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2)
『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2)
  •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 승인 2020.07.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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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2)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3. 누가는 ‘호메로스적 찬가’를 모방했나?

MacDonald는 세례 요한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에 관련된 누가의 이야기에 관해서도 그리스 로마 고전이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누가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수태고지’의 장면에서23) 호메로스적 찬가 제5번 「아프로디테 찬가」를 모방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부모는 제사장이었던 사가랴(Zakarias)와 엘리사벳(Elisabet) 이었다(누가복음 1:5). 이들은 모든 계명과 규례를 흠 없이 지킨 의인이었지만(1:6) 자식이 없었다. 엘리사벳이 불임의 여성이었던 것이다 (1:7). 어느 날, 그는 성전에 들어가 홀로 분향을 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 은 밖에서 기도하였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다(1:11). 그 이후 장면을 누가는 이렇게 보고한다.

사가랴가 보고 동요하고 두려움이 그의 위로 덮치니, 천사가 그 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12-13)

καὶ ἐταράχθη Ζαχαρίας ἰδών, καὶ φόβος ἐπέπεσεν ἐπ' αὐτόν. εἶπεν δὲ πρὸς αὐτὸν ὁ ἄγγελος, μὴ φοβοῦ, Ζαχαρία, διότι εἰσηκούσθη ἡ δέησίς σου, καὶ ἡ γυνή σου Ἐλισάβετ γεννήσει υἱόν σοι, καὶ καλέσει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Ἰωάννην.

MacDonald는 이 장면이 「아프로디테 찬가」(5)에서 아프로디테가 앙키 세스를 찾아오는 장면과 ‘어마무시하게’(eerily) 닮았다고 하면서. 이는 그리스 고전에 해박한 ‘누가의 능수능란한 짓기의 결과’(the result of Luke’s masterful composition)라고 평가한다. 통상 누가는 세례 요한에 관해 기 술할 때, ‘예수의 말씀’(Logoi of Jesus)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참 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자료들에서는 세례 요한의 가계와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24) 이는 누가가 그것들과는 다른 자료를 참조했을 가능성을 매우 높게 만드는데, 그 무엇보다도 호메로스적 찬가를 누가가 모방했을 가능성을 매우 적극적으로 암시한다.

비교해 보자. 「아프로디테 찬가」에서 아프로디테가 앙키세스의 목장을 찾았을 때의 장면이다. 앙키세스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남아 유유자적 기타라를 연주하고 있었다(78-80). 하늘의 천사가 사가랴 앞에 ‘섰듯이’(ἑστὼς), 하늘을 날아 온 아프로디테는 그의 앞에 마주하고 ‘섰다.’(στῆ, 81행) 불멸의 존재가 필멸의 존재를 찾아왔다는 점에서 두 장 면이 갖는 최초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앙키세스 앞에 인간 처녀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나타났지만 그 아름다움과 신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사가랴가 갑자기 나타난 주의 천사 가브리엘을 ‘보고서 동요하였고 두려움이 그의 위로 덮쳤던’(ἐταράχθη... ἰδών, καὶ φόβος ἐπέπεσεν ἐπ' αὐτόν, 1:12) 것처럼, 앙키세스도 아프로디테를 ‘보고 생각하며 놀랐다’(ὁρόων ἐφράζετο θαύμαινέν, 84행). 필멸의 존재가 불멸의 존재를 보 고 놀라는 모습 또한 빼다 박은듯이 닮았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그 놀람은 MacDonald가 힘주어 강조하듯이 누가가 호메로스적 찬가를 모방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천상의 존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지상의 존재는 거의 없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가가 호메로스를 모방했다는 주장을 완전히 막을 수도 없다. 어쨌든 앙키세스의 놀라움은 그가 여신인줄 모르고 아프로디테와 사랑을 한껏 나눈 뒤에 아프로디테가 그에게 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훨씬 더 컸다.

그런데 그가 아프로디테의 목과 아름다운 눈을 보았을 때, 두려움에 사로 잡혔고, 눈을 옆으로 돌렸다, 다른 쪽을 향해. (181-182행)

ὡς δὲ ἴδεν δειρήν τε καὶ ὄμματα κάλ' Ἀφροδίτης
τάρβησέν τε καὶ ὄσσε παρακλιδὸν ἔτραπεν ἄλλῃ.

