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에 대한 단상 및 서평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에 대한 단상 및 서평
  • 박재은 박사(총신대학교 신대원, 조직신학 강사)
  • 승인 2021.07.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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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교수,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박재은 박사
▲사진 왼쪽부터 조재형 박사(KC대학교 신약학 강사)/ 조재형 교수가 쓴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단상 및 서평을 쓴 박재은 박사(총신대 신대원 조직신학 강사)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에서는 순천 책사랑아카데미와 성서유니온선교회 순천지부와 공동으로 지난 7월 7일 오전 10시 열매나눔재단 세미나실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동연, 2020.1.)의 저자 조재형 박사를 초청해 2020년 제2회 북세미나를 가졌다. 정통과 이단이라는 틀 안에서 언급되는 '영지주의'가 다뤄지는 만큼 논란을 감안해 조직신학자인 박재은 박사의 단상과 서평을 사전에 의뢰해 작성됐다. <편집자 주>

들어가며

책을 전혀 펴 보지 않은 채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라는 책 제목만 놓고 건조하게 인상 비평을 해봤다. 내 뇌리 속에는 여러 가지의 논지 전개 가능성들이 떠 올랐다. 그 가능성들은 다음과 같다.

‘아마도 이 책은 초기 기독교의 정통성과 영지주의의 이단성을 서로 극적으로 대비 시켜 초기 기독교의 신학적 건전성을 변호하는 책일 것이다(조직신학적 혹은 역사신학적 가능성). 혹은 신약 성경에 나타난 반(反)영지주의적 표현들을 성경신학적으로 비판하는 책일 것이다(성경신학적 가능성).’

하지만 책의 첫 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순간 내 건조한 인상 비평들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저런 가능성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훨씬 더 도발적이고 훨씬 더 통찰력이 있다. 이 책의 핵심 논지들은 다음과 같다. 총 6가지로 정리해보자.

 “나는 영지주의 연구가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신학연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p.49)

“나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영지주의를 ‘고대 영지사상’이라고 구분하여, 2-4세기의 영지주의와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p.48)

 “나는 … ‘모나드에 대한 신학’과 ‘영혼의 여행’이 ‘영지주의 사상의 문서를 구분하는 시금석’으로 사용한다”(p.71)

“고대 영지사상의 모나드는 신약성서와 나그 함마디 문서의 신론(神論)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신약성서와 나그 함마디 문서의 기독론과 성령론과 종말론의 문제를 다룰 때도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p.159)

 “나는 요한이 바울에게 영향을 받아 그것을 발전시킨 측면보다는 신약성서 저자들이 그 당시에 공유했던 고대 영지주의 사상을 이용해서 기독론을 기술했다고 생각한다”(p.180)

“나는 정통 그리스도교 또는 2-4세기의 영지주의 그리스도교 모두에게 중요한 교리는 이러한 고대 영지사상과의 접촉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본다”(p.221)
 

이런 논지들은 어찌보면 대단히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영지주의에 대한 신학적 단상 및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에 대한 시평을 겸해보려고 한다. 순서는 영지주의에 대한 내 개인적인 반추를 먼저 해볼 것이고, 그 다음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에 대한 서평을 성경신학적 관점, 조직신학적 관점, 역사신학적 관점, 실천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해보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 책의 논지를 엄밀히 쫓음과 동시에 책 전반에 서려 있는 신학적 유의미성을 추적해 신자와 교회의 삶에 유익하게 적용하는 물꼬를 겸비하게 터보도록 하겠다.

 

2. 영지주의에 대한 개인적인 반추

영지주의는 나에게 있어서도 신학적 주적(主敵, main enemy)들 중 하나였다. 신학교에서 기독론을 가르치면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영지주의형 기독론 이단들에 대한 분석 및 비평이었다. 영지주의는 영과 육의 극단적 이분법을 지녔으며 그런 극단적 이분법에 근거해 신론, 기독론, 구원론을 펼쳐나갔기 때문에 영지주의는 반(反)성경적 입장이며, 당연히 이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 위험한 집단이라는 전제와 토대 가운데서 늘 그렇듯 기독론을 가르쳤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설교자로서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도, 청중으로서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도 영지주의는 늘 정통에 반하는 신학적 반립 테제(anti-thesis)로 단골처럼 등장한 집단이었다. 특히 요한 서신 맥락 가운데서 영지주의는 요한 사도의 신학적 주적들 중 하나로 인식되었고,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 성경 저자들은 영지주의에 대항하며 복음을 변증하고 진술했다는 가정이 늘 그렇듯 성경 해석의 기본 전제였다.

외부 강의 형식으로 기독교 세계관 세미나를 진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영과 육을 날카롭게 가르는 극단적 이분법의 한 예로서 영지주의가 단골처럼 등장했고, 그런 극단적 이분법의 단점을 최소화시키는 신학 전통으로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 통일성 가운데 다양성을 추구하는 네덜란드 신칼빈주의 세계관을 제시하곤 했다. 

