의 대상으로 제시한 ‘의’는 종말론적, 구원론적, 윤리적인 의로 예수의 메시아적 통치에 의해 선물로 주어진, 제자와 하나님 사이의 새로운 인격적 관계에 의거해 나타나게 되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의미한다. 약속된 미래적 보상은 배부름이다(눅 1:53; 참조. 사 49:10; 55:1-2; 65:21-22). 제한적이지만 예수의 사역 기간 중에 제자들에 의해 이미 경험됐다(참조 14:15-21; 15:32-38).

 

▲다섯째 복, ‘자비로운 자들’(5:7)?

예수는 ‘자비’가 원수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져야 할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5:43-48; 참조. 눅 10:29-37). 그들의 자비로운 행동은 마지막 심판 때에도 하나님의 결정적이고도 영원한 자비를 입게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참조. 딤후 1:18; 약 2:13; 유 21; 잠 17:5). 궁극적인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해 준다.

 

▲여섯째 복, ‘마음이 청결한 자들’(5:8)?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진실함과 나누이지 않은 충성심을 뜻한다. 이들은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누림으로 행복할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 21:3; 22:4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며, 그분의 얼굴을 보는 최고의 특권을 영원히 누리게 된다(참조. 요일 3:2).

 

▲일곱째 복, ‘평화를 이루는 자들’(5:9)?

5:38-42의 보복에 관한 교훈과 5:43-48의 원수 사랑에 관한 교훈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제자는 오른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도 돌려 대어 주어야 하고, 고소하여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제자들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손해를 보게 될지라도 행복하다. 그 손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음에 대한 현재적 증거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화를 이루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는 특권이 주어진다.

 

▲여덟째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5:10, 11-12)?

마지막 복에서 제자도의 역설적 성격은 절정에 도달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제자들은 그들의 삶의 원칙과 목표 그리고 행복의 기준이 세상의 그것들과 현저히 구분되기 때문에, 자연히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5:13-16). 이처럼 구별된 제자들의 모습은 세상에 불편함을 주게 되고, 따라서 세상은 그들을 박해하게 되는 것이다(5:11-12).

 

▲세상의 행복과 거리가 먼 자질과 상황이 왜 행복의 조건이 되는가?

제자의 행복은 철저하게 메시아의 통치 중심적이다. 제자는 자신의 중심과 상황이 세상적 기준에 비추어 아무리 보잘 것 없고(심령의 가난, 온유, 의에 굶주리고 목 마름, 마음의 청결), 손해 보는 것(자비로움, 평화를 이룸), 심지어 비참해 보이는 것(애통, 박해)이라할지라도 그것이 메시아의 통치를 위한 것이고 또한 메시아 통치의 결과라면, 그 자체로 행복한 자인 것이다.

결국 여덟 개의 복 모두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사실을 다양한 측에서 표현한다. 제자도는 결코 이론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너희’ 곧 ‘제자들’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다. 제자들은 현실적 고난의 문제 앞에서도 행복한 자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음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현 상황을 반전시키는 놀라운 보상들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5:12).

 

한편 양용의 교수는 총신대학교에서 B.A.를 졸업하고, 영국 London Bible College에서 신학(B.A. Honours)과 성경해석학(M.A)을 공부했고, 영국 Oxford에 소재한 Wycliffe Hall에서 신약학(Ph.D)를 받았다.

개혁신학연구원과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또한 강릉에 소재한 농촌목회연구원에서 농촌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말씀 사역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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