그런데 그에게 곧이어 대꾸했다, 제우스의 딸 아프로디테가.
“앙키세스, 죽어야 할 인간들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이여. 
용기를 내라, 그대의 가슴속에 뭔가를 두려워 말라, 너무. 
그대는 나에게 해를 겪으리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른 복된 신들로부터도. 실로 그대는 신들의 친구니까. 
그대에겐 친아들이 있으리니, 트로이아인들을 다스리리라. 
그리고 자손들에 자손들이 영원히 계속 태어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이네이아스가 되리니... (191-198행)

τὸν δ' ἠμείβετ' ἔπειτα Διὸς θυγάτηρ Ἀφροδίτη·
Ἀγχίση, κύδιστε καταθνητῶν ἀνθρώπων,
θάρσει, μηδέ τι σῇσι μετὰ φρεσὶ δείδιθι λίην·
οὐ γάρ τοί τι δέος παθέειν κακὸν ἐξ ἐμέθεν γε
οὐδ' ἄλλων μακάρων, ἐπεὶ ἦ φίλος ἐσσὶ θεοῖσι. 
σοὶ δ' ἔσται φίλος υἱὸς ὃς ἐν Τρώεσσιν ἀνάξει
καὶ παῖδες παίδεσσι διαμπερὲς ἐκγεγάονται·
τῷ δὲ καὶ Αἰνείας ὄνομ' ἔσσεται...

그런데 천상의 존재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을 진정시키면서 아들 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 이름까지 알려주는 장면은 천사 가브 리엘이 사가랴에게 나타난 때보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마리아에게 나 타나 ‘수태고지’할 때에 훨씬 더 비슷하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평안하 라,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χαῖρε, κεχαριτωμένη, ὁ κύριος μετὰ σοῦ, 1:28)라고 인사를 하였을 때, 마리아가 보인 반응에는 사가랴에는 없던, 그러나 앙키세스에게 있던 ‘생각함’(ἐφράζετο)이 ‘διελο γίζετο’(1:29)라는 동사로 추가된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에 관해서도 사가랴의 아들 요한보다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들 예수가 앙키세스의 아들 아이네이아스에 훨씬 더 가깝다.

그녀가 그 말에 동요하고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 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 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 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29-33)

ἡ δὲ ἐπὶ τῷ λόγῳ διεταράχθη καὶ διελογίζετο ποταπὸς εἴη ὁ ἀσπασμὸς οὗτος. καὶ εἶπεν ὁ ἄγγελος αὐτῇ, μὴ φοβοῦ, Μαριάμ, εὗρες γὰρ χάριν παρὰ τῷ θεῷ. καὶ ἰδοὺ συλλήμψῃ ἐν γαστρὶ καὶ τέξῃ υἱόν, καὶ καλέσει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Ἰη- σοῦν. οὗτος ἔσται μέγας καὶ υἱὸς ὑψίστου κληθήσεται, καὶ δώσει αὐτῷ κύριος ὁ θεὸς τὸν θρόνον Δαυὶδ τοῦ πατρὸς αὐτοῦ, καὶ βασιλεύσει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Ἰα-κὼβ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καὶ τῆς βασιλείας αὐτ οῦ οὐκ ἔσται τέλος.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아의 왕이 되고 그 자손이 끊이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예수도 다윗의 왕위에 올라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리 며그왕국이영원할것이라고한다. 물론이부분을쓸때, 누가는마 태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의 약혼녀인 요셉의 꿈에 나타나 태어날 예 수에 관해 알려주는 장면을 참조했을 것이며25),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구약 성서에서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영원한 왕국을 약속하는 장면 을26) 염두에 두었음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장면과 함께 누가 는 「아프로디테 찬가」 역시 모방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 MacDonald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을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그 유사성의 긴 밀성이 떨어져 보이며, 일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가는, Macdonald도 인정하듯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가질 때의 장면27)이나 사무엘을 얻는 한나의 노력28)을 더 많이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cDonald의 주장에서 중 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누가가 「아프로디테 찬가」를 모방했든 하지 않았든, 적어도 누가의 이방인 독자들은 『누가복음』 1장을 접하면서 아브라함과 사라나 한나의 이야기보다는 앙키세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의 장면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가 를 비롯해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그리스 로마 고전을 모방했는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누가복음』을 비롯해서 신약성서를 로마제국의 다양한 이방인이요 이교도인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는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며