이처럼 내 신학 여정 가운데 영지주의는 늘 신학적 어두움의 그림자였으며,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반성경적인 이단이었고, 신자와 교회의 삶에 해악을 끼치는 신학적 이단아에 불과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마 이렇게 생각해왔었을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는 우리의 이런 고인 물과도 같은 생각의 지평에 한 줌의 새로운 물꼬를 터 주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본서 저자는 우리의 기존 생각을 전복시키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과감히 품는다. “나는 영지주의 연구가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신학연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p.49). 늘 영지주의를 ‘부정적’으로만 이해해왔던 나의 뇌리에 하나의 신학적 번개가 쳤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영지주의 연구의 ‘긍정적 작용’이었다.

물론 필자는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약점과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이 점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룰 것이다). 하지만 신학적 약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여전히 크다. 그것은 바로 기존에 가진 우리의 고착화된 심상 및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재고하게끔 만들어 준 측면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시각에서 영지주의를 보게끔 만들어 새로운 신학적 지평을 창출해냈다는 측면까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그러므로 아래부터는 이 책이 시사하는 바와 동시에 아쉬운 점들을 제언과 질문을 섞어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보다 더 건설적인 학문적 대화 및 신학적 고찰이 풍성해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3. 성경신학적 관점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의 주요 시사점들 중 하나는 신약 성경 본문을 그리스도교 이전의 영지 사상들과의 연속성 가운데서 재조명한 점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이런 작업을 통해 신약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시대의 맥락과 상황 가운데서 보다 더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이 든다. 

첫째,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는 지나치게 고대 영지 사상의 앵글 가운데서 신약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물론 나는 본서의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2-4세기의 영지주의와 구별되는 고대 영지 사상이 신약 성경의 배경을 이루는데 있어 one of them(다수 중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믿는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는 고대 영지 사상이 신약 성경 내용을 구축하는 주요 원인들 중 하나(one of them)로 보지 않는 듯한 발언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나는 정통 그리스도교 또는 2-4세기의 영지주의 그리스도교 모두에게 중요한 교리는 이러한 고대 영지사상과의 접촉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본다”(p.221)라고 진술한다.
심지어는 “예수를 비롯한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고대 영지사상의 긍정적인 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요한기자와 바울은 고대 영지사상의 신론과 인간론을 결합하여 성육신의 기독론을 창출했다”(p.288)라고까지 진술하고 있다. 물론 바울과 요한이 고대 영지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서의 11-14장에서 잘 논증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요한과 바울이 고대 영지 사상의 신론과 인간론을 ‘주로’ 결합하여 성육신의 기독론을 창출했을까?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4중 원인론을 차용해 다시 질문한다면, 과연 신약 성경의 기독론 형성 과정에 있어 고대 영지 사상이 소위 ‘작용인’(efficient cause)이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고대 영지 사상이 형상인(formal cause) 정도는 될 수 있었다고 보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인 작용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신약 성경의 기독론 형성 과정의 작용인은 성령의 영감이나 신적 협력(divine concurrence), 혹은 신구약의 자증성(self-attesting nature)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둘째, 본서의 저자는 2-4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이 기록한 나그 함마디 문서를 본서 주요 논지에 대한 백업 문서로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자기 분야 외 신학자들에게도 생소한 나그 함마디 문서에 대한 중요성과 유의미성을 적극 홍보하고 그 중요성에 근거해 논지를 전개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고 소중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1차 자료인 나그 함마디 문서 자체에 대한 본문 해석과 분석이 많이 결여되어 있어 그 점이 매우 아쉽다.

특히 신약 성경과 고대 영지 사상과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는 11-14장에서 나그 함마디 문서에 대한 본문 해석과 분석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줄 알고 기대하며 읽었는데 결국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아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성경신학자들이 나그 함마디 문서 번역에 더 큰 박차를 가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까? 
 

4. 조직신학적 관점

필자가 조직신학 전공이다보니 조직신학적 관점 속에서 본서를 더 자세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직업병과도 같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를 읽고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불현 듯 떠올랐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직신학 서론에서 신학과 철학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다룬다. 굳이 카르타고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이 던졌던 유명한 질문인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신학과 철학 사이의 바른 관계성 설정은 신학을 바르게 노정함에 있어 필수적임은 자명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는 성경 해석의 툴을 ‘철학’으로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모나드(monad) 개념도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나 플라톤에 의해 이용되었고,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의 『모나돌로지』(Monadology)에서 전개된 단자론을 통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형이상학과 철학계 내에서 자리 잡힌 개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는 모나드를 하나님으로 인식하며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골로새서 1장 15-20절에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모나드로 묘사되며, 모나드의 ‘형상은 그의 아들 속에서 충만함으로 나타난다’”(p.83). 물론 이 진술의 맥락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마치 플라톤주의 혹은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 혹은 라이프니츠 철학에서 말하는 단자론과 그 내용과 형식이 매우 유사하므로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본서의 저자는 “고대 영지사상의 모나드는 … 신약성서와 나그 함마디 문서의 기독론과 성령론과 종말론의 문제를 다룰 때도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p.159)라고 진술했다. 본서 전반에 걸쳐 고대 영지 사상과 성경에 드러난 기독론과 종말론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잘 규명했다고 본다. 하지만 성령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에서는 성령론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 점이 조직신학 관점에서 볼 때 나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평적 질문이다. 본서 전반에 걸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고대 영지 사상에 빗대어 잘 규명했지만, 삼위일체의 제3위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무하다.