호메로스 찬가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한 장면도 누가의 마음속에는 있었을 것 같다. 적어도 누가 의 글을 읽으며 호메로스 찬가를 떠올린 사람들은 당연히 그 장면을 떠 올렸을 것이다. 그것은 트로이아 전쟁 당시 아킬레우스와 맞대결을 벌이다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아이네이아스를 두고 포세이돈이 신들 사이에서 아이네이아스와 그가 세울 왕국에 관하여 말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자 이제 가자. 우리라도 그를 죽음으로부터 건져내자. 
크로노스의 아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만약에라도 아킬레우스가
그를 죽여 쓰러뜨리면 큰일이니, 그 운명은 여길 탈출하는 것, 
그의 종족이 씨가 말라 보이지도 않게 멸망하지 않도록 하자, 
제우스는 모든 자손들 중 다르다노스의 종족을 가장 사랑한다.
그를 통해 필멸의 여인들로부터 생겨난 자손들 중에서 제일로. 
프리아모스의 자손은 이미 크로노스의 아들의 미움을 샀으니. 
이제는 아이네이아스의 힘이 트로이아 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태어날 그의 자손들의 자손들이.” (20.300-308)

ἀλλ' ἄγεθ' ἡμεῖς πέρ μιν ὑπὲκ θανάτου ἀγάγωμεν, 
μή πως καὶ Κρονίδης κεχολώσεται, αἴ κεν Ἀχιλλεὺς
τόνδε κατακτείνῃ· μόριμον δέ οἵ ἐστ' ἀλέασθαι, 
ὄφρα μὴ ἄσπερμος γενεὴ καὶ ἄφαντος ὄληται
Δαρδάνου, ὃν Κρονίδης περὶ πάντων φίλατο παίδων
οἳ ἕθεν ἐξεγένοντο γυναικῶν τε θνητάων.
ἤδη γὰρ Πριάμου γενεὴν ἔχθηρε Κρονίων·
νῦν δὲ δὴ Αἰνείαο βίη Τρώεσσιν ἀνάξει
καὶ παίδων παῖδες, τοί κεν μετόπισθε γένωνται.

호메로스적 찬가의 시인은 호메로스를 모방하면서 포세이돈의 예언을 아이네이아스가 잉태된 순간의 아프로디테 입에서 나오게 한 것인데, 누가 역시 예수의 탄생과 그의 운명을 그려내는 장면에서 아이네이아스의 탄생과 운명에 관한 그리스 고전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 을 법하다.

그런데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아 멸망 이후 그 유민들을 모아 새롭게 다스리게될 나라는 어떤 왕국인가? 일찍이 그리스 문명을 만난 후에 그것을 모방하며 경쟁하던 로마에서는 그 멸망한 트로이아에 이어 세워지는 새로운 왕국, 제2의 트로이아를 로마와 연결시키려고 했다. 

로마 최초 로 그리스의 육각운(hexametrum)을 도입한 시인 엔니우스(BC 239-169)는 트로이아 전쟁의 패장 아이네아스29)가 트로이아를 빠져 나와 이탈리아에 도착한 이야기를 로마의 역사의 첫 장면으로 노래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의 시대에 와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에서 분명하게 아이네아스가 세울 영원한 왕국을 로마로 천명했다. 그는 트로이아를 빠져 나오는 아이네아스의 모험과 마침내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새로운 트로이아를 세울 터를 확보하는 치열한 전투의 이야기를 지을 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모방의 전범으로 삼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아이네이아스의 왕국을 예언한 포세이돈의 역할을 로마 신화의 최고신 윱피테르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신의 딸이며 아이네아스의 어머니인 베누스에게 아이네아스에게서 비롯될 새로운 왕국에 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두려워 마라, 퀴테라. 변함없이 남으리라 바로 너의
자손들의 운명은. 보리라 약속된 라비니움의 도시와
그 성벽을, 지고한 자로 올리리라, 하늘의 별들에게로
기백이 당당한 아이네아스는. 내 생각은 안 바뀌었다. 
여기서 네게 말하겠다, 그런 걱정이 너를 갉아먹으니
더 먼 미래를, 기꺼이 운명의 비밀을 펼쳐 보이리라. 
거대한 전쟁을 이탈리아에서 치르며 거만한 부족들을
제압하고 전사들에게 관습과 성벽을 놓을 것이다. (1.257.265)

parce metu, Cytherea, manent immota tuorum
fata tibi; cernes urbem et promissa Lauini
moenia, sublimemque feres ad sidera caeli
magnanimum Aenean; neque me sententia uertit.
hic tibi fabor enim, quando haec te cura remordet,
longius et uoluens fatorum arcana mouebo
bellum ingens geret Italia populosque ferocis 
contundet moresque uiris et moenia ponet,