만약 정통 기독교뿐만 아니라 2-4세기의 영지주의 기독교가 고대 영지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신론을 발전시켰다면(p.288),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가 필수적인데 적어도『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에 비추어 볼 때는 고대 영지 사상 속에 성부에 집중한 단일신론적 냄새가 훨씬 더 강하게 풍기는 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고대 영지 사상 가운데서 성령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과 사역은 무엇인가?

셋째, 본서를 읽으면서 용어와 개념에 관한 질문들이 많이 떠올랐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을 설명할 때 “방출”(p.168n26)이나 “발출”로 표현하는 것이다(특히 10장 맥락 전체에서). 그러나 제2위 하나님인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을 표현하는 보다 더 일반적인 개념은 방출이나 발출보다는 ‘영적 출생’ 즉 ‘태어나심’(γέννησις)이다. 오히려 방출이나 발출은 제3위인 성령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표현할 때 더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즉 성령 하나님의 위격적 속성은 성부와 성자로부터의 ‘발출’(즉 나오심, processio)이다.

물론 고대 영지 사상 학계와 신약신학 학계에서는 이런 개념을 어떤 용어로 표현하는지 잘 모르지만, 조직신학적 관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이 약간 서로 충돌되어 본질적인 애매모호함이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히 말씀 드리고 싶다.

 

5. 역사신학적 관점

본서 저자는 ‘사상사 비평법’을 활용해서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를 집필하겠다고 3장 영지주의 연구사와 연구방법론에서 밝힌다(p.61). 이는 역사신학 학계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방식으로 특정 사상의 기원, 표현, 보존, 변화, 발전상을 역추적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본서 저자는 영지주의 사상을 단편적·일괄적으로 이해해왔던 성향을 지양하고 영지주의 사상 안에 “더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과 학파가 있었던 사실”(p.104)을 옳게 지적한다.

이는 역사신학 학계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측면으로, 예를 들면 소위 16세기 종교개혁신학을 이야기할 때 반(反)로마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체계 내에서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16-17세기의 포괄적인 맥락 하에서 종교개혁 1세대와 2세대, 3세대 간의 유기적 연관성과 연속성·불연속성과 더불어 복잡미묘한 시대적 정황과 반립 테제들을 포괄적으로 따지며 연구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역사신학적 질문이 생각난다. 본서 저자는 끊임없이 “‘영지’를 포함하는 다양한 영지주의를 ‘영지사상’으로 명명하여, 2세기의 ‘영지주의’와 구분한다”(p.71)라는 말을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전반에 걸쳐 힘을 주어 강조한다. 여기서 드는 질문은 과연 고대 영지 사상과 2-4세기의 영지주의 사이의 정확한 관계성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즉 고대 영지 사상과 2-4세기의 영지주의 사이에는 사상적 불연속성만 강한가?(저자는 이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동시에 사상적 연속성도 존재하는가? 아니면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설켜 있는가?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 사상과 또 다른 사상이 서로 사상적 결이 유사하다면 그 안에는 사상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고대 영지 사상과 2-4세기 영지주의 사이는 어떠한가? 이 점이 좀 더 분명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 

 

6. 실천신학적 관점

신학은 궁극적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학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의 실천신학적 유익은 무엇인가? 저자는 “신약성서의 다양한 본문들 … 속에 이러한 고대 영지사상이 담겨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영성에 크게 기여했다”(p.288)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오히려 고대 영지 사상이 2-4세기의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로 거칠게 발전되어 물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비관주의, 영적 엘리트주의, 가현설 등으로 ‘부정적 발전’ 한 것이 아닌가?

과연 고대 영지 사상이 그리스도교 영성에 크게 기여한 부분이 정확히 무엇인가? 이 점이 좀 더 구체적으로 상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즉 좀 더 풀어 기술하자면 고대 영지 사상에 근거한 신약 본문 이해가 신자의 삶과 교회의 유익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11-14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을 근거로 성경을 해석한 후 설교할 때 성도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수불가결한 고민이다. 

 

7. 나가며

지금까지 필자가 논의했던 모든 질문들과 제언들은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의 논지의 날카로움과 형식의 수려함의 발전과 개혁을 위해 외람되게 감히 드려본 것들이니 본서 저자께서는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해주실 줄 믿는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를 통해 고대 영지 사상과 2-4세기 영지주의 사이의 관계성, 그리고 고대 영지 사상과 신약 성경 본문과 배경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릴 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점이다.

소위 ‘정통과 이단’이라는 건조하게 고착화된 프레임 속에서 초대 교회 신학 배경을 바라보기보다는 좀 더 그 당시의 사상사적 전개에 천착해 성경 본문을 바라보는 유의미한 시도가 본서를 통해 아름답게 수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제기한 대로 여러 가지 형태의 아직 대답되지 않은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단상과 서평이 작은 마중물이 되어 이를 계기로 좀 더 학문적 물꼬가 열려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분야 속에서 적실한 사료에 근거한 적절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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