그리고 아이네아스에게서 태어난 자손 중에는 그 이름을 도시에 준 로물로스가 태어나기로 되어 있으며, 로마를 위대한 세계의 제국으로 만들 아우구스투스가 예언되어 있다. 누가가 예수의 탄생 장면에서 「아프로디테의 찬가」를 모방했다면, 저술의 전략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수를 아이네아스와같은 존재로 보이게 만들고, 나아가 로마제국을 확립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버금가는, 아니 그를 뛰어넘는 존재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이, 누가를 비롯해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그리스 로마 고전을 모방했는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약성서를 읽을 때, 로마제국의 다양한 이방인이요 이교도인 독자들은 무엇을 연상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병을 고치는 예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학의 신이며 죽었다가 부활한 아스클레피오스를 떠올리고,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피니 받아 마셔라’라며 제자들과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최후의 만찬을 벌인 예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죽음을 딛고 일어 서신으로 거듭난 포도주의 신 디오뉘소스를 떠올렸을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마가 될 도시를 아이네아스가 세우고, 그 후손 들에 의해 로마가 번성하며 마침내 세계를 제패하는 영원한 제국으로 우뚝 선다는 신화에 익숙한 로마 제국의 시민들에게 누가가 그려낸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예수가 아이네아스나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세웠듯 이 로마와는 또 다른 차원의, 지상이 아니라 천상에 세워질 기독교의 왕국의 건립을 상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전공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열린 2019년 12월 13일, 김헌 교수는 "그리스 로마 고전과 '누가' 사이: 호메로스적 「아프로디테 찬가」 5번과  「누가복음」 2장 비교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제하고 했다.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전공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열린 2019년 12월 13일, 김헌 교수는 "그리스 로마 고전과 '누가' 사이: 호메로스적 「아프로디테 찬가」 5번과  「누가복음」 2장 비교"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제하고 했다.

 

김헌 교수는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서양고전학, 호메로스)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에서 서양고전학 박사학위(서양고전학,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았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생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역사,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으며 , 역서로는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  『'어떤  철학'의 변명』 등이 있다. 

또한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지식의 기쁨>, <최강 1교시> 등에 출현하며 대중에 서양 고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김헌, 『누가복음』, 『사도행전』과 그리스 로마 고전의 관련성 연구, 인문논총 제77권 제1호 (2020.02.28), pp. 79~106.  

-본 아티클은 집필자이신 김헌 교수님의 동의 하에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에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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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23) 세례요한에 관한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이 대제사장이며 엘리사벳의 남편인 사가랴에게 나타나 전해주며(누가복음 1:8-20) 예수에 관해서는 마리아에게 나 타나 전해준다(1:26-38). 이와 같은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예 수에 관한 수태고지가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에게 전해지는 장면은 『마태복음』에는 나타나지만(1:18-25) 마리아에게 전해진 수태고지는 없고, 세례요한에 관한 수태고지는 다른 어떤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24) Macdonald (2015), p. 134.

25) 마태복음 1:18-19.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 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이심이라 하니라.”(ταῦτα δὲ αὐτοῦ ἐνθυμηθέντος ἰδοὺ ἄγγελος κυρίου κατ' ὄναρ ἐφάνη αὐτῷ λέγων, Ἰωσὴφ υἱὸς Δαυίδ, μὴ φοβηθῇς παραλαβεῖν Μαριὰμ τὴν γυναῖκά σου, τὸ γὰρ ἐν αὐτῇ γεννηθὲν ἐκ πνεύματός ἐστιν ἁγίου· τέξεται δὲ υἱὸν καὶ καλέσει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Ἰησοῦν, αὐτὸς γὰρ σώσει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ἀπὸ τῶν ἁμαρτιῶν αὐτῶν.)

26) 사무엘상 7:4-16.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 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 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σε ἐκ τῆς μάνδρας τῶν προβάτων τοῦ εἶναί σε εἰς ἡγούμενον ἐπὶ τὸν λαόν μου ἐπὶ τὸν Ισραηλ καὶ ἤμην μετὰ σοῦ ἐν πᾶσιν, οἷς ἐπο-ρεύου, καὶ ἐξωλέθρευσα πάντας τοὺς ἐχθρούς σου ἀπὸ προσώπου σου καὶ ἐποίησά σε ὀνομασ- τὸν κατὰ τὸ ὄνομα τῶν μεγάλων τῶν ἐπὶ τῆς γῆς. 7:8-9)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καὶ ἀναστήσω τὸ σπέρμα σου μετὰ σέ, ὃς ἔσται ἐκ τῆς κοιλίας σου, καὶ ἑτοιμάσω τὴν βασιλείαν αὐτοῦ· 7:12)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καὶ ἀνορθώσω τὸν θρόνον αὐτοῦ ἕω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7:13).

27) 창세기 17:15-22, 18:1-15, 21:1-7.

28) 사무엘상 1:1-2:11.

29)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아이네이아스(Αἰνείας)는 로마의 서사시인들의 시에서는 라틴어로 아이네아스(Aeneas)가 된다.(1.257-26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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